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구상화' 개척한 현대 초상화 거장

2021. 9. 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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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앨리스 닐

유행을 거스르면 살아남기 힘들다. 잘나가던 기업도 시의적절한 변신에 실패하면 순식간에 도태된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더욱이 그러하다. 하지만 대세에 편승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 고수해 마침내 빛을 보는 경우도 있다. 혁신적이고 독창적이라면 예술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와 끈기로 결국에는 미국 현대 초상화의 거장 반열에 오른 앨리스 닐(Alice Neel, 1900~1984년)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앨리스 닐: 사람이 먼저다(Alice Neel: People Come First)’가 성황리에 열렸다. 전시 제목이 함축적으로 표현했듯, 그녀는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흥미로운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 붓을 도구로 사용했다. 이 전시는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다른 양식이 지배적이었던 모든 시절, 오로지 그녀만의 구상화로 묵묵히 견뎌낸 인고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호평 일색 비평이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신전의 합당한 위치에 그녀 자리를 마련해줘야 할 시간”이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닐의 인생은 평탄치 않았다.

그녀는 펜실베이니아 작은 시골 동네에서 1900년에 태어났다. 성차별이 심하고 여성 교육이 형편없는 시절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필라델피아로 가, 자력으로 미술 공부를 했다. 그리고 쿠바에서 온 잘생긴 부잣집 도련님 예술가와 사랑에 빠진다. 만난 지 1년 만인 1925년에 결혼을 하고, 남편의 고향인 아바나로 이주, 1년 뒤에는 딸을 낳는다.

‘핑거 박사의 대기실(Dr. Finger`s Waiting Room, 1966년)’. 지난 5월 13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5배에 달하는 금액(약 300만달러, 약 35억원)에 낙찰됐다. 그녀의 전작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 작품이다.
불행은 딸의 죽음으로 시작됐다. 예술가를 꿈꾸던 둘은 짧은 쿠바 생활을 정리하고 1927년에 뉴욕으로 이주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돌을 앞둔 딸이 전염병으로 숨진 것. 이듬해 둘째 딸을 낳고 불행을 극복하는가 싶었는데, 느닷없이 남편이 두 살배기 딸을 데리고 말도 없이 쿠바로 떠나버린다. 아무 준비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별을 당한 그녀는 실의에 빠져 몇 차례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 둘째 딸과도 평생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했고, 이 딸은 결국 훗날 자살을 하고 만다.

닐이 평생 사람들을 그렸던 것은 아마도 그것이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캔버스 앞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행복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주로 초상화를 많이 그렸지만, 닐은 정물화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핑거 박사의 대기실(Dr. Finger's Waiting Room, 1966년)’이 그 좋은 예다. 주치의의 대기실 내부를 정감 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바닥에는 쭈글쭈글한 시트가 아무렇게 깔려 있고, 그 위에는 형형색색의 꽃이 가득 핀 화분 두 개가 놓인 작은 테이블이 있다. 천을 덧씌운 낡아빠진 갈색 의자가 회색 벽돌로 꾸며진 벽난로의 거친 표면과 시각적, 촉각적 대조를 이루며 화면에 생기를 더한다. 왼쪽 구석에는 책상이 있는데, 그 위에도 연보라색 꽃이 탐스럽게 꽂힌 화병이 놓여 있다.

이런 정돈되지 않은 뒤죽박죽 배열이 마치 화가에게 즐거운 시각적 잔치를 제공하는 듯하다. 밝은 노란색과 크림색으로 표현된 따사로운 햇살이 정감 있게 그림 전체의 표면을 뒤덮어 전체 장면은 따뜻한 빛으로 감싸인 듯 보인다. 평범한 실내 풍경을 담고 있지만, 사실은 닐이 자기 주치의의 성품을 은유적으로 세심하게 담아낸 초상화라 봐도 무방하다. 아마도 핑거 박사는 다소 산만하고 정신이 없지만, 밝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주치의가 화가로부터 직접 구매해 50년 이상 가족 컬렉션으로 애장했던 것은 이 실내 풍경화를 자신의 초상화라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훌륭한 추상성을 지니지 않는 위대한 그림은 없다”고 한 화가의 말처럼, 이 작품은 구상화지만 추상적 요소를 잘 녹여내 ‘추상 대 재현’이라는 상투적인 전통 이분법을 대담하게 해체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5월 13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5배에 달하는 금액(약 300만달러, 약 35억원)에 낙찰돼 그녀의 전작 가운데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했다.

‘릴리 브로디(Lilly Brody, 1977년)’. 동료 화가를 그린 작품. 브로디는 화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했지만, 후배 예술가들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은 대인배였다. 그런 그녀의 성품과 수다스러운 모습을 잘 포착하고 있다. ‘헨리와 샐리 호프(Henry and Sally Hope, 1977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미술 평론가이자 미술사학자인 헨리 호프 박사와 그의 부인 샐리를 그린 작품. 이 부부는 걸작을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으로 정평이 나 있는 컬렉터기도 했다. 1960년대에 닐의 초상화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추상이 대세이던 시절, 닐은 뒤처진 장르로 인식되던 사실적인 구상화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했다. 그녀는 사람과 그들이 놓인 환경에 대한 관찰자로서 대상자와 주변을 예리하게 탐구하고 각각의 특질과 내면적 진실에 초점을 맞춰 그들을 묘사했다. 이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강렬한 통찰력과 담백한 정직함이 빛을 발한다.

일례로 독립적이면서도 개성 넘치는 동료 화가를 그린 작품 ‘릴리 브로디(Lilly Brody, 1977년)’를 보자.

이 작품에서도 닐은 대상의 외관적 특질을 날카롭게 포착해 심리적 진실에 다가서고 있다.

우선 챙이 넓은 모자에 굵은 테 안경, 발을 바닥에 굳건하게 내리딛고 의자에 팔을 걸친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개성적 스타일을 중시하는 강인한 성품의 여성임을 암시한다.

자세히 보면, 긴 수다 끝에 한숨 돌리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음을 알 수 있다. 벌려진 손가락 동작이 말이 끝난 후에도 뭔가 표현하려는 듯 보인다. 포즈를 취하는 동안에도 닐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으리라. 아마도 브로디는 독립적이고 강하지만 수다스럽고 정감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닐은 대상을 미화하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특질을 포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주제의 내면적, 심리적 진실을 강조하는 초상화를 그렸다. 50년 이상 정서적 명민함을 담은 표현적인 인물화와 정물화, 실내 풍경화 같은 구상화에 전념해 20세기 미국의 연대기 기록자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비록 생전에는 60대가 넘어서야 겨우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제는 역사가 그녀를 미국이 낳은 최고의 초상화가로 기억해줄 것이다.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5호 (2021.09.08~2021.09.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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