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의 문화탐색] 북촌과 인사동 사이, 서울공예박물관

2021. 9. 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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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 디자인 평론가

“오늘은 영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날이다.” 1851년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제1회 만국박람회(The Great Exhibition) 개막식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엑스포라고 불리는 박람회의 원조는 프랑스였지만, 이를 국제적인 규모로 개최한 것은 영국이 처음이었다. 25개국에서 1만3000점의 전시물이 출품됐다. 164일 동안 열린 런던 박람회는 대성공이었다.

박람회는 요즘 말로 하면 ‘디자인 전쟁’의 장이기도 했다. 박람회장인 수정궁(crystal palace)은 최초의 유리 조립식 건물로서 건축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념비이며, 출품된 전시물은 산업과 기술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측면에서도 관심과 토론의 대상이 됐다. 박람회는 최초의 산업국가 영국이 국위를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개최한 것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산업 생산품의 조형언어는 확립돼 있지 않았다. 시대는 공예로부터 디자인으로의 전환기였으며, 이를 둘러싸고 취향(taste)과 양식(style) 논쟁이 벌어졌다.

「 서울의 새 명소로 떠올라
관광코스에 머물면 곤란
전통과 단절된 현대공예
새로운 문제의식 품어야

옛 풍문여고 자리인 북촌 초입에 들어선 서울공예박물관. [사진 서울공예박물관]

박람회가 끝나고 주요 출품작들을 소장하기 위해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이 세워졌는데, 이것이 최초의 공예박물관이다. 이후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등지에서도 잇따라 공예박물관 또는 장식미술관이 설립됐다. 이처럼 서구 근대에서 산업과 예술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역동적으로 전개됐다.

지난 7월 15일 서울공예박물관이 개관했다. 옛 풍문여고 자리에 세워진 박물관은 건립 과정에서 유물 출토와 서울시장의 교체, 코로나 유행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인사동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만나는 북촌 초입에 위치한 박물관은 뛰어난 접근성과 함께 담을 없앤 공간적 개방감으로 인해, 벌써부터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SNS 성지로 떠올랐다.

서울공예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공예 전문박물관으로서 박원순 전 시장이 추진한 ‘공예도시 서울’의 성과물인데, 이곳은 뭘 만들어도 흥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지가 좋다. 국립고궁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등이 어우러져 박물관 벨트를 이루고 있는 이곳에 들어선 공예박물관은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건너편 송현동 부지는 ‘이건희 미술관’이 들어설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고 하니,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 정도의 입지는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 최초 공예박물관인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연합뉴스]

장사든 문화든 입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나는 서울공예박물관의 장소성을 좀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현재는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둔 지척지간이지만, 공예의 관점에서 볼 때 조선시대 관청 수공업인 경공장(京工匠)의 중심지였던 북촌과 문화상품이라는 이름의 관광기념품이 넘치는 인사동 사이에는 깊은 단애(斷崖)가 존재한다. 길은 이어져 있지만 전통은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후발 산업국가인 우리의 경우 전통과 근대, 산업과 예술 사이에서 서구만큼의 역동적인 드라마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공예란 언제나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같은 과거 문화재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그러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비주체적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공예가 산업과 예술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문화재로, 다른 한편으로는 관광기념품으로 따로 존재하는 현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북촌과 인사동 사이는 대한민국 최고의 관광 코스이기도 하지만 한국 공예의 단절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나는 이것이 서울공예박물관이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문제의식이라고 본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지만, 이러한 장소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공예박물관은 그저 최고의 입지를 자랑할 뿐인 또 하나의 관광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박물관들이 단지 자신들의 보물을 자랑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모든 박물관은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설립에서 보듯이 나름의 시대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들과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우리의 공예박물관은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만일 없다면 지금부터라고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서울공예박물관에 기대하는 것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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