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 Interview | 황정민 "내가 나 연기하는 것, 너무 어려워"..러닝타임 순삭 인질극 '인질'
관객수 200만 관객을 돌파하고 개봉 3주차에도 박스오피스 1위(8월31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인질’. 정의로운 형사(‘베테랑’)부터 다혈질 조폭(‘신세계’), 정체불명의 무속인(‘곡성’)부터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국제시장’)까지, 모든 캐릭터를 거쳐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 황정민이 이번엔 인질이 된 ‘배우 황정민’을 연기했다. 그를 간담회 현장에서 만났다.
▶‘인질’
-각본/감독 필감성
-출연 황정민, 김재범, 이유미, 류경수, 정재원, 이규원, 이호정
-러닝타임 94분
▷Synopsis | 대한민국 톱배우 황정민(황정민)은 신작 제작보고회를 마치고 귀갓길에 괴한들을 만난다. 증거도, 목격자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는 자신이 납치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먼저 잡혀 있던 카페 알바생 ‘소연(이유리)’과 극한의 탈주를 감행한다.
러닝타임 94분이 통으로 쫄깃하다. 단편 영화만 작업하던 신인감독의 어디에서 이런 공력이 나왔을까. 사족을 덜어낸 짧은 러닝타임은 극중 긴장감을 계속 쫀득하게 유지시킨다. 특히 즉각적인 공포감을 구현하는 인질범들의 납치 장면, 실제 타격감이 느껴지는 서울 도심 카체이싱, 원테이크로 촬영한 산속 추격 신은 마치 인질극을 보는 듯한 긴박함을 전한다. 톱스타가 납치됐다가 하루 만에 구출된 해외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를 본 필감성 감독은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황정민 배우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영화 ‘베테랑’의 형사 ‘서도철’, ‘공작’의 스파이 ‘흑금성’,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킬러 ‘인남’과 같이 늘 누군가를 추격했던 황정민이 ‘인질’에선 데뷔 이래 처음으로 정체불명의 인질범들에게 납치 당하고 쫓긴다. 관객들은 시종일관 “왜 나를?”이라며 절규하던 황정민과 함께 억울해하고, 함께 달린다.
영화 초반, ‘밥상’ 수상 소감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 유명한 ‘60명의 스태프들이 맛있게 밥상을 차려놓으면 배우는 숟가락만 든다’는 수상소감이다. 그는 수없는 영화 밥상에서 자신만의 ‘레시피’를 선보였고 그 찐맛에 대중은 열광했다. 하지만 ‘납치 당한 실제 황정민’을 연기하는 이번 ‘인질’ 속 밥상은 영화 밥상 수십 번 차려 본 ‘연기계의 백종원’인 그에게도 어려웠다. 그는 자신의 물건을 영화 소품으로 활용하고, 인질범들의 신선한 마스크를 위해 신인을 대거 기용했으며, 회식 후 매니저 없이 혼자 퇴근하는 상황 역시도 실제 그의 성향을 100% 반영했다. 인질극 자체로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물이자,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황정민의 어록과 실제 그의 캐릭터를 비교해가며 보는 재미도 있는 영화다. ‘인질’에는 “뭔가 특별한 영화적 매력이 있다”고 말하는 그를 간담회 현장에서 만났다.
▷가상의 세계관에서 배우 황정민을 연기한 소감은?
굉장히 어려웠다. 인질로 잡히기 전까지는 편하게 연기했는데 납치 장면부터 ‘내가 실제 납치 당했다면 어떤 감정일까’ 가상으로 상상해서 재설정을 해야 되는 거다. 차라리 가상의 인물이었다면 감정을 조율하고 만들 수 있는데, 실제 황정민이니까 이 감정이 진짠가 가짠가 고민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감독님과 많이 논의했고, 대본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범주 내에서 철저히 황정민으로 연기했다.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고 연기했나?
질범과 인질의 조화로움이 분명히 존재해야 했다. 갇힌 공간에서 인질범 4명과 나 5명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이러니가 잘 보여지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극중 인질범 중 한 명이 명대사를 부탁하는데, 실제로도 그런 일이 있나?
“‘드루와, 해보세요”하는 건, 대본에 처음부터 나와 있던 대사다. 가끔씩 그런 분들도 있다. 반가워서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황정민도 황정민이지만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했다는 평이 많다.
(웃음)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너무 근질근질했었다. 인질범, 경찰, 형사 등 나 말고는 다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이여야 진짜로 다가오지 않을까. 촬영하면서 “너무너무 연기 잘하고 있으니까 절대로 기죽지 말라”고, “영화 나오면 너희들 진짜 칭찬받을 것”이라고 계속 이야기했다. 영화 촬영 들어가기 한 달 전부터 작업실을 빌려서 연극하듯이 동선을 다 만들고 리허설했다. 미술 팀이 짜온 캐비닛, 쇼파 등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까 배우들끼리 연습을 계속 했다. 그래서 현장이 너무 편했다.
▷인질범 역할 배우들을 뽑는 오디션에 실제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함께 연기한 소감은?
영화는 혼자서 주인공을 맡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인질’을 보고 나면 관객 분들이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멋진 배우들이 있었나?’라고 놀랄 것이다. 모두 각자의 포지션에서 잘 연기를 해줬다. 처음엔 다들 나를 너무 어렵게 생각했다. 작품은 많이 했지만 ‘인질’의 황정민은 나도 처음이지 않나. 그래서 그 친구들한테 도와달라고 이야기했고 나도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왔다. 촬영 전 다함께 늘 작품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결국엔 술이었다(웃음). 촬영 끝나고 술 한잔 기울이면서 작품 얘기하고 촬영하고 끝나면 또 술인 거다. 행복했다, 하하.
▷촬영하며 ‘실제로 내가 납치 당하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나?
막바지로 갈수록 인질범과 위험한 육탄전을 벌이는데. ‘영화 속 황정민처럼 실제 용기 있게 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다. 스스로 많이 되물었는데, 영화 속 모습이 정답인 것 같다. 실제라면 좀 더 잘 싸우지 않았을까? 하하. 무술감독과도 “액션 느낌이 절대 안 났으면 좋겠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납치 당해 겁에 질려 있는 한 사람이니까. 합을 짜서 하는 것보다 합이 없는 것처럼 느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산에서 구르는 등 거친 액션이 많았는데.
긁히거나 다치기도 있지만 크게 다친 것은 없다. 밧줄로 묶일 때 일부러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세게 묶였다. 느슨하게 하면 납치된 상태의 감정이나 얼굴의 표현들이 와 닿지 않아서. 의자에 묶인 채로 뒤로 콰당 넘어졌는데, 모두 연기인 줄 알았지만 진짜로 넘어졌다(웃음).
▷촬영 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별로 없다. 밤길 조심하고 운동 열심히 한다. 예전에 복싱을 했었는데 요즘은 더 열심히 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영화를 개봉할 때마다 따라오는 부담감이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오히려 보란 듯이 잘 되고 싶다. 큰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했다.
연기 28년 차 황정민을 괴롭힌 보석 같은 신예들
인질범 5인방…김재범·류경수·정재원·이규원·이호정
황정민이 극중 실제 인질로 잡혔다는 설정이 리얼하게 보여지기 위해선 인질범을 맡은 배우들이 스크린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마스크여야 했다. 아무도 몰라봐야 ‘아 우리가 아는 황정민이 납치됐구나’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 이 때문에 홍보 기간 동안 황정민 외의 배우들의 정체는 꽁꽁 숨겨졌다. 황정민을 유명 톱스타가 아닌 그저 무력한 ‘인질’로 보이게 한 인질범 5인방의 베일을 걷어 보았다.
▶“황정민 씨 억울해요?” 인질범 조직의 리더, 최기완
-18년 차 뮤지컬 배우 김재범
황정민이 “보석 같은 배우”라 일컬은 김재범은 그동안 스크린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뉴페이스. 인질에 대한 동정심은 물론, 같은 조직 내에서도 동료애 따윈 없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최기완은 서늘한 눈빛을 지닌 역대급 강렬한 빌런이다. 18년 차 뮤지컬 배우로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에 이어 최근에는 ‘박열’까지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뮤지컬 ‘오케피’로 황정민과 한 차례 호흡을 맞춰본 바 있는 김재범은 “뮤지컬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보니 굉장히 반가운 형을 만난 기분이었다. 황정민과 대적하는 빌런의 역할인 만큼 그에게 꿀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돼?” 인질범 조직의 2인자, 염동훈
-황정민과의 기싸움에 지지 않다, 배우 류경수
오직 돈을 위해 납치사건에 가담한 인질범 조직의 2인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캐릭터다. 인질범 리더 ‘최기완’을 따르는 인물 중 가장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로, ‘샛별(이호정)’과 러브라인을 선보인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도시남녀 사랑법’으로 입지를 넓혀온 배우 류경수가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염동훈 캐릭터를 맡았다. “오디션 장에 들어서자마자 강렬한 그의 눈빛에 눈을 뗄 수 없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극중에서 황정민의 에너지에 지지 않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한 류경수는 황정민과 함께 한 소감에 대해 ‘속성으로 짧게 유학을 다녀온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드루와, 드루와, 그거 한번만 해 주세요” 조직원이자 황정민 찐팬, 용태
-스크린에서는 처음으로 얼굴을 알리는 배우 정재원
큰 덩치에 순둥이 같은 소심함, 하지만 욱하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용태. 그는 인질로 잡혀온 황정민에게 “드루와, 드루와, 그거 한번만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황정민의 오래된 찐팬이자, 화가 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빌런이다. 인상적인 연기로 오디션 현장에서 단번에 캐스팅됐다는 정재원. “정재원 배우를 캐스팅하면 ‘인질’이라는 영화가 무엇보다 세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던 감독의 말은 현실이 된다.
▶“황정민, 우리가 납치했다!” 최기완을 보좌하는 의리의 조직원, 고영록
-리더 최기완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덩치, 배우 이규원
거대한 체구로 인질범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며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고영록 역은 ‘인질’이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오라를 뽐낸 배우 이규원이 맡았다. 그는 타고난 센스로 ‘고영록’이라는 캐릭터에 빠르게 적응해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고.
▶“잘 차린 밥상? 착한 척 하지 마” 무기 만드는 조직의 브레인, 샛별
-데뷔 첫 빌런인데 매운맛 쎈 언니, 배우 이호정
숏 컷의 머리에 땀에 젖은 로브. 인질범 조직에서 사제 총과 폭탄 제조를 담당하는 ‘샛별’은 인질로 잡혀온 황정민이 시종일관 못마땅하다. 매의 눈으로 그를 감시할 뿐만 아니라, 거친 말로 시비를 건다. “황정민 선배님과 함께 촬영하게 된 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 매 순간 떨리고 긴장됐었던 촬영이었지만, ‘샛별’의 성격에 맞게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마인드로 연기했다.”(이호정) 모델로 데뷔한 배우 이호정은 영화 ‘청년경찰’,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 출연하고, 최근 드라마 ‘알고 있지만’으로 주목받았다. 정제되지 않는 거친 느낌의 ‘샛별’은 극중 황정민과 조우하는 신에서 강렬하고 거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글 시티라이프 박찬은 기자 사진 및 자료제공 NEW, (주)외유내강]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96호 (21.09.1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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