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33만원에 '풀옵션', 횡재한 줄 알았는데..

김상목 2021. 9. 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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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청년세대의 현실 보여주는 <쇼미더고스트>

[김상목 기자]

▲ "쇼미더고스트" 포스터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인디스토리
 
1_2030세대의 고단한 현실은 귀신들린 집보다 무섭다?!
 

<쇼미더고스트>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본체에 공포장르의 문법을 소스로 살짝 끼얹고 2030세대가 공감하고 피부로 느낄 법한 사회적 코드들을 부재료와 양념으로 활용한다. 마치 영화 속에서 '호두'가 '예지'나 '기두'에게 대접하곤 하던, 편의점 재료를 이용한 야매요리 같은 영화다.

이 영화는 새로운 걸 선보이겠다며 강박적으로 밀어붙이는 독창적인 면모나 감독 개인의 예술적 야심을 내세우는 것과는 거리가 먼 태도를 견지한다. 그 대신, 자칫 논쟁적일 수 있는 민감한 소재를 취급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으며 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세태 풍자와 크게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 청춘 코믹물의 균형감각 조율 솜씨가 썩 괜찮은 작품이다.

대강의 기본 줄거리를 살펴보자. 대학 졸업 후 편의점 알바로 지내고 있는 호두는 접근성 좋은 'in 서울' 위치에 좀 오래되긴 했지만 2층 독채 풀 옵션인 주택을 보증금 2천 월세 33에 얻는다. 호두는 횡재했다며 좋아한다. 마침 '학점 4.24, 토익 903점, HSK 5급, 자격증 6개, 공모전 수상 5번'의 스펙에도 불구하고 지방대생이란 죄로 또다시 면접에 탈락한 20년 지기 취업준비생 친구 예지가 들렀다가 이 집에 눌러앉는다.

둘은 믿기지 않는 안정적 주거획득에 환호하지만 한편 지나치게 좋은 조건에 의심과 불안이 싹튼다. 수상쩍은 조짐이 몇 차례 일어난 뒤 밝혀진 진실은 이랬다. 이전 세입자가 집에서 자살했고 그 원혼이 출몰한다는 것. 하지만 이만한 조건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임을 인정하고, 달리 대안도 없는 둘은 필사적으로 퇴마를 시도한다. <쇼미더고스트>의 기본 줄거리(이자 이야기의 거의 전부)는 딱 요렇다.

2_약방의 감초 격 활용되는 사회풍자 코드의 위력
 
▲ "쇼미더고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쇼미더고스트>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이야기 전개가 죽죽 늘어지지 않도록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호두가 일 마치고 늘 챙겨와 냉장고와 찬장을 가득 메우는 편의점 폐기음식 마냥 곳곳에 아이디어가 잔뜩 깔려 있다. 호두의 일터인 편의점과 호두+예지의 주거 공간, 두 곳에서 거의 모든 이야기와 관련 상황이 전개되는 (장편영화로선 치명적일 수 있는 단조로움에 노출되는) 상황을 완화하고 식상함을 예방하기 위한 장치들이 무리하지 않는 수위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코믹물 특유의 요소인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관객이 쉽게 예측 가능한 전형적인 상황설정을 적절히 보완하는 사회적 코드들은 피식 튀어나오는 웃음과 함께 느슨해지기 쉬운 상투적 장면들을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출한다.

호두는 좋게 말하면 낙천적이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내일을 준비하지 않는 캐릭터다. 또래 친구들이 공무원 시험이다 취업 준비다 스트레스 받아가며 시간에 쫓길 때 호두는 할 일 하고 편의점 폐기음식을 자기 나름대로의 레시피로 조리해서 편맥(편의점 맥주)과 함께 즐기는 나날을 별 불만 없이 보낸다. 기성세대가 보면 '애는 착한데 야망이 없어!' 또는 '초식동물' 같은 청년이다. 호두는 안정적인 주거와 기본생활을 충족할 수입원만 있다면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일상을 누릴 법한 존재다.

반면 예지는 어떻게든 할 수 있는 한 노력해 자기 앞의 장애물을 넘으려 거듭 시도하는 야망가 캐릭터다. 경쟁에 참여해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과 주변의 기대를 무겁게 여기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친구다. 그러나 늘 마지막 능선을 오르는 데 실패한다.

2030세대의 두 종류 전형을 각자 연기하는 호두와 예지 중에서 더 큰 좌절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건 결국 예지다. 아무리 조건을 갖춰봤자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개천에서 용 난다'가 아니라 '될성부를 나무 떡잎부터 알 수 있다'가 기괴하게 뒤틀린 형태, 즉 수저계급론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후천적 노력은 타고난 조건을 극복하기 어렵다. 합리성 기준이 아니라 학연, 지연, 혈연을 총망라한 전근대적 인맥과 조건에 집착하는 한국사회의 편견에서 예지가 기회를 얻기란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기의 문제일 뿐이다.

두 주인공이 귀신들린 집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를 예지는 호두에게 따지지만 더 절박한 건 사실 예지다. 늘 어리벙벙한 호두는 예지가 똑똑하고 당차다고 우러러보지만 정작 예지 자신은 (또래 세대가 열광하다 요즘 한풀 꺾인) 주식투자에 열중하다 자기 방 보증금도 폭삭 날려먹은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호두가 자신에게 빌려간 보증금 덕분에 귀신들린 집이나마 자기 지분을 주장하며 당장 길바닥 신세를 겨우 면하는 헛똑똑이 신세다. 호두는 너무 좋은 조건에 눈이 팔려서 특약 한줄 체크를 까먹는 바람에 꼼짝없이 3년 계약기간을 강제 보장받은 상태다. 헛웃음 나오는 이 두 친구의 '버디'로 펼치는 개그 장면들은 우리 자신의 현실과 영화 속 스토리를 깔끔하게 연결해낸다.

전반부의 깨알 같은 세태 풍자들은 (사회비판 장르로) 예리하게 깊게 들어가려 하진 않는다. 하지만 자칫 어설픈 활용으로 민폐가 될 위험은 요리조리 잘 피하면서 적재적소에 유용한 단타 카드로 소방수 노릇을 제대로 해낸다. 코믹한 컷들의 연출도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 시선과 풍경에 기반을 두기에 군더더기 없는 효율적 장면으로 딱 의도한 만큼 쓰인다.

퇴마사 섭외와 셀프 퇴마 시도 또한 젊은 세대에겐 너무나 익숙한 풍경을 호출한다. 온라인 최저가 찾기와 구글링 검색 시도의 거울 같은 묘사가 돋보인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상식적인 저가격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퇴마사 단가 역시 명망이 높을수록, 의뢰주의 집 평수에 따라 천정부지로 널뛴다. '안전' 문제도 결국 있는 사람들에게 보장된다는 서늘한 은유다. 이들이 귀신들린 흉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또한 기성세대인 집주인의 노회함에 아무리 똑똑한 척해도 당해낼 도리 없는 청년세대의 무력함을 예시하는 풍자다. 간과하기 쉽지만, 풍자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구사하기란 의외로 무척 힘들다. 그 지점을 고려하면 <쇼미더고스트>는 티가 안 나게 명석한 영화다.

3_페미니즘 소재의 변주로 승부를 걸다
 
▲ "쇼미더고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중반부 이후부터 영화 초반의 경쾌한 전개는 다소 늘어지기 시작하고, 이물감이 생기는 갈지자 행보가 보는 이를 조마조마하게 만들기도 한다. 둘이 고심해 시도했던 '셀프 퇴마'란 이케아 가구 싼 맛에 구입했다 전동드릴이 없어 조립할 수 없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SNS에서 발견한 파격 할인가에 혹해 꽃미남 아이돌 출신 퇴마사와 계약한다. 하지만 역시 싼 게 비지떡, 퇴마사는 알고 보니 '무쓸모'였다. 이 부분에서 아이돌 연습생 혹은 무명 아이돌의 애환이 장치로 활용되지만 초반 호두와 예지 캐릭터에 비해선 효용성이 떨어진다. 감정이입이 상대적으로 관객들에게 약하기 때문일 테다.

대신에 주인공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발상을 전환해본다. 역시 원귀에게는 나름의 원한이 있었다. 귀신의 한을 풀어줘서 성불하게 만들면 '살아있는 사람들'은 집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다. 이제 안정적 주거환경을 사수하기 위해 귀신의 문제를 산 자들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감독은 여기서부터 '불법촬영' 등 여성 대상 성범죄 문제와 여성연대 쟁점을 핵심 키워드로 투입해 반전과 클라이맥스로 이끈다. 이 선택 때문에 전후반 영화의 온도차가 살짝 발생하는 편이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계속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다행히 코믹한 기조에서 갑자기 추가된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 반영이 완전히 따로국밥이 되거나 물과 기름처럼 겉돌지는 않는다. 적정선에서 꽤 복잡해진 이야기 원심력이 종말점에 닿는다.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리고 적절하게 관습적 마무리가 이어진다. '전형적'인 게 무조건 식상하거나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쇼미더고스트>가 한 발 더 나가 온탕과 냉탕처럼 전후반이 분절되었더라면 더 나쁜 결과물이 나왔을 테다. 지금도 우리 곁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 고립된 채 일그러져가는 청년세대의 음성적 측면, 온라인 익명성이 가져다주는 그릇된 폐단들이 갈등의 핵심으로 대두되는 후반부의 위기와 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정화작용은 딱 누구도 반박하기 힘든 적정수위 응징과 권선징악으로 실마리를 풀어낸다. <쇼미더고스트>의 온도는 딱 '중용'과 '긍정'에 바늘을 고정한 채 멈춘다.

4_배우들의 시너지와 장르적 장치 활용도
 
▲ "쇼미더고스트"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인디스토리
 
(굳이 부가설명이 더 이상 필요 없을) 예지 역 한승연 배우는 코믹과 공감을 나눠서 연기해야 하는 배역을 무난하게 소화한다. 여러 장르의 드라마에서 꽤 오랫동안 적절하게 수행을 쌓아온 연기자로서의 진가가 발휘되는 셈이다. <쇼미더고스트>의 진주인공은 역시 예지다.

호두 역의 김현목 배우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넘나들며 만만치 않은 필모그래피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온 경력 연기자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이미지라 할 순수하고 밝은 '소년'의 표상을 본 작품에서 적당히 과장된 몸과 표정 개그로 썩 잘 풀어내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한국영화건 드라마건 거의 빠짐없이 빠지게 마련인 함정을 <쇼미더고스트>는 사뿐하게 피해간다. 해당 작품에서는 전혀 남녀 멜로코드가 끼어들 틈이 없다.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꽤나 이채로운 면모다.

기두 역의 홍승범 배우는 전형적인 캐릭터 연기를 펼친다. 좀 더 관심이 가는 건 옆집 공무원 지망생 청년의 존재다. 사건의 정보와 실마리를 쥔 그의 전후반 파격변신은 영화의 스토리텔링에서 차지하는 바가 상당하다. 그 외 대부분의 조연은 필요할 만큼 적절히 들어왔다 나가는 편이다. 장편영화로선 길지 않은 80분 분량의 영화에서 온전히 호두와 예지 두 주인공에 집중하는 건 옳은 선택이라 여겨진다.

장르 측면에서 <쇼미더고스트>는 코믹 공포물이라 표방하지만 호러 특성은 거의 없다. 해당 장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폴터가이스트(이유없이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물체가 움직이는 현상)' 효과나 (귀신들린 게 아니라 좀비화가 연상되는) 빙의현상도 '아 그런 상황이구나!' 정도에서만 딱 멈춘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안전운전 균형감각에 충실하다. 애초에 맘먹고 '이건 꼭 봐야해~'할 이들은 별로 없겠지만, 뭘 볼까 망설이다 주저 끝에 영화를 선택한 뒤 극장문을 나서며 '생각보다 괜찮네?' 할 법한 딱 그만큼의 완성도와 재미를 갖춘 작품이다.

그럼에도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 이것저것 마구 끼워 넣다가 영화 전개가 난삽해지는 우를 범하지도, 특정분야 종사자, 사회적 소수자를 희화화하지도 착취도 않는 만든 이들의 상식적 태도가 괜히 더 돋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전직 아이돌 출신들의 배우활동 중에 연기자와 작품 양자 모두 '윈-윈' 효과라 할 사례에도 가장 근접해 보인다.

5_'저예산 상업영화' 생태계 복원의 가능성과 염려
 

다만 <쇼미더고스트>가 독립영화 범주에 속하거나 규정되는지의 문제는 별도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저예산 상업영화가 사회적 코드를 적절히 갖춘 모범적 예시로서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하다. 재능 있고 안정된 연출력을 선보이는 신예 감독+다양한 활동변화를 추구하는 화제성 있는 아이돌 출신 연기자+상업적 고려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적정수준 실험성이 조화를 이루는 상대적으로 소규모 예산의 이런 영화는 근래 한국영화계에서 희소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상업영화 판에서는 '천만 영화'에 모두가 올인하며 대마불사를 외치고 이런 경향은 '먹힐 법한' 요소만 남기고 대패질해버려 결국 모두가 비슷비슷한 답습만 남기게 마련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극장가의 비명 이전에 그런 식상함이 한국영화를 먼저 좀먹고 있었던 건 아닌지 진단해야 할 문제다.

상업영화가 무조건 큰 영화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모델에 달려들다 보니 상대적으로 저예산인 상업영화들이 '독립영화'로 소개되고 홍보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독립영화의 저변과 범주가 확장되는 건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하지만 마치 독립영화가 상업영화 습작으로 간주하거나 서로 출발선이 다른 형태를 외양이 비슷하다고 일괄 취급해버리는 건 오히려 다양성을 해치는 측면도 엄연히 존재할 테다.

<쇼미더고스트>는 오랜만에 접하는 저예산 상업영화의 기본요소를 대부분 갖춘 준작이지만 그렇다고 독립영화 타이틀을 달아줘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실상 소멸해버린 저예산 상업영화 영역을 복구할 가능성에 유의미한 카드가 될 법한 준척을 자칫 생태계 파괴를 초래할 비좁은 연못에 무리하게 몰아넣는 현상은 피해야 할 테다. 본 작품이 가진 장점과 미덕과는 별개로 무분별하게 저예산 상업영화를 독립영화로 포장하거나 같은 물에서 경쟁시키는 지점은 슬슬 고민해 봐야할 숙제일 것이다.
 
<작품정보>

쇼미더고스트 Show Me the Ghost
2021|한국|코미디/공포
2021.09.09. 개봉|83분|12세 관람가
감독 김은경
주연 한승연(예지), 김현목(호두), 홍승범(기두)
출연 이주협(병재), 임채영(소희)
제작 인디스토리
배급 인디스토리
 
202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배우상(김현목),
코리안 판타스틱 배우상 심사위원 특별언급(한승연),
NH농협 배급지원상(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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