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레터] 고용보험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

김소연 2021. 9. 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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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정부는 ‘실업급여를 5년간 3회 이상 수급한 사람은 3번째 수급부터 구직급여액을 최대 50% 삭감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죠. 이날 참여연대를 비롯해 청년유니온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위기 시대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규탄했습니다. “정부는 입법예고안을 철회하고, 고용보험료 인상을 위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다음 날인 9월 1일,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기금 재정건전화 방안’을 의결합니다. 현재 사용자와 근로자가 급여의 0.8%씩 각각 부담하는 고용보험료 요율을 각각 0.1%포인트 올렸습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고용보험기금 재정이 매우 어려워졌다”면서요.

정말 작금의 고용보험 사태가 단순히 코로나19 때문일까요? 2012~2017년 6년간 흑자를 유지해온 고용보험은 2018년 8082억원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2019년 2조877억원으로 적자 규모가 커졌고, 지난해는 5조3292억원으로 불어났죠. 결과적으로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만 해도 10조2500억원이 쌓여 있던 고용보험은 올해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숫자를 보면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18년부터 이미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고용보험 사태가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퇴사했다 재입사한 A계약직원이 있었다. A는 계약직원이 자발적 퇴사를 해도 회사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서류를 작성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5년간 성실하게 일해온 B계약직원과 친해진 A가 B를 꼬드겼다. 결국 둘은 같은 날 회사를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기 시작했다”며 열을 내던 C부장이 떠오릅니다. 이 얘기를 들은 영세기업 관리자 D는 “몇 년 전부터 직원 관리가 몇 배 더 어려워졌다. 실업급여를 탈 요건이 충족되면 줄줄이 나간다. 자발적 퇴사가 아니라는 확인서를 못 써준다 하면 고용부에 신고할 거리 없을 것 같냐며 협박도 불사한다. 서로서로 노하우를 공유하는지 말하는 내용도 엇비슷하다.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 해달라는 대로 해주지만 정말 화가 난다”고 맞장구쳤죠.

꼭 필요한 곳으로 제대로 흘러간다면 오른 고용보험을 기꺼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새고 저기서 새는 상황 만들어놓고 돈 더 내라니 기가 막힐 수밖에요. 더 큰 문제는 이번에 고용보험을 올려도 사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통령 공약인 ‘전 국민 고용보험’에 발맞춰 별다른 준비도 없이 지난 7월 1일부터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신용카드 모집인, 방문판매원 등 12개 직종 종사자가 고용보험 대상자에 들어왔죠. 이들이 본격적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청년들이 자발적 이직을 할 때도 한 번에 한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 수급 기준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죠. 다들 고용보험이 화수분인 줄 아나 봅니다. 아니면 “지금 요율도 너무 낮으니 왕창 올릴 거야” 벼르고 있던가요.

[김소연 부장 sky659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5호 (2021.09.08~2021.09.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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