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청년이장 "농촌도 충분히 살 만해요" [복작복작 순창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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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육상 기자]
▲ 사진촬영을 위해 남근석으로 세운 상촌마을 표지석 앞에서 아주 잠시 마스크를 벗은 강귀영(38) 이장. |
ⓒ 최육상 |
"저보다 젊은 이장님이 안 나타나더라고요. 이것 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하하하."
1984년생, 38세. 강귀영 이장은 마을 주민의 표현을 빌리면 "일 잘하는 젊디젊은 청년이장"이다. 지난 2일 전북 순창군 풍산면 상촌마을 회관에서 만난 그는 "젊은 이장"이라는 말에 해맑게 웃었다. 이장을 맡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스물아홉 살 때 처음 이장을 맡았죠. 사실, 전임 이장님이 건강이 안 좋으셔서 남은 6개월 임기만 저한테 잠깐 봐달라고 하신 거예요. 그런데, 주민들께서 '이장 할 사람이 없으니까 한 번만 더 하라'고 맡기신 게 벌써 9년째네요."
군 복무 대신에 선택한 농부의 길
농촌에서는 청년 농업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순창군의 311개 마을에서 청년 이장은 더욱 만나보기 어렵다. 상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강 이장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마을을 떠났다. 그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건 아버지의 건강 악화와 군 입대 시기가 맞물리면서였다.
"군대 가려고 휴학했는데.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농어민후계자'를 신청했어요. 당시에 농어민후계자가 돼 농사지으면 군대가 면제됐거든요. 농촌에 젊은 농부가 없으니까 정부에서 군 면제시켜주면서 농사짓게끔 저리로 융자도 해 주고 사업지원도 해 줬어요. 군 복무 대신 농사지으면서 농업인이 된 거죠. 지금도 한국농수산대학에는군 면제 지원제도가 있어요."
농촌 아이들이 그렇듯 강 이장도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 농사일을 도왔다. 이십대 중반, 혈기 왕성한 나이에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고 어느덧 14~15년이 됐다. 현재는 논 180마지기(한 마지기 200평), 3만 6000평 정도 농사짓는다. 벼 농사와 딸기 재배, 소 사육도 병행한다.
한 주민은 "젊은 이장이 농사짓고 소 키우고 어르신들 돌보며 하루 종일 일만 한다"고 귀띔했다.
강 이장은 "농사도 아버지 몫이 있고, 제 몫이 있으니까 나눠서 한다"며 "일손이 부족하니까 마을 주민 분들에게 품삯 드리면서 도와 달라고 요청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농부 아버지로부터 자연스레 가업을 이어 받았다.
"아버지가 일찍 결혼해서 마을에서 기계로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까 할아버지께서 트랙터 한 대를 사 주셨어요. 대한민국에서 4번째로 나온 '동양트랙터 3840'인데, 잊을 수가 없어요. 하하하. 그 기계가 제 나이랑 비슷하거든요. 그 때 아버지가 젊으셨으니까 기계를 사 가지고 벼도 훑어 주고 마을 농사 다 도와주셨죠."
"하루 종일 일만 하는 이장"
대화 도중 마을 주민 한 분이 회관으로 들어왔다. 주민에게 '어떤 이장인지 한 말씀 해 달라'고 요청하자 "이장님? 일 하나 못 혀"라면서 웃었다. 회관에서 볼 일을 마친 주민은 "이장님? 잘하니까 계속해야 해. 문단속 잘하고 가"라며 무심히 회관을 나섰다. 예고 없는 주민의 방문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어르신들과 소통이 잘되는 것 같다'며 강 이장을 바라보자, 그는 "주민들께서 윗집 아랫집 정말 사이좋게 지내시고, 서로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정말 좋은 마을"이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제가 열정은 있지만, 저도 농사짓고 먹고 사느라 마을 일을 잘 못해 드린 것 같아요. 이장 그만 하고 싶은데도, 어르신들이 저한테 잘한다고 말씀해 주시니까 감사한 마음이죠."
상촌마을에는 68세대가 있다. 남자가 77명, 여자가 60명으로 137명이 거주한다. 70~ 80대가 60% 정도 되고, 아이들 포함해서 젊은 층이 40%가량이다. 회관 앞 도로변에는 커다란 남근석이 상촌마을 표지석으로 세워져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아주 잠시 마스크를 벗고 남근석 앞에 선 강 이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 남근석은 저기, 다리 하천공사 하다가 묻혀 있던 걸 발견했어요, '마을 남자들 바람피우지 말라고 묻어 놓았다'고 그러더라고요. 하하하."
남근석이 어떤 영향을 줬을까. 순창군의 면 소재 마을 중 상촌마을은 비교적 인구수도 많고, 남성 비율도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강 이장은 "제가 농사짓기 시작했을 때부터 계시던 마을 분들이 이제는 거의 80대가 되셨다"면서 "10년 후면 90대가 되시는데, 앞으로 저희 마을도 (인구가 줄어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 강귀영(38) 이장은 “마을에서 제일 해결 안 되는 게 쓰레기 문제”라고 말했다. 상촌마을뿐만 아니라,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은 농촌 마을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이다. |
ⓒ 최육상 |
대화 내내 유쾌하던 강 이장이 목소리를 바꿔 진지하게 지적한 대목이 있다. 강 이장은 회관 앞 공터에 널찍하게 자리한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일 해결 안 되는 게 쓰레기 문제예요. 회관 앞에 전에는 영농폐비닐집하장이 따로 있었어요. 그런데 장판 넣어 놓지, 아무 쓰레기나 던져 놓지, 쓰레기 처리비용으로만 80만 원이 들었어요. 할 수 없이 폐비닐집하장을 뜯어냈죠. 근데 영농폐비닐은 계속 나오잖아요. 비닐만 모아놓은 곳에 또 쓰레기를 버려요. 쓰레기 좀 잘 버리면 좋겠어요."
강 이장은 대화 내내 젊은 혈기를 뿜어냈다. 그는 '도시의 젊은이'에게 전하는 듯, 청년이장다운 힘찬 목소리로 "농촌도 충분히 살 만하다"고 강조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면 어느 정도 적응하기 전까지는 자기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자리를 잡으면 마음대로 시간 조정이 가능해요. 저도 직장생활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는데 지금이 좋죠. 마음이 편하니까. 언제고 쉴 수 있고. '도시에 일자리가 없다'는 기사를 보면 마음이 안 좋아요.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하니까 문제죠. 농촌도 충분히 살 만하거든요."
대화가 끝날 무렵 조심스레 '연 수입'을 묻자 강 이장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 덕분에 부지런만 떨면 대기업 연봉 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서 "농부의 삶을 선택한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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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9월 9일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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