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둘째를 낳았다. 언니가 된 첫째는 새 이가 났다
6개월 전, 나은이에게는 동생이 생겼다. 그리고 첫째는 동생이 태어나기 한 달 전부터 자신의 방에서 혼자 잠이 들었다. 엄마가 동생의 육아에만 집중했던 지난 반년의 시간 동안 나은이는 어설프지만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고 그중 제일로 잘하는 것이 양치였다. 그래서 믿고 아이에게 치아를 맡겼는데,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아이가 참다 참다 첫니가 거의 빠질 듯 아슬하게 잇몸 끝에 달려 있는 것을, 동생이 잠든 후에야 내게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마치 반짇고리 함을 구급함이라도 되는 양 의연하게 아이 앞으로 들고 왔다. 그러고는 가장 굵은 실을 꺼내 보이며 “엄마가 아프지 않게 뽑아줄게”라고 말했지만 아이의 이빨에 실을 감는 손이 떨렸다. 실에 감아지지도 않을 만큼 작은 유치라서 나은이는 수차례 뽑히지 않은 이를 손으로 감싸며 울먹였다. 미안해 나은아. 아직 너도 아가인데 엄마가 너의 성장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것 같아.
다음날 결국 동네 치과로 향했다. 어제의 일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발치는 수월했다. 아이의 이가 빠진 자리 뒤로 진작 새 이가 머리를 보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아이의 치아 X레이를 보여줬는데, 순간 놀랍고 신비로워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유치 바로 아래에 어른 치아들이 소복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치아가 하나씩 돋아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치아 씨앗들이 준비가 돼 있고 언제 돋아날지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이 하나 하나 올라오는 과정이 이토록 아프고 요란한데, 저 많은 치아들과 언제 다 조우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아플까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빠진 이를 흔들며 치과를 벗어나는 순간, 나은이는 자신이 몇 분이나 울었냐고 물었다. 1분도 채 울지 않았다고, 하지만 더 울어도 괜찮다고 말하며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이의 길어진 다리와 한층 더 유려해진 표현력을 느끼며 아이가 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생이 태어난 후 자신만 바라봐 주지 않았음에도 계절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는 아이, 동생이 자신의 장난감을 침 범벅으로 만들 때도 “너무 귀여워서 뭐라고 할 수 없다니까 호호.” 말해준 첫째에게 꼭 마음을 종이에 써서 전하고 싶다.
나은아! 네 기억의 테두리에 있는 엄마는 늘 동생만 안고 있었지. 하지만 네 귀여움은 동생의 귀여움과 감히 비교할 수 없었고, 너를 키우는 동안 받은 첫 감동은 동생의 육아와 비교할 수 없단다. 서툰 엄마 때문에 근심도 사랑도 더 많이 받은 내 아기. 네 덕에 동생도 둥글게 수월하게 키울 수 있는 것 같아 고마워. 우리가 사는 동안 앞으로도 무한히 사랑하겠지만 분명한 건 동생을 사랑한 시간보다 너를 사랑한 시간이 더 크다는 거 첫째야 잊지 마렴. 엄마에게 언제나 첫사랑 나은이 오늘 용감하게 첫니를 보내줘서 멋져. 오늘 언니 된 것 축하해!
입추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해가 지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치 동생에게 엄마 자리를 양보했다는 듯 나은이의 첫니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여름이 지나갔다. 아이는 베란다에 서서 바람을 느끼며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 맞아. 또 가을이 왔어.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두근두근하는 그 느낌, 바로 나은이가 언니가 돼가는 느낌이란다. 물러지고 달아진 가을 열매처럼 첫째의 잇몸이 다시, 간지럽기 시작한다.
전지민 전 에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그린 마인드〉 편집장. 지금은 강원도 춘천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여성과 엄마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는 내용을 담은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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