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익숙한 풍경 다 모였다..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이 개방형 수장고 형태로 문을 열었다. 소장품을 과학적으로 보관함과 동시에 시민에게 개방도 하고, 아카이브를 공유하는 공간이다. 다른 보물급 유물에 비해 친근하고 익숙한 물건들로 가득한 그곳에 다녀왔다.
▶큰 그림의 첫 번째 결실
세월 참 빠르다. 몇 해 전 경복궁 옆 국립민속박물관에 갔을 때 이 박물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민속박물관은 순차적인 이전 작업을 통해 끝내는 경복궁 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이전과 관련된 큰 그림은 이렇다. 국립민속박물관 본관은 세종시 등 현재 거론되고 있는 도시 중 한 곳으로 옮기고, 파주에 이미 완공되어 개방형 수장고로 문을 연 파주관, 경복궁 복원사업으로 철거가 결정된 현재의 본관을 서울관(장소는 미정)으로 이전하고, 경상도 지역에 영남관, 전라도 지역에 호남관 등을 신설, 모두 다섯 곳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파주관은 그 첫 번째 결실로 지난 7월23일에 문을 열었다. 경복궁 옆 민속박물관에서 이전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군, 하며 지나친 뒤 한동안 그 일을 잊고 살았는데, 어느새 파주관이 문을 열었다는 뉴스가 SNS를 타고 들어왔다.
파주관의 정식 명칭은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이다. 파주관은 앞서 얘기한대로 개방형 수장고 즉, 열린 수장고로 지어졌다. 세상의 모든 전시관에는 수장고가 있다. 미술관의 경우 전시장에 걸어놓는 작품 이외의 작품들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수장고는 예술 작품들을 원형 그대로 보관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냥 보관 공간이 아니다. 민속박물관에 들어와 있는 물건들은 국보, 보물 소리를 듣는 작품들이 아닌 오래 전부터 평범한 사람들, 특별해 봤자 양반들이 사용하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건들의 재료들도 종이, 나무, 섬유, 금속, 도자기, 인화지 등 매우 다양하다. 이런 것들은 물성에 따라 지속력이 약한 고리들을 갖고 있다. 과학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썩거나 부서지거나 뭉개져 박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고 결국 쓰레기장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설 점검과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개방형 수장고는 박물관의 수장고이지 그 자체가 전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층층이 보관되어 있는 작품들을 자세히 볼 수 없다며 투덜대는 일은 미련한 일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자세히 관찰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은 열린 수장고마다 설치되어 있는 키오스를 통해 화면으로 확인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개방형 수장고를 보며 야릇한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다. 파주관 개관 소식을 듣자마자, ‘여긴 빨리 가 봐야 해!’ 하고 서둘러 예약을 했다.
▶자동차 번호까지 입력해야 하는 출입 시스템
1층 열린 수장고4, 5, 6, 보이는 수장고3 – 영상실– 2층 민속 아카이브 – 보이는 수장고8 – 열린 수장고9, 10, 11 – 1층 열린 보존과학실- 보이는 수장고7 – 열린 수장고16 순이다. 이것은 오직 관람과 소소한 사진을 찍을 사람에게 적당한 동선이다. 좀 더 다양한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박물관 현관 쪽 어린이 체험실 옆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이용하면 보다 넓은 각도의 사진을 확보할 수 있다. 열린 수장고4, 5, 6과 9, 10, 11은 중앙홀에서 보이는 세 동의 타워 1, 2층에 위치한 수장고를 말한다. 4, 5, 6, 9, 10, 11 모두 도자기, 토기, 석재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수장고의 온도는 20℃ 플러스 마이너스 4℃ 정도다. 체질에 따라 조금 싸늘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긴 팔을 입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시골집에서 보았던 항아리와 개다리 소반이 정겹다
소반도 정겨운 구경거리다. 소반이 반가운 것은 이 물건이 일인가구가 늘어나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다시 찾거나 소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반은 그 예쁜 이름과 달리 엄격한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탄생했다. 집안의 어르신들이 널찍한 상에서 혼자 또는 겸상하여 식사를 할 때 자녀, 여자들은 소반에 일인식을 담아 각자 먹는 경우가 많았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어서 손님들을 초대했을 때도 마당에 좌정한 손님에게 일인식을 대접했는데, 이때도 소반이 사용되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한 소반들은 디자인이 단순했다. 간혹 다리 모양을 화려하게 하거나 상판을 자개로 하여 복자 무늬를 새겨 넣기도 했다. 그릇이 무거웠던 시절에는 다리 또한 튼튼해야 했는데, 개의 다리를 닮았다는 개다리소반, 호랑이 다리를 닮은 호족반, 대나무 마디를 닮은 죽절반 등이 있고, 특별한 관심을 끌었던 소반으로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 등을 꼽는다.
열린 수장고4, 5, 6, 9, 10, 11을 1층과 2층을 훑으며 구경했다. 앞서 말한 대로 그곳에는 햇볕, 온도, 습도에 영향을 덜 받는 소장품들을 관리하고 있는데, 수장고4, 5, 6 에는 주로 음식과 관련된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다. 해주항아리, 옹기, 맷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아마추어의 눈으로 보아도 이곳의 소장품들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일상의 흔적은 이곳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기쁨이었다. 지금은 생산되지 않지만, 예전에는 소주를 한 되, 그러니까 약 2ℓ짜리 큰 병에 넣어 팔기도 했다. 소주를 다 마시고 나면 그 소중한 병을 버리지 않고 담그는 약주나 효소보관용으로 재활용하기도 했었다. 이곳의 소주병에는 ‘씨가시올금연지’라는 글씨가 써 있는 종이가 붙어있는데, ‘민속 박물’이란 이런 게 아닐까 반가웠다. ‘씨가시’는 씨앗의 방언, ‘올금’은 열매 이름, ‘연지’는 붉은색을 뜻하는 것 같은데, 효소를 뜻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또한 어떤 항아리에는 못으로 새긴 것 같은 눈금과 큼직한 메모가 있었다. 술도가 또는 가정집에서 술이 들어간 양을 알기 쉽게 표기한 것이다. 물론 이런 전통은 지금도 고추장, 된장, 동치미 등을 직접 담가 먹는 가정, 식당 등에서 뚜껑에 표기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파란색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인상적인 백항아리들도 눈에 띄었다. 거칠지만 힘차게 뻗은 그림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옹기장사가 쓴 것일까. 어떤 항아리에는, ‘이것을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돈잘(혹은 자?)붐…’ 이라는 글씨도 눈에 띄었다. 돈 잘 벌라는 덕담인데, 정겹지 아니한가.
왕족과 귀족 중심의 박물관 물건들이 높은 완성도와 품격 있는 예술성을 뽐내고 있다면, 민속박물관에 들어와 있는 것들은 솜씨는 비록 떨어져 보여도 민초들의 삶의 현장을 볼 수 있으니 훨씬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수장고9, 10, 11은 4, 5, 6과 달리 향로, 고기잡이 도구 등 생활 소품들이 주로 보관되어 있다. 부적도 만나볼 수 있다. 오래 전 생활 도구들이라 현장감이 바로 오지는 않지만 물건 하나하나를 보면서 당시 인류들의 생업과 소망을 엿볼 수 있었다.
▶시민 개개인과 민속 아카이브를 공유하다
어린이체험실은 민속 체험 공간으로 놀이와 체험을 하면서 금속, 목재, 섬유, 종이, 도기 등 박물관 소장품에 대한 학습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체험이 없는 시간에는 어른들도 입장할 수는 있지만 무엇이든 만지지 말고 살짝 보기만 하는 게 예절이다.
영상실도 재미있었다. 소장품들이 디지털 화면 속에서 떠다니는 공간인데, 가만히 보고 있다 마음에 드는 물건에 손을 대면 확대와 함께 유물의 정보가 뜬다. 소장하고 싶다면 다운로드 아이콘을 눌러 내 휴대폰에 담을 수도 있다. 물론 대외적으로 사용하려면 출처를 밝혀야 한다.
보존과학실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박물관에서 보관중인 물건들은 보전이 잘 되어야 새로운 인류들에게 오래 전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등 광선을 이용해 민속 박물의 내부 구조까지 확인한다. 물론 보전을 위한 작업이다. 박물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저산소 살충 챔버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물성의 변형을 막기 위해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것도 박물관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열린 보존 과학실이다. 파주관에는 세 곳의 보이는 수장고도 운영 중이다. 복도에서 창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운 좋은 날은 수집 자료를 검수하고 등록하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보이는 수장고3에는 주로 금속 유물이, 7에는 복합 재질 유물이, 8에는 목재, 초재 유물들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헤이리마을과 카메라타
무대에는 오디오가 자리하고 있다. 웨스턴 일렉스틱, 클랑필름, 비고 등 오디오마니아가 아니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의 시스템과 난생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스피커와 우퍼들이 이곳을 찾은 클래식 마니아들의 오감을 만족시켜주고 있다. 오디오 마니아들의 꿈은 오디오에서 구현되는 원음을 듣는 일이다. 그것 하나 때문에 억대의 돈을 들여 오디오 시스템을 가정에 구축하기도 한다. 하물며 카메라타의 시스템은, 감히 꿈꾸기 조차 어려운 세계 최대의 오케스트라 현장을 마주한 것과 다름이 없는 수준이다.
카메라타는 매일 문을 열어두고 있으며, 누구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들어가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바 직원에게 입장료를 내고 마시고 싶은 차를 선택해서 전해주면 곧 차나 음료가 제공된다. 차는 직접 들고 원하는 자리에 앉아 음악에 몰입하면 된다. 음악감상실인 만큼 소음에 유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살금살금 행동할 필요는 없다. 카메라타는 매일 열리는 음악감상회 말고도 매월 실황 공연도 개최한다. 또한 간헐적으로 토크쇼도 개최, 음악, 문학, 그리고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다. 프로그램은 카메라타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다.
[글과 사진 이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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