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지하세계를 뚫고 울려 퍼지는 자유의 노래

장지영 2021. 9. 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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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하데스타운' 한국 무대
그리스 신화 캐릭터 현대적 재해석
다양한 음악·무대 디자인 등 눈길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사랑을 느끼는 장면. ‘하데스타운’은 2019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돼 그해 토니상 14개 부문에 올라 8개 부문을 수상한 수작이다.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라이선스 공연이 진행 중이다. 에스앤코 제공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지’ 뉴욕 브로드웨이는 코로나19로 약 18개월간 폐쇄됐다가 최근 다시 문을 열었다. 연극은 지난달 22일 ‘패스 오버’(Pass Over), 뮤지컬은 지난 2일 ‘하데스타운’과 ‘웨이트리스’가 스타트를 끊었다. ‘하데스타운’은 브로드웨이가 폐쇄되기 직전 가장 핫한 작품이었다. 2019년 3월 프리뷰를 시작해 4월 본공연에 돌입한 ‘하데스타운’는 그해 6월 제73회 토니상에서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돼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다. 이후 티켓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만 이듬해 3월 12일 브로드웨이 극장 폐쇄로 아쉽게 막을 내렸다.

‘하데스타운’의 첫 라이선스 공연이 한국에서 이뤄졌다. LG아트센터에서 지난 7일 개막한 ‘하데스타운’(제작 에스앤코)은 미국 싱어송라이터이자 극작가인 아나이스 미첼이 2006년부터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노래들을 발표한 게 출발점이다. 2010년 이들 노래를 모은 콘셉트 앨범이 성공을 거두자 미첼은 2년 뒤 연출가 레이첼 채브킨을 만나 무대화를 추진했다.

2016년 오프 브로드웨이를 거쳐 2019년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 및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독특한 작품이다. 신화에선 뛰어난 리라 연주자인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세계로 아내를 찾으러 간다. 저승을 다스리는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오르페우스의 연주에 감동해 에우리디케를 이승으로 돌려보내기로 한다. 단 이승에 도착할 때까지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하지만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걱정된 오르페우스가 되돌아보는 바람에 에우리디케는 저승으로 돌아가게 된다. 혼자 이승에 온 오르페우스는 슬퍼하다 죽게 된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세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난한 지상세계와, 의식주가 해결되는 대신 노동을 강요당하는 지하세계를 그렸다. 지상세계에서 음악가를 꿈꾸는 청년 오르페우스와 가난한 아가씨 에우리디케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행복도 잠시, 오르페우스가 음악에 몰두하는 동안 에우리디케는 궁핍한 삶에 지친다. 다른 커플인 지하세계의 지배자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는 권태기의 중년 부부로 1년의 반 이상을 떨어져 산다. 신화에선 하데스가 한눈에 반한,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결혼한다. 데메테르의 항의를 받은 제우스의 중재로 페르세포네가 1년의 3분의 1만 하데스와 살게 되는데, 이때 세상에는 겨울이 온다.

하데스는 하데스타운에선 굶지 않는다고 에우리디케를 유혹하고, 에우리디케는 하데스와 계약을 한다. 지하세계로 간 에우리디케는 자유 없는 노동의 반복으로 자아를 잃어간다. 오르페우스가 뒤늦게 극 중 해설자이기도 한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오지만 하데스는 계약을 들어 거절한다. 어쩔 줄 모르던 오르페우스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데,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서로에게 잃어버렸던 사랑을 다시 떠올린다.

신화와 마찬가지로 뮤지컬에서도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감동해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에우디리케를 보지 않는 조건으로 둘을 보내준다.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반복하지만, 뮤지컬에선 오르페우스가 죽는 대신 에우리디케와 다시 만나는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행복해지기 위해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하데스타운’의 두 세계는 어느 한쪽이 나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사랑과 돈’ ‘안정과 모험’ 등 대립적인 가치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 묻는다.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문제이자 각각의 입장이 분명히 드러나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세대를 불문하고 스토리에 공감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테마와 함께 에우리디케 등 죽은 자와 지배자 하데스는 각각 노동자와 자본가에 투영됨으로써 현대사회의 격차 문제를 상기시킨다.

대사가 적고 노래와 밴드 연주가 중심이 돼 이야기가 진행되는 ‘하데스타운’은 콘서트를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재즈 블루스 포크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음악은 기존 뮤지컬에선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뉴올리언스풍의 술집부터 지하세계에서 죽은 자들이 일하는 공장까지 회전무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무대디자인과 다이내믹한 안무 등 볼거리도 많다. 공연은 내년 2월 27일까지.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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