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오 초의 장식

2021. 9. 9. 19:3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 초도 안 되어 보이는 눈썹 팔랑이
실은 오만 오천오백 년 전의 설렘일지 모른다
아름다운 여인의 귓불을 통했거나
죽어야만 볼 수 있는 최초의 나를 본 걸 수도 있다
삶의 비의는
다만 오늘의 죽음을 회피하려는 호사한 장식이려니
그래서 바람은 저도 저를 모른 채 지금을 환하게 흔드는구나
매 순간 너도 나도 장신구처럼 흔들리며 죽어 있구나
살랑은 그저 살랑일 뿐이지만,
고래 한 마리가 태어나고 죽은 시간이 순간을 흔든 거라면
뭐라 시를 써도 결국 모든 시간의 반대 얼굴일 것
그이의 진심 따윈 관심 없고
내 거짓의 진짜를 줄곧 물어뜯는
나는 지금 죽어도 좋다
몸이라는 웅대한 거짓말이 숨통을 조여도
죽음 다음은 머리칼에서 풀려난 비녀처럼 뾰족하고 또렷할 것이니
그래서 나는 지금 열렬히 죽은 채 오 초마다 꼿꼿하다

-강정 시집 '커다란 하양으로' 중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에 골몰하는 것은 시인의 일일지 모른다. 이 시의 화자는 죽음 앞에 담대하다. 죽음은 대수롭지 않은 듯 삶과 함께 놓여 있다. ‘나는 지금 열렬히 죽은 채 오 초마다 꼿꼿하다’는 구절이 파고 든다.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