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예의염치도 곡간 차야 지켜진다

2021. 9. 1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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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은 극소수 권문세족들의 세상이었다.

이들은 독차지한 고위관직을 배경으로 정치를 지배했고 문음을 통해 대를 이어 그 특권을 계승시켰다.

고려말,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만 하던 백성들은 궁색하기 그지없었지만, 권문세족들의 곡간은 주체할 수 없이 차고 넘쳤다.

이들 신진사대부는 탐욕의 끝판왕이었던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오랫동안 쌓인 부조리를 걷어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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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은 극소수 권문세족들의 세상이었다. 이들은 독차지한 고위관직을 배경으로 정치를 지배했고 문음을 통해 대를 이어 그 특권을 계승시켰다. 자신들의 정치적 힘을 이용해 합법·비합법을 가리지 않고 농장을 확대했고 농민을 예속시켜 막대한 경제적 부를 누렸다. 홍건적의 침입과 왜구의 노략질로 인해 민생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고 국가 존망이 풍전등화에 놓여있었음에도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관포지교에 나오는 제나라 정치가 관중은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으로 예절(禮)과 의로움(義), 곧음(廉), 부끄러움(恥)을 들었다. 이 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나라가 위태롭고, 셋이 없으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모두가 없으면 파멸을 면치 못한다고 하면서도, 이 ‘禮義廉恥(예의염치)’도 ‘穀間(곡간)’이 차야 지켜진다고 했다.

고려말,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만 하던 백성들은 궁색하기 그지없었지만, 권문세족들의 곡간은 주체할 수 없이 차고 넘쳤다. ‘예의염치’가 지켜질리 만무했고 파멸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개혁세력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일 것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개혁세력이 등장했으니, 미천한 가문이나 지방 향리 출신의 시진사대부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 신진사대부는 탐욕의 끝판왕이었던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오랫동안 쌓인 부조리를 걷어내려고 노력했다. 또한, 이들은 단순한 개혁에만 머물지 않았다. 성리학 이념을 내세워 혁명을 성공시키고 조선왕조 개창으로까지 나아갔다.

현재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고려말의 상황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갈수록 깊어지는 양극화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가 심화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1%의 현대판 권문세족들에게 경제력이 집중되고 있고, 99%의 백성들은 적은 파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아등바등 다투고 있다. 경제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결정되고 세습까지 되고 있다.

경제학자 쑹훙빙은 그의 저서 ‘화폐전쟁’에서 ‘숱하게 많은 전란과 경제위기를 통해 서민들이 깨달은 진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 자유가 없을 때 정치적 자유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며,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민주제도 역시 뿌리를 잃고 돈의 농간에 놀아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자유는 물론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까지 흔들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던가. 경제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어 극소수에게 부가 집중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신진사대부는 시대적 책무를 잘 인식하고 선진 이념을 내세워 개혁과 혁명에 성공하였으나, 시대정신을 제대로 모르는 세력이 대중을 선동하여 무고한 백성들의 피만 뿌리고 극도의 혼란만 야기한 채 실패한 사례는 또 얼마나 많은가.

현재 우리의 경제적 불평등 지수가 위험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99% 국민들의 곡간이 비어가는 와중에도 1%의 부유층은 더 많은 부를 쌓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났을 때 양쪽의 경제력 차이가 또 얼마나 더 벌어질지 가늠하기 힘들다. 더 늦기 전에 경제력 집중과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99%의 국민들에게 예의염치를 돌아볼 정도의 곡간은 채워줘야 한다.

현대판 신진사대부의 등장을 기대해본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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