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켓소년단' 때문에 시작된 일.. 가을이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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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지 기자]
▲ 셔틀콕 거위털이 꽂힌 셔틀콕, 저만 우아하다고 느끼나요? |
ⓒ 픽사베이 |
기나긴 방학, 뭘 해도 시간이 안 가던 그때. 어떻게든 내 시간 좀 벌어보겠다고 아이에게 <라켓 소년단>을 보여준 것이 화근이었다. 이 작품은 시골학교 배드민턴 부원 아이들의 소년체전 도전기를 담은 드라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이라 재밌게 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빠져들 줄은 몰랐다.
우리는 나갈 소년체전도 없는데 매일 배드민턴 특훈에 나섰다. 서브도 제대로 할 줄 모르던 아이가 나와 비등비등한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은 자기 개발서의 말마따나 매일 행한 반복의 힘 때문이었다.
배드민턴은 좋은 운동이다. 비용도 크게 들지 않고, 도구도 간단하다.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국민운동이다. 단 하나, 반드시 짝이 필요한 것만 뺀다면 말이다.
축구, 농구, 골프, 야구, 모두 혼자서 연습할 수 있는 운동이다. 그런데 배드민턴은 연습을 할 때조차도 파트너가 필요하다. 드라마를 보여주며 내 시간을 갖게 됐다고 좋아할 때는 몰랐다. 내가 방학 내내 '라켓 줌마'로 살게될지... 벼룩을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 여자가 바로 나였다.
가을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배드민턴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배드민턴에 꽤 흥미를 느꼈다는 사실이다. 내 환심의 이유는 전략 질주를 하지 않고 네모난 코트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면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이와 축구 경기를 하다가 며칠을 앓은 전력이 있는 나로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배드민턴의 매력이 발산되는 계절은 단연 가을이다. 혹시 가을날에 배드민턴을 쳐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한 번 경험해보길 바란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 위로 하얀 깃털이 콕콕 박힌 셔틀콕이 핑~하고 갔다고 퐁~하고 돌아오는 그 포물선의 아름다움. 나는 그 깃털이 하늘빛깔에 반해 날아가 버릴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런 감상에 젖어 있다가 네트 건너편을 보면 이를 앙 물고 기어코 쳐보겠다고 집중하는 소년의 눈매가 보인다. 라켓 헤드 중앙에 셔틀콕이 정확히 맞으면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그립에 닿는 진동, 셔틀콕을 주고받을 때 느껴지는 상대와의 호흡... '아~ 이것이 운동의 쾌감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배드민턴을 치면서 새로이 알게됐다.
특히 셔틀콕의 모양은 나를 더 감상적이게 만들었다. 냉혈하고 거친 스포츠의 세계에서 누가 새의 깃털을 운동 도구로 사용할 생각을 했단 말인가. 그 우아한 상상력에 나는 감동해 버렸다. 셔틀콕을 날려 보낼 때 나는 가슴속의 새 한 마리를 날려 보내는 희열을 느끼곤 했다. 비록 우리 집 셔틀콕은 싸구려 플라스틱 깃털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공식 대회에서 쓰인다는 거위털 셔틀콕을 꼭 사용해 보고 싶다.
하늘 위로 셔틀콕이 날아오르는 장관
배드민턴이 신묘한 것은 칠 때마다 그간 만나온 사람들과의 관계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핑~하고 던지면 퐁~하고 받던 사람은 나의 절친이 되었다. 핑~하고 던졌는데 못 받아치던 사람과는 끝내 가까워지지 못했다. 부드럽게 올려주었는데 날카롭게 내리꽂던 사람과는 연을 끊었다. 네트를 넘기지 못한 서브 미스는 마음이 닿지 못했던 사람을 떠오르게 했고,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이상하게 흘러간 플레이는 이유도 모른 채 멀어진 사람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고 보니 아들과 배드민턴 합이 잘 맞는 요즘은 실제로도 대화가 잘 통하는 느낌이다. "엄마. 오늘 날씨 짱 좋은데?" (핑~) "그럼 배드민턴 콜?" (퐁~)하는 식이다. 하지만 곧 사춘기라는 플레이에서 날카로운 스매싱이 날아올까 두렵기도 하다. 그렇다고 나도 똑같이 스매싱을 날리기보다 아이 쪽으로 부드럽게 공을 보내주는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다.
열렬히 쫓아다니던 여름날의 무더위도 막상 떠난다니 아쉽다. 하지만 선선한 공기와 시리도록 파란 하늘빛이 그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할 만큼 좋은 날들이다. 호흡이 잘 맞는 배드민턴 같은 사람과의 대화도 그립고, 셔틀콕의 부드러운 깃털처럼 높이 날아오르고픈 마음도 한 가득이다. 하지만 마음처럼 누군가를 자유롭게 만나지도 날아오르지도 못하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배드민턴을 챙겨 공터로 나가보자.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을 배드민턴으로 달랠 수 있을 것이다. 곧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제 배드민턴의 즐거움과도 작별을 고해야 한다. 실내에서 자유로이 칠 수 있는 날은 또 언제오려나... 그러니 이 순간을 더욱 즐겨야 한다.
나는 오늘도 아들과 배드민턴 채를 매고 집을 나선다. 뭉게구름이 옵션인 하늘 위로 셔틀콕이 날아오르는 장관을 보기 위해, 예비 사춘기 아들과의 매끄러운 호흡을 맞추기 위해, 내 마음의 새를 자유로이 날려 보내기 위해.
혼자만 알기 아까운 이 기분을 꼭 함께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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