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주말부부'가 된 후 일어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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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 기자]

나는 어릴 적부터 결혼을 빨리 하고싶었다. 이것은 나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스스로 나를 평가하자면, 좋게 말하면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현실감각이 다소 떨어지는 '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살아보니 '철이 없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지만 40대가 되니 나의 이런 성향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생각이 든다.
 

▲ 나는 어릴 적부터 결혼을 빨리 하고싶었다. 이것은 나의 성격과도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 pixabay

 
나의 결혼생활을 돌아보면서 알게된 것

결혼 후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나의 성향이 많이 드러났던 것 같다. 때로는 남편이 너무 좋다가도 어느 날은 너무 싫어지기도 하였다. 뒷모습만 보고도 설레고 멋지다 느끼다가도 갑자기 안 좋다 생각되면 별것도 아닌 것에 트집을 잡는 날도 있었다. 내가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숨기지 않는 것이 내 성격이고 이것이 가식보다는 낫다며 상대방에게도 합리화한 듯싶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에 대한 나의 감정, 즉 애정이 식어가는 것에 대하여 '권태기'가 왔다며 지인에게 말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어느 부부에게나 일어나는 당연한 일들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고 마치 큰 문제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지인은 이런 나의 성향을 너무 잘 알고, 권태기에 대한 비슷한 이야기를 몇번 들었던 터라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주었다.

"내 생각에 언니는 언니 남편을 만나서 헤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아니면 좀 힘들었을지도 몰라..."

나는 이상하리 만큼 지인의 이러한 말이 결코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던 것 같다. 왜냐하면 진심어린 조언이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의 심리는 참 아이러니하다. 누군가에게 남편이나 가족에 대한 험담을 마구 쏟아내면 속이 시원할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타인이 그것을 동조하거나 인정한다면 생각과 달리 거북하거나 그런 사이는 결국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내가 지인에게 이런 말들을 편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상 그의 지혜와 성품을 믿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똑같은 말을 하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나의 이야기에 대한 동조와 공감보다는 사실상 '현실인식'과 '반성'이었다고 생각된다. 자발적으로 깨닫고 변화하는 것이 가장 옳지만, 당시 나는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렇게나마 나의 심경을 털어놓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철 없는 나의 마음을 다잡고 싶어서 지인의 직언과 지혜로움에 의지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때때로 감정기복이 있고 어린 아이같기도 한 내가 이성적이고 한결같으며 따뜻한 남편을 만난 것은 참 다행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실에 맞지 않게 결혼 후에도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설렘'과 같은 연애감정을 느끼고 싶어했다.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권태기에 빠지거나 홀로 마음의 방황을 하는 날도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표현만 하지 않을 뿐, 남편은 나와 같은 아내와 사는 것이 힘들 때도 많았을 것이고 권태기를 느낀 적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다만 '부부'라는 관계로 아내를 존중하며 기본적인 예의를 다했던 것이다. 
 

▲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일과 육아로 지친 상태에서 신체뿐 아니라 감정 또한 소진을 겪어서 작은 일에도 더 예민했던 것 같다. 또한 남편과 나는 모두 직장일로 너무 바빴고 쫓기듯 살아와서인지 마음의 여유가 거의 없었다. ⓒ pixabay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우리 부부는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행복한 신혼을 지나 세 아이를 낳았고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면서 '직장과 가정 어디서도 퇴근이 없는 고통'을 절대적으로 체감하며 정말 바쁘고도 열심히 살아왔다.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지만 지치고 힘겨운 날들도 무사히 잘 견디어왔다. 그 속에서 우리 부부는 애정기, 권태기 혹은 무관심의 시기도 겪어오다가 이제는 40대가 되어 또 다른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맑은 날, 궂은 날, 비바람이 치던 날들을 지나 한차례 태풍이 불다가도 어느새 평온해지는 날들을 지나왔다. 결국 이런 과정은 어느 부부에게나 있는 일상이자 역사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은 존재한다. 따라서 부부 사이에도 이는 당연하다. 약 13년 동안 부부로 살아온 우리는 결혼 초 많이 다툰 것에 비하여 최근 몇년은 크게 다투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많이 어릴 때는 일과 육아로 지친 상태에서의 소진은 신체와 감정을 모두 지배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더 예민했고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최근 몇년 동안 각자의 직장일로 너무 바빴고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와서인지 마음의 여유가 거의 없었다. 그로 인해 서로에 대해서 지극히 무관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어느정도 성장하여 육아로 인해 많이 지치는 일들은 일정부분 해소되었고, 남편과 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나름의 방법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가면서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있다. 그리고 과거 부부간 다툼의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그것의 공통적인 원인과 요소를 이미 학습하였다. 그래서 다툼이 생길 만한 특정 상황이 생겨도 그 원인과 요소만 잘 제어하면 된다는 것 또한 너무 잘 알고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 역시 나름의 방법으로 그것들을 잘 제어하고 있다. 부끄럽지만 내가 이전보다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갈등 상황에서도 이전과 다른 방식 즉, 내가 터득한 성숙한 방식으로 남편에게 대응하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로 보인다. 별 것이 아닌 것 같았던 일상적인 노력이 건강한 부부로 살아가려면 꽤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확고히 깨달아가고 있다. 

갑작스럽게 '주말부부'로 지내다보니...

이렇게 작지만 큰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부부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이직으로 인하여 당분간 주말부부로 지내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주말부부가 어떨지 앞선 걱정도 많았다. 남편이 전적으로 해주던 '쓰레기 처리 및 분리수거'를 비롯한 살림과 육아의 모든 것을 나홀로 감당하는 일, 게다가 불현듯 등장하는 무서운(?) 벌레를 용감하게 물리치는 일은 상당히 두려웠다. 물론 현재까지는 잘 해내고 있지만 지난 번 벌레를 목격했던 날 남편이 매우 그리웠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던 와중 나는 얼마전 예상치 못하게 청춘의 연애세포가 되살아나는 기이한 경험을 하였다. 40대가 된 나의 일상에 청춘 시절에나 느꼈을 법한 연애 당시의 심경이 재현된다는 것은 결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것의 시발점은 바로 남편과의 소통이었다. 결혼 전 남편과 나는 장거리 연애를 하였다. 직장 근무지가 서로 달랐던 우리는 평일에는 거의 매일 전화통화를 하였다. 물론 메시지도 많이 주고받았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자기 전 이불 속에서 오랫동안 통화를 하였는데 늦은밤 혹은 새벽을 넘어서까지 통화를 한 기억이 있다.
 

▲ 서로 떨어져있지만 여전히 내가 남편에게 하고싶은 말은 많다. 마치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하루종일 하지 못한 말들은 늦은 밤에도 메시지 혹은 전화통화로 하게되는 것 같다. ⓒ pixabay

   
평소에도 나는 남편에게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남편은 거의 들어주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서로 떨어져있지만 여전히 남편에게 하고싶은 말은 생성된다. 마치 내가 하루에 해야 하는 대화의 양이 정해지기라도 하듯이 '질량보존의 법칙'처럼 낮동안 하지 못한 말은 늦은 밤 메시지 혹은 전화를 걸어서라도 하게되었다. 최근 이러한 방식으로 남편과 계속 소통을 하다보니 새벽 1시를 넘긴 날도 꽤 있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불현듯 남편과 내가 연애를 하던 그 시절, 늦은 밤 통화를 하던 커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세월이 흘렀지만 먼거리에서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이 왠지 새롭게 느껴지며 즐겁기까지 하였다. 우리 아이들, 부모님, 직장, 꿈 등 일상의 이야기부터 정치, 경제 등 사회의 이야기까지 소재는 무한했다. 

특히 최근 남편의 이직으로 새로운 이슈가 생겨서인지, 호기심이 많은 나는 어느때보다 더 많이 관련 질문을 던지고 하고싶은 이야기도 많은 것 같다. 나는 어제 새벽 불현듯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던 추억 속 감성, 20대의 연애세포가 살아나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며 왠지 모르게 행복했다. 남편도 역시 '응답하라 2008'이라며 우리가 만난 그 시절을 추억하는 듯하였다. 

요즘 나의 마음이 편안해져서 남편과의 소통에서도 이런 특별한 생각이 싹튼 것일까. 어쩌면 이렇게 기분 좋은 생각들을 통하여 내 마음 깊은 곳의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으려는 하나의 방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것이 나의 주말부부 적응 과정이자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주말이 더 기다려지는 아내이기에, 10월 어느 날 주말부부와의 이별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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