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온 나라를 쑥대밭 만든 원칙 없는 재난지원금

2021. 9. 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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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총리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지난 7월19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재난지원금 지급을 포함한 추가경정 예산안을 논의했다. 임현동 기자


근거 없는 기준에 불만 폭주하자 대상 늘려


현금 살포로 세금 낭비하고 1년 내내 갈등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못 받는 사람들의 항의가 수만 건 쏟아지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신청을 받은 지 나흘 만에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88%에서 90%로 늘려 100만 명에게 더 주기로 결정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신라시대 골품제에 빗댄 ‘계급표’까지 온라인에 퍼질 정도로 급속하게 나빠진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이 대상 확대였다. 이를 위해 추가로 필요한 세금이 3000억원이나 된다.

당정과 여야가 오랜 줄다리기 끝에 정한 원칙을 무시하고 세금을 마구 퍼주는 것은 큰 문제다. 애초에 국민을 88과 12로 가르는 기준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는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묵살한 채 강행했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면하긴 어렵게 됐다. 사전에 예정된 혼란이었음에도 대처가 워낙 주먹구구식이라 “국정이 장난이냐”는 조롱마저 나오는 것이다.

당정은 지난 7월 초 하위 80%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지만, 여당 내의 지속적인 전 국민 지급 주장과 이재명 경기지사의 경기도민 100% 지급 강행으로 지역 간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지자 결국 대상을 넓혀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하위 88%에게 1인당 25만원을 주기로 했다. 대상이 일부 늘긴 했으나 여전히 국민을 88 대 12로 나눈 근거가 빈약한 데다 지급 기준을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건강보험료로 삼은 탓에 불만 폭주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누구는 받고 누구는 소외되는 선별 지급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였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정말 도움이 절실한 자영업자는 부적절한 기준 탓에 대상에서 빠지고, 형편이 괜찮은 사람들 가운데 지원금을 타내는 불합리한 사례가 속출하면서 재난지원금을 왜 주는지 명분을 찾기조차 어려워졌다.

사정이 이런데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제라도 꼭 필요한 곳에 돈이 갈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판단이 애매모호하면 가능한 한 지원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재정을 자기 돈 쓰듯 말하니 기가 막힌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경계선에 있는 분들이 억울하지 않게 구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 세금을 허투루 낭비하면서 대체 누가 누굴 구제하겠다고 생색을 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단 국민 불만을 무마하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대상을 아무리 확대한다 해도 100% 지급 전까지는 경계선에 놓여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야금야금 대상을 확대해 여당 뜻대로 전 국민 지급을 관철하겠다는 것인가. 정부의 강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로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1인당 25만원을 나눠 주느라 이런 극심한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니 선거용 돈 풀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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