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언론은 권력의 시녀가 아니다
받아쓰기만 하라고 강요하는 악법
언론통제의 유혹과 망상 벗어나야
언론중재법 논란 초기에 “가짜뉴스 처벌에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찬성’ 응답이 많았다(더불어민주당 주장). 빈대 잡겠다는데 누가 반대하랴. 하지만 이렇게 당위를 물으면 찬성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다. 문제는 이 법안을 추진한 집권당의 강경세력이 국민을 농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짜뉴스의 99%는 돈벌이 목적의 1인 유튜브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데도 언론중재법은 이들을 규제 대상에서 쏙 빼놨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찬성률은 30%대로 뚝 떨어졌다.
권력자는 세계 어디서나 언론을 통제하거나 피하려고 한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시절, 조지 W 부시도 마이크가 켜진 걸 모른 채 취재기자에게 욕설을 쏟아낸 것처럼 민주국가에서도 언론은 성가신 존재다. 언론만 아니면 권력자와 돈 많은 사람은 거칠 게 없다. 그래서 미국은 헌법에 언론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못 박아 정권ㆍ자본 등 모든 권력을 견제하도록 했다.
민주주의가 취약할수록 언론 통제의 유혹은 커진다. 1980년 신군부는 언론 통폐합에 나섰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조선일보 출신 허문도 청와대 정무비서관에게 ‘언론 창달 계획’을 입안하게 했다. 이에 맞춰 보안사는 언론사 사주들을 남산으로 소환해 통폐합에 이의 없다는 각서를 강제로 받았다. 수많은 해직 기자도 쏟아졌다. 그때도 명분은 있었다. 허문도는 5공 청문회에서 “언론 통폐합은 잘한 일”이라고 했고, 1996년 검찰 조사에서도 “언론사가 난립하고 사이비 기자가 판을 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군사정부의 폭거를 정당화했다.
외형만 보면 신군부의 폭압적 방식이 전형적인 언론 탄압이다. 하지만 언론중재법의 위험성이 결코 물리적 언론 통폐합보다 작다고 할 수 없다. 언론중재법의 독소조항은 취재 의지 자체를 꺾음으로써 한국에서 언론 자유가 질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언론사 내부를 보자. 의외로 언론사의 취재 여건은 열악하다.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 지면만 보면 신문사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실패, 권력자의 횡포, 기업의 소비자 기만을 언론에 스스로 알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딱 한마디 들은 것을 단서로 실체 파악에 나서야 한다. 취재가 시작되면 내부자는 은폐에 나선다. 아무런 공권력이 없기 때문에 계좌 추적은 물론이고, 핵심 인물의 주소 파악이나 관계자 인터뷰조차 쉽지 않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언론이 조명한 수많은 사건은 모두 기자가 발로 뛰어 세상으로 끌고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론중재법은 기자에게 고의·중과실이 있다고 추정하고, 사생활을 이유로 기사 열람 금지 청구를 허용한다.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뒤따른다. 이 법이 실행되면 어떻게 될까.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과 비리를 파헤치려는 시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자기 검열이 앞서면서 취재 의욕이 약화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건 언론이 피해자의 도움 요청을 받아도 이를 수용할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증거 없는 의혹 보도는 부담스러운 일로 기피될 수 있다. 언론중재법이 군사정부의 언론 통폐합보다 덜 위험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엔이 국회에 경고를 보내고 해외 언론단체가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폭압적 법안을 외국 언론에 보란 듯 설명하려다 “가짜뉴스는 1인 미디어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부터 “외국 언론도 적용되느냐”는 질문에 우왕좌왕한 건 스스로 자초한 나라 망신 아닌가. 권력에 취하다 보니 언론만 통제하면 비판을 막을 수 있다는 유혹과 망상에 빠져 “받아쓰기나 해”라는 오만에서 빚어진 참사다. 언론을 권력의 시녀로 보는 건가. “뭣도 모르는” 게 누구란 말인가. 특히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은 허문도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언론중재법은 땜질이 아니라 폐기하는 게 마땅하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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