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이석진 목사] "재해 현장 속에서 인류애 꽃피고 선교 기회 열린다"

우성규 2021. 9.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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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탈출하는 곳으로 이들은 들어간다.

"미국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피해 때도 달려갔습니다. 피해가 어마어마했지만, 미국은 잘사는 나라고 뉴올리언스 시민들을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이송하는 등 구호체계가 정비돼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저희보고 '너희 가난한 나라에서 얼마를 들고 온 거니.' 이렇게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 멀리 한국에서 온 것 자체, 그리고 재난당한 자신들과 함께 있어 주는 것 자체에 대해 진심으로 감격했습니다. 잘 살거나 못 살거나 똑같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동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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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떠납니다' 펴낸 이석진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사무국장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사무국장인 이석진 목사가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서울광염교회 목양실에서 세계지도를 보며 긴급 재난 구호 경험을 말하고 있다. 신석현 인턴기자


남들이 탈출하는 곳으로 이들은 들어간다. 국내에선 1995년 삼풍백화점, 해외에선 2003년 이라크전쟁 직후의 바그다드를 시작으로 국내외 재난 현장을 누볐다. 이란 파키스탄 네팔 부탄 아이티 칠레 그리고 중국 쓰촨성의 대지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의 쓰나미, 필리핀 미얀마 방글라데시의 사이클론 피해와 동일본 대지진에 이어 미국 허리케인 피해지역까지 20년 넘게 재난당한 이웃에게 긴급 구호의 손길을 펼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의 이야기다.

책의 제목은 ‘그래도 우리는 떠납니다’(생명의말씀사)이다. ‘지진과 태풍을 쫓아가는 특별한 여행기’란 부제가 붙어있다. 저자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의 사무국장 이석진(55) 목사다. 봉사단 단장인 조현삼 서울광염교회 담임목사가 길을 뚫고 몸 쓰는 일을 주로 맡는다면, 사무국장인 이 목사는 구호품을 준비하고 교통편을 확보하는 등 협상하는 일을 맡는다.


재난의 피해가 집중된 곳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들어가 식량이 끊긴 이들에게 2~3주 버틸 먹을 것, 입을 것을 전달하는 말 그대로의 ‘긴급 재난 구호’다. 지난 3일 서울 노원구 서울광염교회에서 만난 이 목사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 여느 NGO와는 다른 점부터 설명했다.

“평소엔 저도 서울광염교회 21교구 담당 목회자입니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하면 곧바로 봉사단의 사무국장이 됩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조끼 텐트 침낭 안전모 안전화와 함께 여권이 교회 사무실에 보관돼 있습니다. 일반 NGO와 달리 CMS 후원이 없고 상근자도 없습니다. 교회가 곧 봉사단이기에 파송 결정이 나면 밤 비행기를 타고 빠르게 현장으로 갈 수 있습니다. 재난이 발생한 초기 열흘의 구호에 전력하고 이후엔 체계적 복구 활동을 하는 NGO에 사역을 넘기고 돌아옵니다.”

서울광염교회가 주축인데 이름은 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을 쓸까. 이 목사는 “국내 재난 시 만일 우리교회 이름을 걸고 봉사를 했다면 ‘서울에서 온 교회가 이렇게 일하는데 지역 교회는 뭐하냐’는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이름을 내걸고 ‘한국교회가 함께 합니다’라고 적힌 천막을 내걸면 자연스레 지역의 교회들이 몰려와 함께 봉사의 손길을 보탠다. 선한이웃교회 남서울은혜교회 사랑의교회 삼일교회 등은 재난 때마다 후원으로 도움을 준다. 이 목사는 “초기에는 주로 서울광염교회 성도들과 재정들이 투입되지만, 이내 한국교회가 재난당한 이웃을 찾아 달려오게 된다”면서 “말 그대로 한국의 기독교가 연합한 봉사단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게 되는 자연재해의 처참함 앞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행위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 목사는 사이클론이 강타한 미얀마 라부타 마을에서 강에 널린 시신을 헤집고 배를 타고 들어간 경험, 역시 도심 한가운데 시신이 널린 아이티 대지진 현장에서 굶주린 군중의 폭동 움직임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런데도 이들이 떠나는 이유는 한 가지. 재해의 현장 속에서 인류애가 꽃피고 선교의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미국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피해 때도 달려갔습니다. 피해가 어마어마했지만, 미국은 잘사는 나라고 뉴올리언스 시민들을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이송하는 등 구호체계가 정비돼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저희보고 ‘너희 가난한 나라에서 얼마를 들고 온 거니.’ 이렇게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 멀리 한국에서 온 것 자체, 그리고 재난당한 자신들과 함께 있어 주는 것 자체에 대해 진심으로 감격했습니다. 잘 살거나 못 살거나 똑같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동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여행입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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