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성 전투 순국 김억명 3형제 만인의총 배향

이종길 2021. 9. 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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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정유재란(1597) 남원성 전투에서 순국한 전남 영광 출신 3형제를 남원 만인의총에 모신다고 10일 전했다.

배향되는 만인의총은 남원성 전투에서 왜군 5만6000여 명과 싸우다 순절한 의사 1만여 명을 모신 무덤이다.

구체적인 내용에 차이가 있으나 남원성 전투 활약상은 동일하게 기록됐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남원성에 들어가 이복남 아래에서 싸우다 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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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상 '호남절의록'·'여지도서'서 확인
남원 만인의총 위패 쉰여섯 위로 늘어

문화재청은 정유재란(1597) 남원성 전투에서 순국한 전남 영광 출신 3형제를 남원 만인의총에 모신다고 10일 전했다. 김억명, 김억룡, 김억호다. 오는 26일 제424주년 순의제향에서 위패를 봉안한다. 배향되는 만인의총은 남원성 전투에서 왜군 5만6000여 명과 싸우다 순절한 의사 1만여 명을 모신 무덤이다. 1612년 건립 당시 이복남 등 충신 일곱 명을 모셨다. 이번 봉안으로 위패는 쉰여섯 위로 늘어난다.

3형제의 업적은 '호남절의록', '여지도서' 등에 나온다. 구체적인 내용에 차이가 있으나 남원성 전투 활약상은 동일하게 기록됐다. 이들은 1592년 부산 동래성 전투에서 사망한 김사모의 아들들이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남원성에 들어가 이복남 아래에서 싸우다 순절했다. 맏형인 김억명은 효성과 우애가 깊고 지극하며 충절이 강개했다고 전한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 두 아우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군사와 양식을 모아 남원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김억룡은 지조와 절개가 있으며 담력이 뛰어났다고 전한다. 김억호는 효성이 깊고 우애가 있으며 무예 실력이 남달랐다고 알려졌다. 문화재청 측은 "연구용역, 학술대회 등으로 만인의사를 분석하고, 후손 찾기와 추가 배향을 이어가겠다"라고 말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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