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만들어진 남자,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김준모 2021. 9. 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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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이버펑크 시대를 위한 로맨스 지침 가이드, 영화 <아임 유어 맨>

[김준모 기자]

 <아임 유어 맨> 포스터
ⓒ (주)라이크콘텐츠
 
2014년 개봉한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그녀>는 아내와 별거 중인 대필 작가 테오도르와 A.I. 사만다의 사랑을 다뤄 호평을 들은 바 있다. 이별을 두려워하고 사랑을 힘들어 하면서 고독과 소외에 갇혀 지내는 현대인들의 상황을 보여주며 깊은 공감과 위로를 건네 찬사를 받았다. 독일 SF 로맨틱 코미디 영화 <아임 유어 맨>은 이 영화가 보여줬던 사랑과 현대인에 대한 진중한 담론을 한층 더 확장시키며 장르적인 매력 역시 함께 버무려낸다.  

페르가몬 박물관의 고고학자인 알마는 3년째 매진하고 있는 연구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한 실험에 참여한다. 그 실험은 완벽한 배우자를 대체할 휴머노이드 로봇을 테스트하는 것. 홀로그램으로 이뤄진 연회장 안에서 알마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맞춤형 로맨스 파트너 톰과 만난다. 사실 알마는 자신이 배우자가 없기에 조건이 맞아 참여했을 뿐 이 휴머노이드 로봇에 반감을 지니고 있다.  

실험의 일환으로 3주 동안 톰과 동거를 하게 된 알마는 그 감정을 보여준다. 톰의 알고리즘은 알마의 취향에 맞춰 설정되어 있다. 그 점이 알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좋아해주는 누군가가 생긴다는 건 일종의 중독과도 같기 때문이다. 작품은 은유적으로 알마에게 아픈 과거사가 있음을 보여준다. 한 번 사랑을 했었고 실패한 경험이 있는 알마는 누군가에게 깊이 빠져드는 걸 두려워한다. 사랑이 실패했을 때 다가올 상실과 공허가 크기 때문이다. 톰은 이런 현대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자신만을 온전하게 좋아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존재 말이다. 

변하는 톰과 알마
 
 <아임 유어 맨>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그녀>의 사만다가 아이폰의 시리처럼 누구나 대화할 수 있는 A.I. 였다면 톰과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은 오직 나만의 취향으로 설정할 수 있다. 로봇이기에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점에서 평생 원하는 이상형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알마는 이 장점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말한다.

톰의 인공지능은 알마와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발전한다. 어떻게 하면 더 인간답게 보일 수 있는지, 특히 정해진 패턴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톰은 점점 알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남자가 되어간다. 알마가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며 톰을 통해 이전에 겪었던 이별의 아픔을 치유해 간다.   

문제는 이 톰의 존재가 알마를 중독 시킨다는 점이다. 알마는 치매 증상이 있는 아버지를 챙긴다. 아버지가 사는 집은 알마와 가족의 기억이 담긴 공간이다. 과거가 소중하다는 걸 알기에 현재가 힘들어도 그 집에서 아버지를 돌보고자 한다. 톰과 같은 맞춤형 로맨스 파트너는 이 소중함을 잊게 만든다. 소중한 존재가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항상 나와 함께 있기에 현재의 쾌락에 중독된다.  

알마가 고고학자라는 설정은 이 순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순간은 과거가 되어 지나가기에 소중하다. 시간은 유한하고 젊음은 영원하지 않기에 인간은 용기를 내어 살아간다. 중독은 이 용기를 파괴하고 영원하다 여기는 행복에 안주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이런 알마의 고민과 함께 톰이 느끼는 혼란을 조명한다는 점이다. A.I.의 무서운 점은 마치 인간처럼 정보를 습득해 스스로 사고를 할 줄 안다는 점이다.
 
 <아임 유어 맨> 스틸컷
ⓒ (주)라이크콘텐츠
 
톰이 만들어진 목적은 알마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허나 알마는 자신을 기쁘게만 해주려 할뿐,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톰에게 반감을 보인다. 톰은 그 공감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학습을 반복한다. 이 학습을 통해 톰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며 마치 인간처럼 잠을 자고 코까지 곤다. 그리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실존의 문제에 접어들게 된다.   

이런 철학적인 고민과 함께 달달하면서도 코믹한 로맨스로 재미를 더한다. <미녀와 야수> <블라이스 스피릿>의 댄 스티븐스는 톰 역을 맡아 부족한 공감능력으로 눈치 없는 모습을 보이며 웃음을 자아낸다. 이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마렌 에거트는 완벽한 이상형 로맨스 파트너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묘한 케미를 형성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매력 속에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진중한 연기가 인상적이다.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찾기> <괴테스쿨의 사고뭉치들> 등 독일인은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부수는 독일 코미디 영화답게 은근한 웃음코드에 로맨스의 묘미를 더한다. 현대인이 느끼는 소외와 고독에 대한 메시지를 진중하지만 무겁지 않게 전한다. 나만을 위한 남자보다 누군가를 위한 내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다가올 사이버펑크 시대를 위한 로맨스 지침 가이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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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 개인 블로그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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