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노동자를 부러워하는 사장님

입력 2021. 9. 1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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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서울의 도로는 라이더들의 질주에 몸살을 앓고 있다. 유명 피자 전문점의 30분내 배달 보증제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사라진지 10년이 지나고, 플랫폼과 도급계약을 체결한 라이더들의 빠른 배달은 그들의 경쟁력으로 칭송받고 있다. 10년전의 노동착취가 10년후 혁신으로 둔갑한 것이 최근 청년이 맞이하는 노동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7년 IMF와 함께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은 정규직 고용이 당연시되던 것에서 비정규직을 전면 도입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노동자 계급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원화되었고, 법개정 10여년 만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가 급증하였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직된 노동자의 힘을 가지지 못했고,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의 사회 안전망 때문에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 어느 것도 충족하지 못한 채 일자리를 찾아 부평초처럼 떠도는 불안한 삶을 살아야 했다.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이 통과됐다지만 2년이 지나야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방식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2년 이내로 줄이는 더 나쁜 결과만 낳았을 뿐이다. 그래도 2010년대 까지는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대한 사회적 연대와 온정적 시각이 남아 있었고, 앞서 언급한 유명 피자 전문점의 30분내 배달 보증제가 폐지되는 작은 성과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노동자들에게 가지는 최소한의 연대 의식도 사라지게 만드는 새로운 구조의 노동 환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4차 산업혁명과 혁신이란 이름으로 각광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플랫폼 기업들은 과거 비정규직이라도 노동자의 지위로 고용했던 사람들과 법인사업자 대 개인사업자의 지위로 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라이더들도 더 이상 법상 노동자의 지위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 개인사업자로 변한 이들에게는 노동자로서 보호받던 최소한의 보호도 주어지지 않는다. 산재보험 등 4대보험 가입 의무화도, 주52시간 노동도, 연월차 휴가도, 퇴직금도 이들에게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이제 개인사업자가 되었기 때문에 30분 이내 배달도 사업자가 자신의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밤샘 노동을 하는 열정처럼 포장되고 있다.

과거 노동자였고 실질도 노동자이지만 법상 노동자가 아닌 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혁신과 열정으로 포장된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사업기회는 당연히 기성세대가 아닌 청년세대에게만 집중적으로 주어진다. 정규직 그게 어렵다면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얻었던 기성세대들에 비해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청년세대들은 노동자가 될 기회마저 박탈되고 허울좋은 프리랜서 개인 사업자, 즉 사장님이 되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억지로 사장님이 된 청년들은 조직된 노동조합과 최소한의 4대보험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세상이 급격히 변했는데 낡은 잣대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현실을 파악할 수 없다면 제대로된 정책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청년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반대한다고, 노동유연성 강화에 찬성한다고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청년층에 주어진 노동현실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잘못된 행동이다. 사회의 원로나 중견세대는 인생을 살아오며 쌓인 연륜으로 늘 얼치기 청년들보다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 자부한다. 그러나 이들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변화에 둔감할 수 밖에 없다. 새로운 변화의 실체는 청년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확하게 파악한다. 지금은 청년들이 이기적이라 질책할 것이 아니라 비자발적으로 사장님이 될 상황에 내몰린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다. 청년들이야 말로 기성세대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혹독한 고용환경에 내몰리고 있는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박상수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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