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날엔..] 광주 경선 승패 가른 '104표의 나비효과'

류정민 2021. 9.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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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민주당 광주 경선, 노무현 595표 이인제 491표
민주당 정치적 텃밭 광주 선택에 담긴 정치적 상징성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 -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한국 대선 역사를 관통할 결정적인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2002년 3월16일 ‘광주의 선택’을 빼놓을 수 없다. 2002년 대선의 흐름을 흔들어 놓은 사건이자 한국 정치의 토양을 바꿔놓은 선택이었다.

그날은 새천년민주당 광주 지역 경선이 벌어졌다. 광주의 선택을 분석하려면 당시 정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대세론을 이끈 인물은 정치인 이인제다. 충남 논산 출신인 그는 충청은 물론이고 호남에서도 지지세가 상당했다.

당시만 해도 지역구도는 대선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호남에 더해 충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면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정치 공학적 판단이 이인제 대세론의 배경이었다.

민주당 호남 의원들은 개혁 성향이 뚜렷했던 노무현 후보 보다는 안정감을 앞세웠던 이인제 후보 쪽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광주·전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한화갑 후보와 전북의 기대주 정동영 후보도 출마했다.

호남에 조직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던 3명의 후보(이인제, 한화갑, 정동영)가 2002년 3월16일 경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만해도 “지역 사람을 밀어줘야 한다”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후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고향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광주 시민들의 선택은 정가의 관심사였다. 대세론의 주인공인 이인제 후보, 광주·전남의 맹주인 한화갑 후보, 호남 정치의 미래로 각광을 받았던 정동영 후보와 함께 부산을 정치적 배경으로 하고 있던 노무현 후보의 득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투표함을 열기 전만 해도 이인제 후보가 1위가 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경선 돌풍의 주인공인 노무현 후보가 이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개표 결과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노무현 후보가 광주 경선에서 595표를 얻었다는 발표가 나오자 경선 현장은 환호성에 휩싸였다. 이인제 후보는 만만찮은 세를 과시했지만 491표를 얻는 데 그쳤다. 광주의 1위 자리는 노무현 후보에게 빼앗겼다. 한화갑 후보는 280표, 김중권 후보는 148표, 정동영 후보는 54표에 머물렀다.

광주가 호남에 조직적 기반을 갖췄던 후보들 대신에 영남 후보를 선택하자 대선 판도 자체가 달라졌다. 104표차의 승리는 정치인 노무현을 2002년 대선 레이스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놓은 토대가 됐다.

104표의 나비효과는 한국 정치의 토양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까지 한국 정치는 보스 중심의 정치였다. 이른바 ‘3김’으로 대표되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정치 거목들이 지역적 기반을 토대로 거대한 계파를 거느렸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유권자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에는 유권자 생각보다는 정치 보스의 생각에 관심을 기울였다. 정치 보스의 판단에 따라 정치적 행보를 결정했다. 2002년 3월16일 광주의 선택은 그런 의미에서 예상외의 결과였다.

정치공학에만 매몰됐던 당시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장이었다.

광주 경선 이후 정치인 노무현이 주도하는 ‘역대세론’이 탄력을 받았다. 노무현 후보는 당시 광주 경선 결과와 관련해 “지역구도의 극복과 동서화합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오늘 표현해 주셨다”고 평가했다.

당시로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광주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당시와는 정치적 쟁점도 다르고 후보도 다르다. 2002년과 비교할 때 지역구도는 많이 완화했다. 다만 광주 경선이 지닌 정치적 상징성은 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남도지사 출신인 민주당 이낙연 후보는 8일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직 사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광주는 이런 선택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낙연 후보 손을 잡아주면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판도를 흔들어놓을까.

아니면 충청에서 확인된 이재명 후보의 대세론에 더욱 힘을 싣는 결정을 하게 될까. 광주·전남 경선은 추석 연휴가 끝난 이후인 오는 25일 열릴 예정이다. 호남 지역 '추석 사랑방'의 기류에 따라 25일 경선 판도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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