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책] 김애란·김중혁 외 『숨 쉬는 소설』
흰 개가 찬성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찬성의 몸냄새를 맡았다. 그러곤 뭔가 결심한 듯 찬성의 손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대다 혀를 내밀어 얼음을 핥았다. 순간 물컹하고, 차갑고, 뜨뜻미지근하고, 간지럽고, 부드러운 뭔가가 찬성을 훑고 지나갔다. 난생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다. (…) 이윽고 개가 얼음을 날름 입에 넣더니 와삭와삭 씹었다. 와사삭- 와삭- 청량하게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찬성 귀까지 다 들렸다. 찬성이 자기 손바닥을 가만 내려다봤다. 얼음은 사라지고 손에 엷은 물 자국만 남아 있었다. 동시에 찬성의 내면에도 묘한 자국이 생겼는데 찬성은 그게 뭔지 몰랐다. 김애란·김중혁 외 『숨 쉬는 소설』
외로운 소년이 버려진 개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다. 역시 김애란이다. 생태 감수성을 키워드로 한 단편 모음집 『숨 쉬는 소설』에서 김애란의 ‘노찬성과 에반’이 단연 돋보인다. 유기견을 키우던 소년은 개가 늙고 병들자 안락사시키기 위해 돈을 모으고, 돈이 생기자 또 다른 욕심에 빠진다.
최진영의 ‘돌담’은 유해물질을 쓰는 회사의 기밀을 알게 된 주인공이 어린 시절 사소한 거짓말을 돌아다 보는 얘기다. “그때 내가 무엇을 피하려고 했는지 이제는 안다. 내가 어떨 때 거짓말하는 인간인지,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에서 도망치는 인간인지 생각하기 싫었다. 그런 나를 내게서 빼고 싶었다. 그래서 잊고 살았다. (…) 결국 나는 나쁜 것을 나누며 먹고사는 어른이 되었다. 괜찮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겠지, 괜찮겠지, 아직은 괜찮겠지, 기만하는 수법에 익숙해져 버린 형편없는 어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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