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피 신드롬이 말해주는 군의 현주소 [하재근의 이슈분석]
놀랍게도 넷플릭스 드라마인 ‘디피(D.P.)’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인기가 놀라운 이유는 ‘디피’가 군대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군대 소재가 예능에서 인기를 끌긴 하지만 드라마 소재로는 너무 어둡고 답답하고 단조로운 느낌이어서 기피하는 분위기였다.
‘디피’는 탈영병들을 잡는 헌병 군무이탈 체포조를 다룬다. 그러다보니 작품 배경이 군대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군대 안에선 군복을 입지만 탈영병을 찾을 땐 일반복장으로 곳곳을 누빈다. 이것으로 일단 군대배경의 단조로움에선 벗어났다.
탈영병들에겐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이 있는데 그걸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군대 내부의 부조리가 묘사된다. ‘까라면 까는’ 조직에서 발생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과 내무반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들이다. 주인공도 물리적 가혹행위와 인격적 능욕을 당하는데 아무도 그런 일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을 그저 무감각하게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폭력이 구조화된 공간이 대한민국 군대로 그려진다.
이것이 대단히 리얼하게 그려져서 시청자를 몰입시킨다. 실제 디피로 복무했던 이들이 드라마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했다면서, 보면서 눈물이 나거나 군대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트라우마까지 느껴졌다고 했다. 그런 증언들이 나오다보니 일반인들은 이 작품을 진짜 군대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보게 됐고, 군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보게 됐다.
‘진짜사나이’를 비롯해 예능에서 군부대가 많이 나왔지만 군대를 미화했다는 지적이 많았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예능에 대한 반발과 진짜 군대 현실을 다룬 작품에 대한 요구가 있었는데 마침 그때 ‘디피’가 나왔다.
그래도 작품이 그저 고발다큐처럼 건조했다면 반응이 크지 않았을 텐데, ‘디피’는 최고 스타 중의 한 명인 정해인을 내세워 드라마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체포조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건해결 장르물, 추격액션 장르물 같은 느낌도 있어서 극적 재미가 더 커졌다.
이런 요소들로 국민들이 군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불신, 불안 등을 생생하게 묘사해 공감과 공분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어두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신드롬이 터진 것이다. 군 측에선 요즘 군대는 좋아졌다고 하지만 대중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신드롬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디피’ 공개 이후에 공군에서 가혹행위 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2014년작 만화 〈D.P 개의 날〉이 원작인데, 디피병 출신인 원작자가 ‘윤 일병 사망 사건’과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등을 접하면서 작품을 시작했다. 맞았던 사람이 나중에 때리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는 군대라는 조직 자체에 의문을 갖게 됐고, ‘진짜 사나이’엔 나오지 않는 군대의 실상을 그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 대중이 공감하는 것인데, 여기서 신기한 건 외국에서도 호응이 크다는 점이다. 9월 2일 기준 넷플릭스 세계 드라마 순위 16위에 올랐다. 베트남, 일본, 태국 등에서도 높은 순위다. 인간세상 어디에도 폭력적이거나 부조리한 권력관계가 있는데, ‘디피’의 극화 수준이 높다보니 그런 부분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서 해외에서도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보편적인 공감 요소가 국내에서의 인기도 더욱 높였다.
원작자인 김보통 작가는 “‘디피’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군에선 지금의 군은 다르다며 군의 부조리함을 망각시키려 하지만 그렇게 잊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디피’ 신드롬은 그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다는 뜻이다. 국민으로부터 불신 받는 군대의 현주소, 그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대한민국 군이 마침내 국민의 신뢰를 받고, 모두가 이런 드라마 속 내용들을 ‘옛날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으려면 군이 뼈를 깎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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