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20년, 외부 아닌 내부의 적이 무서운 미국[특파원 다이어리]
"테러범과 극단주의자는 악령의 자식" 비판
'빅브라더' 존재에도 극단주의 확산 못 막아
극단주의 조장 트럼프는 차기 대선 도전 예고
[아시아경제 뉴욕=백종민 특파원] 2021년 미국의 9·11테러 추모식은 사건 발생 20주년을 맞아 추모 분위기가 어느 때 보다 높았다.
마침 9·11테러를 계기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마무리한 후 열린 만큼 진영 간 논쟁의 의미도 클 것으로 예상됐다.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를 결정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뉴욕시,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 국방부 청사 등 세 곳의 추모 현장을 연이어 방문했다. 미 대통령이 9·11테러 당일 희생자들을 기리는 세 곳을 모두 방문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추모 현장에서는 발언하지 않았다. 9·11 추모식에 참석한 이들은 발언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전직 대통령들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기만 했다.
이날 미국인들의 마음을 울린 연설은 예상치 못한 이의 입에서 나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에서 연설하며 미국인의 단합을 호소하고 미국 내 극렬분자를 강하게 비판했다.
9·11 테러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시 전 대통령은 "9·11 이후 나는 놀랍고 회복력이 있으며 단합된 국민을 이끌어 자랑스러웠다. 지금 미국의 단합은 그 시절과 비교해 거리가 있어 보인다"라고 운을 뗐다.
부시 전 대통령의 비판은 자국의 극단주의자들로 향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에 대해 "그들은 (테러범들과 같은) 악령의 자식들이며 그들과 맞서는 것이 우리의 지속적인 의무이다"라고 강조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극단주의자들이 다원주의 경멸, 생명 무시, 국가적 상징을 더럽히는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생크스빌에 추락한 항공기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생크스빌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탑승객들은 테러범들과 격투를 벌였다.
테러범들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를 향하려 했지만, 승객과 승무원들은 용감하게 테러범에 맞섰고 비행기는 결국 생크스빌의 들판에 추락했다. 93편 탑승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백악관이나 미 의회 의사당이 테러로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의 위기에 맞서 자신들의 목숨을 아낌없이 희생한 이들의 앞에서 미국을 위기로 몰아가려는 극단주의자들의 폐해를 부각하는 극적인 대비를 만들어 냈다.
미국 외부 테러리스트의 위협과 내부의 국론 분열과 극단주의의를 동격 시 한 것은 미국 사회에 큰 울림이 됐다.
부시 전 대통령이 추진한 강압적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국 내 극단주의자, '외로운 늑대' 확산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SNS, 인터넷을 활용해 소통하며 가짜뉴스를 퍼뜨리며 세를 불려왔다.
9·11테러 이후 부시 전 행정부는 애국법(Patriot Act)을 통해 미국인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애국법은 법원 영장 없이도 FBI가 개인의 통신기록과 거래명세를 볼 수 있게 됐다. 증거가 없어도 징역형을 선고하거나 정황만으로 테러 용의자로 기소할 수 있었다.
애국법에 따른 미국의 감청 활동은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만천하에 드러나 충격을 준 바 있다.
한시 법안이었던 애국법을 대신해 입법된 미국 자유법도 테러 용의자 추적이나 미국 내 자생적 테러 용의자에 대한 감시ㆍ추적을 허용했지만, 미국은 미 의회 의사당 난입 사건을 막지 못했다.
미국의 자유 존중 정신이 훼손됐음에도 여전히 미국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악화할 수도 있다.
극단주의를 조장하고 의회 의사당 난입 사건을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9·11 테러 추모일에 뉴욕시 경찰서 를 방문했다.
그는 '다음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쉬운 질문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아마도 당신들도 행복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 출마를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뉴욕=백종민 특파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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