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자본시장 개방과 통화정책 자율성의 딜레마

2021. 9. 1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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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다. 이번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 수습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올해 4월부터 인플레이션이 목표치 2%를 상회하고 있지만 디플레이션 위협이 가셨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올린 것은 경기 회복 전망이 어느 정도 선 데다 집값을 잡기 위해서인 것 같다. 한국은 여느 선진국보다 집값이 오래 올랐을 뿐 아니라 그 사회적 영향이 훨씬 더 크다.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이번에 0.25% 포인트 올린 것으로는 안 되고 앞으로 더 올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 일차적 조건은 경기 회복이지만 더 큰 걸림돌은 외부 조건이다. 자본시장을 개방해 놓은 상태에서 미국을 비롯한 중요 선진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데 한국만 올리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거시경제학의 ‘삼각 딜레마(trilemma)’라는 명제에 비춰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통화정책의 자율성, 자본시장 개방, 고정환율을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을 개방해 놓고 통화정책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면 이자율이 세계시장의 이자율과 괴리하게 되고 그에 따라 단기자본이 유입돼 고정환율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후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하면서 자유변동환율제를 택함으로써 통화정책을 자율적으로 운영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그런 공식적인 입장과 현실은 같을 수 없었다. 자본시장을 개방해 놓고 외환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적으로 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그런 목적으로 환율을 높게 유지하려고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해 왔다. 그런 구도에서 한국의 금리가 세계시장의 금리보다 높게 되면 자본 유입으로 환율이 내려가 경상수지가 악화된다. 한국은 그렇게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국내 사정만 보고 금리를 올릴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자본시장 개방이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제약해도 될 만큼 중요한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금리 차를 쫓아 움직이는 국제적 투기꾼의 이익을 위해 민초들의 삶을 위한 정책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실제로 예전에는 대다수 선진국이 그렇게 생각했다. 1930년대 대공황 영향 아래 1944년 성립한 브레턴우즈체제는 투기꾼의 변덕에 민초들의 삶을 맡겨놓을 수 없다는 인식하에 단기자본 이동을 통제하고 고정환율을 유지하면서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한국도 외환위기 전에는 그와 비슷했다. 그것은 개발시대의 유산이라는 성격이 있었지만 통화정책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과거 선진국과 비슷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7년 외환위기 후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로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함으로써 통화정책의 자율성이 크게 약화됐다. 한국은 그런 제약하에서 경상수지 흑자를 냈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또 한 번 외환위기를 맞았다. 미국이 300억 달러 스와프협정을 맺어줌으로써 위기를 해결했지만 스와프협정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은 자본시장 전면 개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IMF도 자본시장 개방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런 배경에서 한국은 2010년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도입했다. 그 후 경상수지 흑자도 계속 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터지자 여전히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어 미국과 600억 달러 스와프협정을 통해 해결했다. 그러나 이 역시 제도화된 것이 아니다.

한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다. 그러나 금리를 올려 선진국 금리와 본격적으로 괴리하게 되면 자본 유입으로 환율이 떨어지고 경상수지가 적자로 반전될 것이다. 그렇게 돼서 외환위기 가능성이 올라갈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한 독자적으로 금리를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자본시장 개방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선 2020년 초 유동성 문제가 대두됐을 때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완화했던 것을 아직 되돌리지 않았다면 당장 되돌려야 할 것이다. 나아가 단기자본 이동을 추가 규제하는 조치로 금리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같은 나라가 개방경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국제 투기꾼의 이익에 맞추느라 민초들의 삶을 등한시하는 일을 계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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