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 조각가 현남이 보여주는 조각의 NEXT LEVEL!
Q :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앞에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연상하게 됐다. 가장 흥미로운 실마리는 조각을 전공하지 않은 조각가가 ‘핑크 비즈니스’라는 밴드로 앰비언트와 노이즈 음악을 했다는 사실이다
A : 어릴 때부터 기타를 쳤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밴드를 했다. 록 음악 위주였는데 점차 그런 연주들이 지겨워지면서 음악보다 기타 이펙터나 앰프 같은 전자 장비들과 소리에 관심이 갔다. 전기 신호와 소리 자체를 물질로 다루는 감각이 재미있었달까. 회로를 고장 내거나 볼륨을 키워 왜곡하는 등 그때 소리를 다뤘던 감각을 바탕으로 조각 재료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해 왔다.
Q : 폴리스티렌, 에폭시, 시멘트 등 조각에 사용한 재료 모두 건축 자재상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물질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재료를 조각에 담은 이유는
A : 모두 보편적이고 편하고 값싸기에 현대에는 물성에 대한 탐구 없이, 고민하지 않고 쓰여왔다. 그러나 이 재료들 역시 녹거나 끓거나 서로 붙들거나 부서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런 성질에 따른 재료들의 고유한 형태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현대적이고 화학적이고 인스턴트한 재료라는 성질 역시 오늘의 세계와 관련 있다고 생각했다.
Q : 하얀 기둥 위에 올린 조각들이 눈에 띈다. 수석이나 분재 등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수집 문화에서 사용하던 ‘축경’이라는 개념에 착안해 조각으로 풍경을 보여주려 했다고
A : 돌덩어리 하나를 좌대 위에 올리고 그 돌 속에서 산이나 강, 구름이나 풍경을 발견하는 것이 수석 아닌가. 자연 속에서 풍화되고 침식되는 물질 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사물이 신기하게도 그것이 속한 산이나 강, 바다의 형태를 담아내니까. 지금의 세계를 축경으로 만드는 게 가능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Q : 덩어리에 굴 같은 구멍을 파고 폴리스티렌 등 유동성을 가진 재료를 부어 넣어 굳힌 뒤 틀을 제거해 완성한 조각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완성할 수 없고, 우연성에 상당 부분 기댄 작업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A : 굴을 파서 작업하게 된 계기 자체는 비트코인이었다. 비트코인 이슈가 터졌을 때, 개념이 너무 복잡해서 아무리 설명을 읽어도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더라. 그 정체를 이미지적으로 계속 상상하면서 채굴 방식으로 조각 작업을 시작한 거다. 비트코인에는 ‘가상화폐’ ‘암호화폐’ 등 비밀스러운 뭔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은 개념들이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채굴 방식으로 작업할 때, 나는 끊임없이 불안하고 의심스러웠다.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고, 형태를 자유롭게 두 손으로 만질 수도 없었다. 마지막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 구멍만 보고 있어야 했다. 이런 방식으로 조각을 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Q : 관객이 이곳에서 무엇을 목격했으면 좋겠는가
A : 시대와 상호작용하고 현재에 반응하는 조각. 업데이트된, 새로운 형태의 조각이 보이길 바란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