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혼·노산에 고위험 임신↑.. 5∼10주 때 가장 조심해야"
전체 임신의 20∼30%가 고위험
협진과 소통·전문 역량 강화로
2년간 2000여명 산모·아기 구해
쌍둥이를 임신한 A씨. 쌍둥이 중 한 명의 목에서 5㎝ 크기 혹이 발견돼 임신 29주째에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았다. 2주 뒤 진통이 시작됐고 혹이 있는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온 후 숨을 쉬기 어려워 곧바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다. 의료진은 고심 끝에 ‘분만 중 수술(EXIT)’을 계획했다.
제왕절개로 분만한 뒤 엄마와 태반·탯줄로 연결된 상태에서 아이 목의 혹을 제거하거나 기도삽관을 해 숨쉬는 통로를 확보하는 고도의 의료행위다. 아이는 처치가 이뤄지는 5~6분 동안 탯줄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는다. 이렇게 어렵사리 세상에 나온 쌍둥이는 신생아중환자실 집중치료를 받은 후 무사히 엄마 품에 안겼다. 긴박한 상황에서 생명을 살리려는 의료진의 노력이 빛났다.
결혼·출산 연령이 높아져 A씨 같은 고위험 산모가 갈수록 늘고 있다. 35세 이상 고령 임신은 기형, 유산 등 태아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고령인 경우 평소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내과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임신하거나 임신 기간에 임신성 고혈압 및 당뇨병, 전자간증(임신 중독증) 같은 합병증을 겪기도 한다.
이밖에 19세 이하 임신이거나 과거 잦은 유산, 기형, 조산·사산, 거대아 출산 경험이 있거나 유전질환·갑상샘질환·심장병·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도 고위험 임신에 해당된다. 쌍둥이나 삼둥이 같은 다태아 임신도 마찬가지. 저체중과 조기 분만 가능성이 크고 임신 중독증과 산후 출혈 증상이 3배 많이 나타난다. 고위험 임신은 전체 임신의 20~30%를 차지한다.
이처럼 고위험 임산부와 중증질환 신생아가 늘면서 이들을 치료할 숙련된 의료진과 고도의 의료장비는 물론 진료과 간 협진도 더욱 절실해졌다. 이런 추세에 맞춰 보건복지부는 전국 15개 권역별로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19곳을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 모든 위험 요소를 관리하는 인프라를 갖춘 곳들이다. 고려대 안암병원은 2019년부터 서울 동북부 지역에서 초응급상황에 처한 임산부와 신생아의 생명 지킴이 역할을 해오고 있다. 2년간 2000여명의 임산부와 신생아를 위험 상황에서 구했다.
이 병원 홍순철 고위험 산모·신생아통합치료센터장은 6일 “다른 센터와 구별되는 장점은 내부의 원활한 소통과 전문 역량”이라며 “산부인과와 신생아 중환자 전문 의료진이 매주 세미나와 회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주변 산부인과나 소아과 원장들과도 24시간 응급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신 기간(평균 40주)은 14주까지 1분기, 28주까지 2분기, 그 이후를 3분기로 구분한다. 통상 37주부터 42주 사이가 정상 분만에 해당된다. 37주 이전 출산을 말하는 조산은 신생아 합병증 위험을 높여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임신 1분기의 경우는 태아의 신체기관 대부분이 형성되는 시기여서 주요 태아 기형은 물론 자연유산이 흔히 일어난다. 홍 센터장은 “임신 5~10주에 얼굴, 심장, 손가락 등 모든 장기가 사람 모습에 가깝게 형성돼 가장 조심해야 할 때다. 이 시기에 방사선이나 약물, 중금속 등 독성 물질 혹은 감염에 노출되거나 임신부의 영양상태가 불량할 경우 태아 기형 위험은 크게 증가한다”고 말했다. 임신 예정 여성은 임신 3개월 전부터 태아 기형을 예방하는 엽산 등 비타민 섭취가 필요하다. 태아에게 위협이 되는 술, 담배, 카페인, 덜 익힌 고기, 고열 등 생활 속 위험 요인도 절대 피해야 한다.
결혼 직후 허니문 베이비를 가진 B씨(33)는 임신의 기쁨도 잠시 걱정이 앞섰다. 결혼 보름 전까지 태아 기형 유발 위험이 있는 줄 모르고 ‘이소트레티노인’ 성분의 여드름 치료제를 복용한 것. 센터를 찾아 상담한 결과 임신 2주 전에 해당 약을 끊었기에 다행히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고 남편과 함께 임신 유지를 결정할 수 있었다. 일반 임신부는 400㎍~1㎎의 엽산 섭취가 권장되지만 B씨는 태아 건강을 위해 3㎎의 고용량 엽산 섭취를 권고받았다.
당뇨병이나 심장질환, 갑상샘질환 등 만성질환으로 약을 먹고 있다면 임신 전부터 약물에 대해 점검해 보고 태아에 영향 가능성이 적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조절이 안되는 당뇨병의 경우 먹는 약 대신 태아에게 안전한 인슐린 주사제가 권장된다. 갑상샘기능항진증 치료제의 경우 부작용 위험이 보고된 ‘메티마졸’ 대신 ‘PTU(안티로이드)’가 좋다. 심장판막 수술 후 항응고제 ‘와파린’을 복용중이라면 임신 전에 ‘헤파린’으로 바꿈으로써 태아 위험을 낮출 수 있다.
35세 이상 고령 임신부의 경우 평소 건강관리를 잘 했다면 임신 시 젊은 임신부와 큰 차이 없이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건강관리에 자신이 없다면 임신 전부터 전문 인프라를 갖춘 곳에서 꼼꼼한 산전 진찰로 합병증의 조기 진단과 예방에 힘써야 한다.
홍 센터장은 “모든 산모가 대학병원에서 진료받고 출산할 필요는 없다. 지역의 산부인과 전문 병원들도 현대화된 치료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다만 만성질환으로 여러 진료과의 진료가 필요하거나 위험 요인(조산, 양수 감소증, 다태아 임신, 산후 출혈 등)을 가졌다면 고위험 출산이 가능한 센터에서 진료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여성 간수가 성고문까지… ’9·11’ 이면 미국의 흑역사
- 정세균, “윤석열-최재형은 文정부 배신자…후배 욕보여”
- “신이 내린 선물” NYT가 극찬한 서천 ‘100원 택시’
- “내게 추미애란? 文만 보면”…‘집사부일체’ 나온 윤석열
- [컨슈머리포트] 자극 없고 무난한 가격 ‘아비브 어성초 스톤’ 엄지척!
- “저기, 나 성희롱 당한 걸까?” 챗봇이 대답해준다
- “얀센 맞고 뇌출혈…과체중이 기저질환이냐”
- [단독]“○○놈아, 넌 유급이야” 공군학생조종사, 욕설·가혹행위 시달렸다
- 쉬는날 공원 갔다가 아이 구한 소방관 “나도 아빠라…”
- 세 모녀 살해범 김태현의 ‘14회 반성문’, 재판에 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