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함께 사는 길, 성장에 속지 마라
성장이란 말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국가의 주요 정책이나 결정도 경제성장과 연관되지 않으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어떤 평가에서든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역시 성장이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성장지상주의는 조금씩 의심받는 것처럼 보인다. 성장의 결실이 어디로 가는가를 따지는 ‘무엇을 위한 성장이냐’, 성장이 낳는 폐해에 주목하는 ‘어떤 성장이냐’ 등의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장해선 안 된다’ ‘성장을 안 해서 다행이다’ 이런 얘기가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꼽히는 마야 괴펠이 쓴 책 ‘미래를 위한 생각’은 ‘우리는 더이상 성장해선 안 된다’를 부제로 붙였다.
지속가능한 경제를 연구하는 저자는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런데 그가 설득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매우 과격하다. “우리는 환경 소비를 줄이는 목표와 경제성장이라는 목적을 절대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이제 남은 수단은 금지와 포기뿐이다”라는 것이다.
환경을 지키고자 하는 생태적 목표는 경제성장이라는 사회 목표와 충돌해왔다. 생태와 성장이라는 이 뿌리 깊은 갈등 속에서 세계는 모호한 태도를 취해온 게 사실이다. ‘모든 얘기를 다 해도 좋은데 제발 경제성장만은 건드리지 맙시다’라는 무언의 합의가 통용되고 ‘혁신과 기술 발전의 도움을 받으면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경제적 약자를 위해서라도 성장이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저자는 이런 모든 주장과 맞서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란 생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성립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지구 파괴 행위라는 것, 경제가 아니라 환경이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라는 것을 강조한다.
날카롭고 불편하고, 누군가는 화부터 낼 얘기지만 이 책은 독일에서 장기간 베스트셀러가 됐다. 용감하고 솔직하고 단순하게, 그러면서도 낙관적인 분위기를 잃지 않는 저자의 글은 매력적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시민 교과서가 될 만한 책이다.
저자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으로 제안하는 것은 사실 단 하나, 기후위기다. 기후를 다루는 보도가 주가 보도 바로 뒤에 오면 좋겠다는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주가의 부침을 알리는 곡선을 보고 나서 곧바로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나타내는 곡선을 본다면 대중의 경각심이 더 높아질 테니까요.”
지리·인구학자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인 대니 돌링의 책 ‘슬로다운’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성장주의를 비판한다. 고도성장의 시기, 즉 ‘대가속 시대’가 이미 끝났고 세계는 지금 감속의 시대라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확인되는 감속 현상을 ‘슬로다운’으로 명명하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긴 하지만 전보다 더 천천히 가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이미 시작됐지만 잘 보이지 않는 슬로다운 현상을 데이터와 그래프를 통해 가시화한다. 세계 인구의 맹렬한 증가세가 꺾였고 어느 나라에서나 출산율은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인구 증가의 둔화는 슬로다운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이다. GDP, 임금, 주식 등 경제 지표에서도 슬로다운은 분명하게 확인된다. 부채 증가율은 미국에서조차 줄고 있다. 기술 혁신의 속도, 사회 진보의 속도 역시 떨어지고 있다. 슬로다운의 유일한 예외가 기온 상승이다.
저자는 지난 160여년 동안의 인구 폭발과 높은 경제성장률은 인류 역사에서 오히려 예외적인 시기였다며 지금 시작된 슬로다운이 대가속 시대 이전의 정상상태로 우리를 돌려놓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슬로다운은 성장의 둔화, 경기침체를 의미한다. 저자는 “경기침체를 질병 같은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침체가 ‘뉴 노멀’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슬로다운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면 지금 직면한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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