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금감원, 스팩(SPAC) 투자 경고 나섰다..합병 성공률 64%, 원금 못 건질 수도

류지민 2021. 9. 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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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투자처로 꼽히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 증시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 이렇다 할 호재가 없음에도 급등락을 거듭하는 신생 스팩이 늘면서 투자 주의보가 내려진 것이다. 한국거래소 조사 결과 불공정거래 혐의가 발견되는 등 투자자도 피해도 확산되고 있어 스팩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신생 스팩 이상 급등 현상 속출

▷합병 발표 없다면 오를 이유 없어

스팩은 다른 법인과의 합병을 유일한 사업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컴퍼니(명목회사)다. 금융위기 이후 기술력과 성장성은 있지만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도입됐다. 이런 기업들이 주식 시장을 통해 보다 신속하게 자금을 공급받고, 상장의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의도다. 스팩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모두 현금으로 구성돼 있고, 이 현금 자산은 오로지 M&A(인수합병)를 위해서만 사용한다는 점에서 상장을 위한 일종의 ‘돈 주머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팩 주가가 급등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우량 기업과의 합병을 앞두고 있다면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일이 적잖다. 하지만 최근 급등세를 보이는 스팩들은 상장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스팩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일반적으로 스팩은 상장 후 1년 뒤부터 청산 기한인 3년 내 합병 대상을 물색한다. 단일가 2000원으로 상장해 주가 변화가 거의 없다 합병 소식이 알려지면 비로소 주가가 움직인다. 지난 5월 25일 메타버스 관련 기업 엔피와 합병을 발표하며 급등한 삼성스팩2호가 대표적이다. 반면 합병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신생 스팩의 경우 주가가 오를 이유가 없다.

이런 스팩의 특성을 알고 나면 최근 몇몇 신생 스팩의 주가 움직임은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삼성머스트스팩5호는 지난 6월 17일 상장 당일 ‘따상(공모가의 두 배 시초가 형성 후 상한가)’을 기록하는 등 나흘 연속 상한가를 이어갔다. 이른바 ‘따상상상상’으로 공모가(2000원)의 6배에 달하는 1만1400원까지 급등한 주가는 이후 하락을 거듭했고, 9월 8일 기준 고점 대비 반 토막도 되지 않는 5170원까지 떨어졌다.

주가가 급등한 것은 삼성머스트스팩5호뿐 아니다. 지난 5월 21일 상장된 삼성스팩4호는 24일부터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일주일 만에 주가가 5배 넘게 뛰었다가 이후 30% 넘게 빠졌다. 4월 8일 상장한 유진스팩6호와 5월 10일 상장한 하이제6호 스팩도 급등 이후 급락이라는 비슷한 주가 움직임을 보였다. 상장 초반 주가 급등세를 좇아 매수에 나섰던 개인투자자들은 적잖은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시세 조작 정황 밝혀져

▷허위 매수 주문으로 주가 상승

스팩 급등주의 특징은 합병 계획 등 이렇다 할 호재가 없음에도 주가가 가파르게 치솟았다는 것이다. 이상 과열 현상인 셈이다.

특정인의 대량 매수세가 유입된 것도 특이한 점이다. 삼성스팩4호는 4월 25일 개인이 29만9897주(7.46%)를 사들인 데 이어 26일에도 단일 계좌에서 10만주(2.49%) 매수가 이뤄졌다. 이 때문에 당시 증권가에는 매수인이 삼성가이며 삼성 계열 비상장회사와 합병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한쪽에서는 코인 투자 세력이 가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시가총액 규모와 유통 물량이 적다는 점을 악용해 시세 조종이 쉬운 스팩을 매수 대상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당시만 해도 루머로 취급되며 흐지부지됐지만, 최근 이런 의혹이 사실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충격을 줬다. 지난 5~6월 국내 증시를 뜨겁게 달궜던 ‘스팩 광풍’의 원인이 시세 조작 세력에 의한 이른바 작전의 결과라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최근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올해 5~6월 주가 상승이 과도했던 스팩 17종목을 대상으로 기획감시를 실시한 결과, 이 중 7개 종목에서 불공정거래 혐의 사항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거래소가 밝힌 의심스러운 거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장중 가격 급등에 따른 변동성 완화장치(VI) 발동 시 단일가 매매가 진행될 때 일부러 높은 가격의 대량 매수 주문을 제출해 다른 투자자까지 높은 가격에 따라오게 만드는 사례가 많았다. 이렇게 예상가를 높인 뒤 VI 종료 직전 주문을 취소하는 방식으로, 진짜 매매는 하지 않으면서 주가 상승만을 유도했다. 실제로 5~6월 당시 급등한 스팩에서 VI 단일가 시간대 대규모 매수 주문을 낸 주요 계좌들의 평균 매수 체결률은 0~5% 수준에 불과했다.

소량의 매수·매도 호가를 반복 체결시키면서 양방향으로 과도하게 시세에 관여하는 연계 계좌도 발견됐다. 이들 계좌는 서로 역할을 분담해 A계좌가 1주씩 시장 가격으로 매수·매도를 반복하며 시장가를 유지하는 동안, B계좌는 3~4회 분할 매수 이후 대량의 주식을 시장가로 매도해 차익을 실현했다.

▶원금 손실 가능성 주의해야

▷80% 이상이 공모가로 합병 결정

스팩 이상 급등 현상이 이어지면서 원금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투자처였던 스팩은 한 방을 노리는 ‘묻지마 투자’로 점차 변질되는 중이다. 우량 중견·중소기업의 상장 통로라는 스팩의 본질도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한 스팩이 상장에 성공한다면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모든 스팩이 합병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스팩 합병 성공률은 63.9%로, 상장 후 3년이 지난 스팩 133개사 중 85개가 합병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공모 상장 후 3년 내 합병을 완료하지 못하면 스팩은 해산된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진행된 스팩 IPO(기업공개)는 총 13건으로 공모금액은 1949억원이 모였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두 배 가까이 공모금액이 증가한 규모다. 일반투자자 청약 경쟁률도 평균 169.4 대 1로 전년 대비 60배나 급증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합병을 완료한 스팩은 7곳으로 전년 동기(9곳)보다 오히려 줄었다.

합병이 된다고 해서 다 수익을 내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이후 합병을 마무리한 스팩 24개 가운데 주가를 할인해 2000원에 합병 가액을 결정한 곳이 20개로 전체의 83%를 차지했다. 사실상 대부분 스팩이 합병 성공 시점에 공모가 수준으로 주가가 결정되고 있다는 얘기다.

‘원금 보장’이라는 스팩의 장점도 흔들리고 있다. 스팩은 증시에서 일반 주식 종목처럼 거래되지만 상장 후 3년 이내에 다른 기업을 인수하지 못하면 투자자에게 예치금을 반환해야 한다. 이때 만약 공모가액(통상 2000원)보다 높은 가격으로 스팩에 투자했다면 해산 시 돌려받는 금액이 투자원금보다 적을 수 있다. 급등한 스팩에 투자할수록 원금 보장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장된 스팩은 유통주식 수가 적고, 시가총액 규모도 작은 편이다. 이 때문에 크지 않은 자금의 흐름에도 쉽게 급등락한다. 과거 사례를 보면 급등한 스팩 주가가 결국에는 제자리를 찾아 가는 만큼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6호 (2021.09.15~2021.09.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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