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좋은 뉴스, 나쁜 뉴스, 이상한 법

2021. 9. 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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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언론인·문화비평

지난해 4월 어느날 이른 아침이었다. 지인이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영상물을 열어보고 벌떡 일어났다. ‘경애하는 최고 지도자 김정은 동지꼐서 현지 지도중 서거하시었다’라는 자막과 함께 북한방송 여자아나운서의 떨리는 목소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켰다. 이 정도의 메가톤급 뉴스라면 국내 방송은 물론 CNN, BBC 등 외신까지 긴급 뉴스를 내보내야 하는데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아차! ‘가짜뉴스’에 감쪽같이 속은 것이었다.

언론사들의 팩트체크 결과 조선중앙TV의 방송처럼 위장한 이 영상물은 한 유튜브채널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사망 후를 예상해 만든 것이었다. ‘께서’를 ‘꼐서’라고 잘못 쓰고, 북한식 표기법인 ‘하시였다’ 대신 ‘하시었다’라고 쓰는 등 첫 화면 문장부터 가짜뉴스임이 명백했다. 간부들의 참배하는 사진은 2019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25주기 중앙추모대회 장면에서 따왔다.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이 떠돌던 때였던 만큼 다른 유튜버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퍼나르는 바람에 급속하게 퍼졌다. 일부 인터넷 매체는 속보로 김 위원장 사망보도를 냈다가 취소하는가 하면 대북 관련주들의 주가가 요동치기까지 했다.

지난 7월에도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이 증권가를 술렁이게 했다. ‘CNN 긴급 타전, 김정은 원산 현지에서 평양 전문병원으로 이송확인’‘프랑스 의료진 수술 후 사망’‘평양 봉쇄’ 등 그럴듯한 내용이 담긴 사설 정보지(지라시)가 발단이었다. 이번 역시 가짜뉴스임이 드러났다. 번번이 당하면서도 가짜뉴스 앞에서 민심은 흔들린다.

더불어민주당이 ‘가짜뉴스 규제’를 내세워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가짜뉴스란 거짓임을 알면서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기사의 형식을 빌어 독자를 속이는 것을 말한다. 선정적이고 편향·왜곡된 유튜브 영상물, 각종 루머를 담은 지라시가 대표적인 가짜뉴스 생산지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가짜뉴스의 스펙트럼이 이보다 훨씬 넓다. 한국언론재단의 가짜뉴스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2017년)에 따르면 일반 국민들은 사실확인 부족으로 생기는 언론사의 오보, 낚시성 기사, 정치적으로 편향된 뉴스, SNS에 올라온 내용을 그대로 전재한 기사, 광고성 기사까지를 모두 가짜뉴스라고 생각한다.어쨋거나 이 모두를 뭉뚱그려 나쁜 뉴스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언론은 나쁜 뉴스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좋은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바친다. 좋은 뉴스란 저널리즘의 본령에 충실하려 한다. 비판정신과 균형감각을 가지고 사건의 진실을 알리며 권력을 감시하면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도록 돕는다. 정치권력에 야합하고 경제권력의 심부름꾼을 자처한 부끄러운 역사가 없지 않다.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최순실의 태블릿PC를 드러내는 등 수많은 좋은 뉴스들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민주주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언론사를 보면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검열, 보도지침, 협박과 회유 등 숱한 방해와 제약을 극복하고 진실을 밝혀냈다. 사회적 책임을 막중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아이린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 보고관은 정부에 보낸 공식서한에서 “언론의 자체검열을 초래하고 공익문제에 대한 토론을 억압할 수 있어 언론자유에 중대한 위협(grave risk)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넷 발전과 함께 매체가 다변화되고 아니면 말고 식의 1인 미디어가 판을 치는 상황이다.

언론에 쏟아지는 불신과 비난을 넘어서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당연히 언론이 스스로 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독소조항을 담고 있는 이상한 법으로 언론을 길들여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자유롭고 검열과 제약을 받지 않는 언론과 매체가 필수적이며 그것은 민주주의사회의 주춧돌 중 하나”라는 칸 보고관의 지적을 새겨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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