"대동맥류는 시한폭탄.. 의사 빠른 판단·대처 중요"

민태원 2021. 9. 1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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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파워 닥터] 아주대병원 김도정 흉부외과 교수
아주대병원 흉부외과 김도정(오른쪽) 교수가 심한 가슴통증으로 응급실 내원 후 상행 대동맥 인조혈관 치환 시술을 받고 특이 합병증 없이 퇴원한 40대 환자를 상담하고 있다. 아주대병원 제공


“84세 아버지가 복부CT촬영에서 ‘대동맥류’ 진단을 받았습니다. 흉부외과 선생님이 혈관 직경이 8.5㎝나 부풀어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언제 터질지 모르니 시술이든 수술이든 불가피하다고 하네요. 8.5㎝이면 반드시 터지는 것인지, 조심하면 괜찮은지…. 하루 하루가 불안합니다.”

한 네티즌이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올린 상담 글이다. 다소 낯선 대동맥 질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동맥경화와 고혈압, 흡연 등 위험요인을 가진 사람들이 늘고 의학기술 발전으로 진단율이 높아지면서 대동맥 질환자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40~60대에서 발병률이 높고 여자보다 남자에서 배 정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대동맥은 심장(좌심실)에서 우리 몸 전체로 혈액을 보내는 가장 큰 혈관이다. 원래는 탄력 있고 튼튼해 혈액의 압력을 견딜 수 있지만 노화나 질병으로 혈관벽이 약해지면 꽈리처럼 늘어나거나 찢어질 수 있다. 이 큰 혈관의 지름이 정상보다 1.5배 이상 늘어난 상태가 ‘대동맥류(瘤)’다. ‘류’는 혹처럼 부풀어 올랐다는 의미다. 대동맥류는 풍선처럼 계속 늘어나다 어느 순간 갑자기 터질 수 있다. 혈관의 안쪽 막이 찢어지면 ‘대동맥 박리증’으로 진단된다.

아주대병원 흉부외과 김도정(39) 교수는 13일 “문제는 터지기 전까지 거의 증상이 없어 병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낼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대부분 건강검진이나 암진단을 위한 초음파, CT검사에서 우연히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방치하면 대동맥 박리나 파열 등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즉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몸 안에 달고 사는 셈이다.

다만 대동맥류가 많이 커지면 주변 장기를 압박하기 때문에 증상을 느낄 수도 있는 만큼 세심히 살피면 늦지 않게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 복부 대동맥류의 경우 배가 빵빵해지거나 배에서 심장이 뛰듯 박동성 있는 덩어리가 만져지기도 한다. 흉부 대동맥류는 커지면서 대동맥궁(상행 대동맥과 하행 대동맥 사이에 있는 활 모양의 부분)을 감싸고 있는 성대 신경에 손상을 줘 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늘어난 대동맥이 식도를 누를 경우 목에 뭔가 걸리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김 교수는 “배나 가슴에 생긴 대동맥류가 결국 파열되면 엄청난 양의 피가 밖으로 흘러나와 쇼크 상태에 빠지면서 수분 내, 길어도 1시간 안에 사망할 수 있어 긴급 수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숙련된 흉부외과 의사의 빠른 판단과 대처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동맥 박리가 일어나면 가슴이나 등에 심한 통증을 느낀다. 특히 상행 대동맥에 박리가 진행되면 파열 위험이 높고 심장이나 뇌혈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역시 응급수술을 받아야 한다. 치료하지 않을 경우 사망률은 1시간 마다 1%씩 올라가고 1개월 내 목숨을 잃을 확률은 70%를 넘는다.

김 교수는 “대동맥류 치료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환자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제한돼 있다. 아주대병원의 경우 다른 지역 의료기관에서 응급 환자가 의뢰되면 신속한 치료를 위해 모두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흉부 대동맥류의 경우 터지면 환자의 약 41%만이 살아서 병원에 도착한다는 보고도 있다.

흉부 대동맥의 정상 직경은 2.5㎝, 복부 대동맥은 1.5~2㎝ 정도다. 흉부 대동맥이 5~6㎝, 복부 대동맥은 5~5.5㎝ 이상 늘어나면 파열 위험이 급증하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수술 혹은 ‘스텐트(금속망으로 된 인조혈관)’ 삽입 시술 여부를 결정한다.

최근에는 넓적다리로 넣은 가느다란 관을 통해 인조혈관을 대동맥류가 생긴 부위까지 밀어올려 삽입하는 중재 시술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가슴이나 배를 여는 수술에 비해 출혈이 적고 환자 회복이 빠른 장점이 있다. 하지만 상행 대동맥이 침범됐거나 인조혈관 삽입 시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구불구불한 대동맥 구조를 가진 환자는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요즘엔 일부 병원에서 수술과 중재 시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첨단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갖추고 있어 대동맥 수술 환자의 빠른 치료와 이를 통해 환자 사망률을 효과적으로 낮추고 있다. 아주대병원도 2~3년 내 가동을 목표로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준비 중이다.

대동맥류, 박리증과 함께 ‘대동맥 판막질환’도 증가 추세다. 고령인구 증가 탓이 크다. 특히 퇴행성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급격히 늘고 있다. 대동맥 판막은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에 위치하는데, 판막은 심장 내 혈액이 역류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여닫이문’과 같다. 나이 들수록 이 판막이 낡고 두꺼워져 좁아지면서 잘 열리지 않는 협착증이 생긴다. 대동맥 판막이 잘 열리지 않으면 심장에서 온 몸으로 피가 충분히 나기지 못하게 되고 결국 심장이 무리하게 일을 하면서 점점 망가진다.

표준 치료법은 인공심폐기를 이용해 심장을 일시 멈춘 상태에서 가슴을 열고 손상된 대동맥 판막을 제거한 뒤 인공 판막으로 교체해 실로 꿰매는 방식이다. 최근엔 ‘무봉합 대동맥판막치환술’이 도입됐다. 실로 꿰매는 과정 없이 판막이 환자 체온에 반응해 저절로 펴지면서 자리잡도록 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기존 방식보다 수술 시간을 15~30분 단축하고 심정지 시간을 줄여 위험을 낮추고 합병증도 줄일 수 있다. 고령이나 수술 고위험 환자, 여러 심장질환을 복합적으로 가진 환자 등에게 적합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남자도 버티기 힘든 흉부외과에서 촉망받는 젊은 여의사로 꼽힌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여성 흉부외과 의사는 1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흉부외과는 심장과 폐 등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직접 관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술 기술, 전문 지식 등을 두루 갖춰야 하고 무엇보다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과 수술에 섬세함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여성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흉부외과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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