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일자리③] 청년에 밀리고 노인에 치여 경제 허리 사라진다

장정욱 2021. 9. 9. 07: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IMF·외환위기 이겨낸 4050세대
코로나·4차 산업혁명 위기 내몰려
청년·노인에 밀려 정책 관심 밖
재교육 등 통해 경력 활용해야
4050세대가 일자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취업을 원하는 중장년들이 일자리 박람회 채용 공고판을 보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대한민국 4050세대는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허리’라고 불린다.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20년 넘게 경제활동을 하면서 사회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6070 노년층과 2030 청년 사이 ‘끼어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4050세대는 광복 이후 가장 힘들었다는 외환위기 전후로 사회에 진입했다. 기업 내 살벌한 구조조정을 직접 목격했고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을 무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몸으로 겪었다.


그런 4050세대가 IMF 사태와 금융위기에 이어 또다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IMF 사태나 금융위기와 달리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유례없는 전염병과 산업 구조 변화에 따른 혼란까지 더해져 스스로 길을 찾기 힘들어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5조원, 4050 재취업 50억원

정부 정책을 보면 4050세대의 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청년 일자리 예산은 12.2% 늘었다. 같은 기간 중장년층 대상 일자리 사업 예산 비율은 0.5%에서 0.3%로 0.2%p 줄었다.


내년에도 청년일자리 관련 사업에는 5조5000억원이 투입되는 데 비해 중장년 특화 사업으로는 50억원짜리 경력 재설계 프로그램 ‘새출발 크레딧’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마저 재취업 지원이나 기술창업센터 운영 등이 전부인데 실제 취업이나 창업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정부가 4050세대 일자리 정책에 소홀한 것은 통계 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대 실업률은 2016년 9.8%에서 올해 6월 현재 8.8%로 낮아진 것과 달리 같은 기간 40대와 50대는 각각 0.5%p, 0.6%p씩 올랐다.


민간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진행한 ‘2020년 중장년 구직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년층 응답자의 31.3%가 구직활동 기간이 1년 이상인 장기 실직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미취업자 가운데 직종 변경을 통해 재취업하겠다는 응답 비율도 39.2%에 달했다. 일자리를 가리지 않겠다는 의미인데 직종 변경을 통해 재취업하겠다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절반가량이 단순노무직이라도 취업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4050세대 실직자가 그만큼 경제적으로 간절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통계청 조사 결과 재취업 중장년 임금근로자의 62.5%가 월평균 200만원 미만 임금을 받는 것도 양질의 일자리를 고를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는 “4050세대는 가장 높은 가계부채를 보유하고 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40대 가구 부채규모가 1억689만원으로 가장 크고 50대는 9321만원으로 전체 평균을 상회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가장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의 경제 여건이 악화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위험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개인으로 보면 가족 모두의 경제가 달린 문제이고 국가적으로 보면 나라 경제 전체 위기와 관계된 문제”라고 덧붙였다.

공공일자리 놓고 6070세대와 경쟁

정책 순위에서 청년에 밀린 4050세대는 일자리를 두고 6070세대와 경쟁하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서도 나타나듯 일자리 질을 가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근로와 같은 단기 공공일자리를 놓고 노인층과 자리다툼을 벌이는 데 결과적으로 소득이 별로 없다.


지난 6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평가 및 개선방안’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는 직접일자리 97만 개를 지원했다. 이 가운데 79.8%(77만5000명)는 65세 이상 노인 일자리였다. 중년층은 10.4%에 그쳤다. 공공부문 일자리 대부분이 노인 세대에 집중됐다.


노년층과의 공공일자리 경쟁에서마저 밀리면서 4050세대 상당수는 음식 배달과 같은 단순 일자리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배달업체 ‘바로고’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40대 바로고 소속 라이더는 전년 대비 164% 늘었다. 50대 역시 같은 기간 336% 증가했다. 전체 라이더 가운데 2030 세대 비중은 59%에서 54%로 3%p 감소했지만 4050세대는 30%에서 38%로 많아졌다.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배달 일을 시작한 김모(44) 씨는 “청년들은 정부가 취업 준비하라면서 돈도 주고 노인들은 공공근로나 이런 거로 일자리를 지원해주면서 우리에겐 전혀 관심 두지 않는다”며 “일자리가 없어서 힘든 건 젊은 사람이나 노인보다 우리가 더 심각한 거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지난 2019년 중장년층의 재취업 지원을 위해 열린 일자리 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청년이나 노인 일자리만큼 4050세대에 대한 정책 관심을 늘리고 특히 민간 중심 일자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자리가 늘었다고 정부는 얘기하지만 대부분 증가한 일자리는 주당 18시간 미만으로 쉽게 말하면 좋은 직장은 줄고 나쁜 직장은 늘었다”며 “4050세대의 일자리 지표가 마이너스를 유지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또한 “정부의 직접 일자리 사업이나 수당 지원 등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고령층이나 청년층과 달리 중년층을 겨냥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결국 경제 자체를 활성화해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가 확대되도록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급변하는 시대 맞춤형 교육·지원 필요

당장 부족한 일자리와 함께 4050세대가 고민하는 게 바로 미래 산업 변화에 대한 적응이다. 디지털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이 현실로 다가오는데 자신들은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4050세대가 산업 변화에 적응하고 재취업까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교육이 필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중장년을 위한 재취업교육(직업훈련)을 하고 있다. 다만 규모가 작고 특성화도 안 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교육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고용노동부 취업성공패키지 사업 경우 상담과 직업훈련, 취업알선 등을 한 번에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주로 저소득층과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다. 2019년 기준 참여 인원 가운데 만 35세 이상 비중은 5.6%에 불과하다. 만 34세 미만이 62.0%에 이르는 것과 비교된다. 그만큼 중장년층에 특화된 연계훈련 프로그램이 적다.


비용 보조 형태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내일배움카드제도 사정은 비슷하다. 내울배움카드제도는 취·창업을 준비하는 실업·퇴직자 등에게 훈련비(1인당 200만원 한도)를 지원하는 중장년 특화과정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아쉬운 점은 전기내선공사 양성과정, 스마트패턴 실무 과정 등 단순 기술훈련에 치중됐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기술 관련 배움 기회는 찾기 힘들다.


30년 가까이 일하던 정보통신기술회사에서 퇴직한 후 내일배움카드를 이용해 훈련을 받으려 했던 최모(56) 씨는 “경력을 고려한 재취업교육 프로그램 추천이나 구인·구직 정보를 기대했는데 단순 자격증 취득 교육을 나열해놓은 정도였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출판업계에서 25년 동안 일했던 박모(52) 씨도 “퇴직 후 프로그래밍이나 정보통신과 관련해 뭔가를 좀 배우고 싶은데 막상 재취업 교육을 보면 단순 교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디지털 시대에 맞는 커리큘럼들이 늘어나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퇴직자 재취업 성공을 높이기 위해서는 예산을 확보해 프로그램의 양을 늘리는 한편 교육 조기화와 컨설팅 강화로 질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병숙 한국직업상담협회 이사장은 “퇴직 후 급한 마음에 무작정 재취업 분야를 정하고 단기 교육을 받으면 단순직에 취업했다가 금방 퇴사하거나 교육을 받고도 관련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퇴직 전 자신의 역량을 분석하고 직업을 탐색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경란 IBK기업은행 연구소 부소장은 “4050세대의 경제활동 참여 기간을 지속 확대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과도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이슈”라며 “노출된 4050의 다양한 이슈들을 점검하고, 관리하고, 또 제도 개선해 나가는 가시적인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부소장은 “4050세대의 숙련 창업을 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가장 합리적 대안이 될 것”이라며 “특히 대기업·공공기관·금융기관 출신 전문적 기술기능을 가진 4050세대가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창업·창직에 나설 수 있는 그런 사회·교육시스템이 마련된다면 4050의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와 양질의 일자리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라진 일자리④] "활기찬 노후 말고 우릴 위한 일자리가 뭐가 있죠?"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