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경선 룰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2021. 9. 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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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정홍원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 9월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선관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랑스가 국민참여 경선을 처음 도입한 시기는 2011년이다.

당시 프랑스 사회당이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국민참여 경선을 처음 도입했는데, 1유로만 내면 누구나 국민참여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 이전까지 프랑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국민참여 경선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국민참여 경선이란 미국적 환경에 적합한 제도지, 프랑스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당시 프랑스 학자들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프랑스 사회당이 이 제도를 도입한 이유가 있다. 사르코지의 높은 지명도에 비해 약세를 면치 못했던 사회당 후보들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국민적 관심을 자신들에게 쏠리게 하기 위한 방법 중 이만한 제도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국민참여 경선은 실제로 상당히 긍정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이후 올랑드 대선 승리의 주요인 중 하나였다고 평가받았다.

사회당의 성공을 본 프랑스 보수연합은 2016년부터 국민참여 경선을 도입했다. 그럼에도 2017년 프랑스 대선 당시의 마크롱 돌풍 때문에, 보수 진영이 실시한 국민참여 경선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당시 선거에서 나타났던 유권자의 기성 정당에 대한 거부감을 감안하면, 다른 경쟁 정당보다는 보수연합이 상대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 경선 여론조사에서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측은 “국민의힘 후보를 찍겠다는 무당층, 중도층, 민주당원, 정의당원, 국민의당 당원이 있는데 왜 그분들을 적으로 돌리고 여론조사에서 배제해야 하느냐. 공정하게 시험 봐서 대학 합격할 생각은 안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무시험 특별전형까지 새로 만들어달라고 우기는 꼴”이라고 주장한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측 역시 “각 후보마다 지난 1년 동안 확장성을 높이기 위해 당과 함께 호남동행 운동도 열심히 했다. 지금 와서 호남을 소외시킬 수 있는 역선택 방지 조항은 크나큰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며 유 전 의원과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최재형 전 감사원장 측은, 민주당 지지층이 국민의힘에서 ‘약체 후보’가 선출될 수 있도록 여론조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밝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표면적으로는 “당 선관위 입장을 따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들이 처한 입장에 따라 역선택 가능성에 대한 입장이 갈리고 있는 셈이다.

역선택 논란은 과연 생산적인 논쟁일까.

역선택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선택이 존재하면 민심 왜곡이 발생한다. 하지만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는다고, 그 조항이 본래 취지처럼 역선택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경선 여론조사에서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는다면, 응답자가 국민의힘 지지자인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인지를 직간접적으로 묻는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민주당 지지자가 작정하고 자신은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거짓 대답을 하면 이의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또한, 만에 하나 ‘가짜 국민의힘 지지자’를 적발했다고 하자. 그러나 어제까지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민주당 하는 꼴을 보고 국민의힘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한마디로 그가 진짜 국민의힘 지지자인지 가짜 지지자인지를 판별할 방법은 없다. 또한 거짓 응답자를 처벌할 법적 근거도 없다. 이 때문에 부담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으면 역선택 가능성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그만큼 솔직한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추론을 전제로 한다. 이런 전제가 성립한다면,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솔직한 사람은 애초부터 역선택을 하려는 마음 자체를 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당들도 국민참여 경선을 도입할 당시, 역선택 가능성을 인지했다. 그럼에도 이를 가려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보수연합 측은 역선택을 하는 이들이 전체 투표자의 20%가량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16년 프랑스 보수연합의 국민참여 경선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역선택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역선택 가능성이 20% 정도라는 수치도 어디까지나 막연한 수치일 뿐이다.

역선택 가능성이 상존함을 인정했음에도, 프랑스 정당들이 국민참여 경선을 선택한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 단점이 주는 악영향 보다 장점이 주는 이익이 클 때는 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이런 합리성에 근거해 프랑스 정당들은 국민참여 경선이 갖는 역선택 가능성이나 정당 존재 의미 약화 그리고 선거 비용 증가 같은 단점보다는, 국민참여 경선을 실시했을 때 얻어지는 국민적 관심 증가와 그에 따른 지지율 상승 가능성이 더 큰 이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본선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아니다. 진짜 지지자와 가짜 지지자를 가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이를 무시하고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런 논쟁보다는 역선택이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역선택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역선택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여론조사 표본 수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응답자 수를 만여 명 이상으로 늘리면 아무래도 역선택 응답자의 영향을 ‘물타기’할 수 있다. 따라서 표본 크기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프랑스의 국민참여 경선의 경우, 2011년 사회당 경선에서는 280만여명이 참여했고 2016년 보수연합 국민참여 경선에서는 480만여명의 유권자가 투표했다. 굳이 프랑스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당 국민선거인단만 봐도 상당한 규모다. 이런 사례를 감안하면, 국민의힘은 여론조사 규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 문제에 대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역선택 방지 조항을 놓고 벌이는 기 싸움보다는 차라리 현재 민주당 측이 ‘제공해주고’ 있는 국민의힘에 유리한 사안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현재로서는 훨씬 나아 보인다.

싸울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가리는 것, 싸울 만한 주제와 그렇지 않은 주제를 구분하는 것은 진짜 싸움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힘의 비축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대국민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도 그렇다. 결국 지금의 싸움의 목적은 정권 획득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이 최종 목적처럼 보인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5호 (2021.09.08~2021.09.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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