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마윈은 끝났다

유상철 2021. 9. 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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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의술로 죽은 자도 살린다며 중국을 홀린
강호의 사기꾼 기공대사 왕린과 함께 거론된 마윈
앞으로 시진핑 집권 기간 재기는 물 건너 간 듯

중국이 숨 가쁘게 돌아간다. 민영기업가들이 줄줄이 얻어터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연예계가 박살이 난다. 어안이 벙벙한 건 중국 민초들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최근 사태를 분석한 글 하나가 중국에서 엄청난 파문을 던지고 있다. 중국에 제2의 문화대혁명이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나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제의 글 제목은 “한바탕 심각한 변혁이 진행 중이란 걸 우리 모두 느끼고 있지 않은가”. 글쓴이는 올해 62세의 리광만(李光滿). 화중전력보(華中電力報) 편집인 출신으로 지금은 은퇴해 인터넷 공간에 개인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그렇게 유명 인사는 아니다.

‘살아있는 재신(財神)’으로 추앙받던 마윈의 시대는 끝난 걸로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한데 중국의 인민일보와 신화사, 중앙텔레비전(CCTV) 등 내로라하는 중국의 관영 매체들이 지난달 29일 일제히 리광만이 개인적으로 발표한 글을 인터넷판에 게재했다. 중국 정부, 그것도 고위층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인들은 대번에 감을 잡는다. 중국 당국의 뜻이 반영돼 있으니 주목하라는 거다. 리광만은 글에서 중국 연예계가 썩어빠졌다고 질타하며 알리바바와 디디추싱에 대한 처벌은 중국 공산당이 공동부유(共同富裕)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엔 현재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경제영역과 금융영역, 문화영역에서 정치영역에 이르기까지 한바탕 심각한 변혁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심각한 혁명” 또는 “정치 변혁”이라고 말했다.

리광만의 글을 게재한 중국 주요 매체 홈페이지. 위로부터 인민일보, 신화사, 광명일보, 중화망. [각사 웹사이트 캡처]

문제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의 어투가 문화대혁명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마오쩌둥(毛澤東)과 생일이 같다(12월 26일)는 그는 일곱 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문혁을 맞았다. 청소년기에 문혁의 거친 세례를 받은 탓인지 문장엔 피가 튀고 사고는 지극히 국수적이다. “일체의 티끌을 씻어내자” “문화시장이 더는 기생오라비의 천당이 돼선 안 된다” 등과 같은 표현이나 극단적인 반미 정서 등이 그렇다. 이에 중국 안팎에서 “중국에 제2의 문혁이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나흘 뒤인 지난 2일엔 애국주의 선봉장인 후시진(胡錫進) 환구시보(環球時報) 편집인이 등판했다.

홍콩 명보가 게재한 리광만(왼쪽)과 후시진 기사의 사진과 주요 발언. [홍콩 명보 캡처]

후시진은 대뜸 리광만을 비판하고 나섰다. “중국에 현재 심각한 혁명이 발생하고 있다”는 리광만의 주장은 상황을 “엄중하게 오판한 것으로 (인민을) 오도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후시진은 리광만이 현재 상황을 부정확하게 묘사했고 언어를 과장되게 사용해 국가의 큰 방침에서 벗어나는 등 인민을 잘못 이끌었다고 질타했다. 리광만은 중국 고위층의 지지 아래 중국 주요 매체에 모두 그 글을 실었는데 후시진은 또 누구에 기대 리광만을 때린 것일까. 이는 리광만 글의 파장이 “제2의 문혁” 운운하며 부정적으로 흐르자 중국 당국이 후시진을 후속 타자로 내세워 상황을 안정시키는 작업에 돌입한 결과다. 바람을 잡은 리광만이나 바람을 재운 후시진 모두 중국 당국의 손에 따라 춤출 뿐인 것이다.

중국의 유명 배우 자오웨이가 지난달 말 중국 포털 사이트에서 일제히 자취를 감췄다. 프랑스 도피설이 나온다. [자오웨이 웨이보 캡처]

한데 정작 이 와중에 중화권 언론이 주목한 점은 따로 있다. 리광만의 글에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云)의 이름이 이미 프랑스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진 배우 자오웨이(趙薇)와 함께 거론됐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때 신비의 의술로 죽은 자도 살린다며 중국을 홀린 가짜 기공 대사왕린(王林)과도 이름을 나란히 했다. 강호의 사기꾼으로 알려진 왕린은 이미 옥에서 숨을 거둔지 오래다. 리광만이 자오웨이를 때리면서 마윈과 왕린을 들먹인 게 무얼 뜻하나. 지난해 가을 마윈이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부주석 앞에서 공개적으로 중국 정부를 비판하다 자신은 물론 알리바바 그룹 전체가 혼쭐이 나고 있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공동부유 주창한 시진핑 집권 기간 마윈의 재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중국 신화망 캡처]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마윈이 다시 등장하겠거니 했는데 리광만의 말을 새겨보면 마윈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중국 IT 기업의 대표적인 주자 알리바바를 설립하고 부자를 꿈꾸는 많은 중국인에게 ‘살아있는 재신(財神)’으로 추앙받던 마윈의 재기는 불가능해 보인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현재의 공동부유 바람을 부르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기간엔 그렇다. 사흘 전인 지난 10일은 마윈의 57세 생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많은 이들이 마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몰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거리를 둬야 할 사람으로 변했다. 사람이 떠나면 차는 식는다(人走茶凉)는 게 세상 이치 아니던가.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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