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청소 한 번만 하자, 굴러들어 온 행복 [너무 늦은 때란 없다]

박미연 2021. 9. 1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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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집 포기한 대가로 거머쥔 시간과 에너지, '나'를 찾기 위해 씁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미연 기자]

50대 주부가 일주일에 딱 한 번 청소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주부가 청소도 안 한다고?'
'어떻게 그렇게 살지?'
'어디 아픈가?'

오만가지 소리가 다 들려오는 듯하다. 얼마 전까지 난 쓸고 닦고, 보통의 주부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함이다.

누구를 위해 날마다 쓸고 닦았던고

결혼 후, 얼마간 일본에서 살았다. 어느 날 딸아이가 일본인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해가 기울 무렵, 아이를 데리러 그 집에 갔는데, 그 엄마가 나를 집안으로 들였다. 일본인들은 보통 친한 사이라도 문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데, 그 엄마는 달랐다. 

그 집에 들어간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물론 속으로). 집안이 온통 물건으로 가득찬 게 아닌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그녀의 자유스러움이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한국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가는 집마다 어찌나 깨끗한지...

누가 우리 집에 온다고 하면 그날은 초비상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부엌 때를 벗겨내고, 화장실 냄새를 제거하고... 난 그렇게 사회적 시선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밑빠진 독에 물 붓듯, 가사와 돌봄 노동에 내 인생을 쏟아부었다.

좀 지저분하면 어때서?
 
 일주일 내내 우리집 방 세개는 이런 모습이다. 6월초 이사한 후, '이사한 날 처음처럼!' 슬로건을 내세웠건만,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와 잔소리가 필요했다. 그냥 이대로 살기로 했다.
ⓒ 박미연
 
재작년 추석 즈음 세탁기를 핑계로 건조기와 로봇 청소기까지 구입했다. 이젠 좀 가사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만 이 집에 살아? 왜 나만 죽어라 집안 일을 해야 하지? 그렇다고 여태껏 도맡아 해온 일을 누군가에게 억지로 떠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건조기와 로봇 청소기였다. 로봇이 지나가는 자리에 있는 물건을 치우는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주말에 각자 자기 물건을 정리하고, 그때 비로소 로봇 청소기를 돌린다. 

덕분에 안방에는 일주일 내내 요와 이불이 깔려있다. 처음엔 이게 참 불편했는데, 점점 익숙해졌다. 이불은 그대로 둔 채 몸만 쏙 나오고 쏙 들어가고... 이렇게 살아도 큰일나지 않는 것을!

예전에는 아이들 방이 지저분한 것도 잔소리거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잔소리가 사라졌다. 나 대신 로봇 청소기가 일주일에 한 번 애들 방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세탁기와 건조기도 일주일에 딱 하루만 일한다. 게다가 빨래는 옆지기가 전담하게 되었으니, 야호!

얼마만인가. 집안일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난 것이!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이듦은 다른 삶을 모색할 수 있는 힘

마거릿 크룩생크는 <나이듦을 배우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저 디저트 Just Desserts>(힐라 콜먼)는 한 여성의 생각이 담긴 작품이지만, 가족을 돌보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중첩된 책임을 감당하느라 과도하게 자신을 소모하면서 평생을 달려온 많은 여성의 경험이기도 하다. 어떤 지점에서 그들은  멈추고자 한다. -356쪽

맞다! 그 여성의 경험이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나도 결혼한 이래 가족 중심으로 살다보니, 나의 생각과 마음이 항상 분주했다. 그들을 위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했다. 한마디로 엄마와 아내에게 주어진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달려온 인생이었다. 어느 순간 나도 이 달음질을 멈추고 싶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 뒤치다꺼리만 하긴 싫었다. 그런 삶이 계속되리라는 생각만으로도 진저리가 났는데... 그것을 갈아엎고 다른 삶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은 알고보니 '나이듦의 파워(power)'였다.

30~40대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 50대엔 가능하다는 게 믿어지는가. 자신을 위해 시간을 조정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그동안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 내 자신이 되는 것, 나만의 독특함을 찾아가는 것, 나 개인의 성장을 이루는 것.

물론 믿어지고 말고! 내가 경험한 것이기에. 깨끗한 집을 포기하니, 나에게 시간과 에너지가 굴러왔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아침에는 숲속 산책을 하며 내면의 고요와 충만을 누리고, 점심 후에는 자판을 두드리며 이렇게 글도 쓰고, 저녁에는 책을 읽으며 발췌를 하거나 영화를 본다.

줌으로 삶의 지경도 넓혀갔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교육으로 글쓰기뿐 아니라, 전국에서 활동하는 시민기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50~60대 페미니스트 여성들과 책읽고 토론하고, 작가들의 북토크에 접속하고, 일본어 원서를 같이 읽고, 여성노동단체에서 주최하는 강의도 듣고... 모두가 나를 위한 시간이자 내가 되는 시간이다.

지금의 이런 내가 너무 좋다! 10년, 20년 후엔 어떤 나를 마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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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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