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컷] 친족 성폭력을 말한다..11명의 고백

임세정 2021. 9. 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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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나를 만졌어. 오빠는 내가 꽃뱀이라 비난했어. 내가 그 일을 성폭력이라 말하니 엄마는 죽어버리겠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잘못했다고 말하게 만들었어."

"나는 고통받는 이들의 호소에 '놀라는' 이들이 싫다. 인간 성숙함의 첫 번째 지표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수용력이다. '피해자'는 피해 그 자체로서 역할을 다한 이들이다. 나머지는 모두 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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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
장화 외 지음
글항아리, 256쪽, 1만5000원


“아빠가 나를 만졌어. 오빠는 내가 꽃뱀이라 비난했어. 내가 그 일을 성폭력이라 말하니 엄마는 죽어버리겠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잘못했다고 말하게 만들었어.”

친족 성폭력 생존자들의 기록인 ‘죽고 싶지만 살고 싶어서’에서 피해자 장화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 책의 저자 11명은 사랑했던 가족으로부터 반복적으로, 집단적으로 짓밟혔다. 지속적인 신체적·정서적 학대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삶에 대한 의지를 빼앗아갔다.

피해자에게 가정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가족은 그 누구보다 위험한 범죄집단이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에서 딸, 여동생, 손녀는 보호받아야 할 구성원이 아닌 성적 대상이었고 범행을 저지르기 쉬운 약자였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들은 고통을 무시당하고 때로는 이해와 용서를 강요받았다. 가해자들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핑계로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오히려 “너 때문에 우리 가정이 망가지고 있다”며 책임의 화살을 돌리고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가정 밖에 있는 사람들은 피해자들이 어렵게 털어놓은 이야기로부터 등을 돌렸다. 제2, 제3의 가해자가 돼 피해자들의 상처를 덧나게 했다.

10대 혹은 그 이전에 친족 성폭력의 희생자가 된 이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기억이 지워진 채 지냈다. 해리성 기억상실증과 우울증, 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수면 장애를 앓았다. 기억이 떠오르면 스스로 보호하지 못한 자신을 비난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삶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생존’했다.

“나는 고통받는 이들의 호소에 ‘놀라는’ 이들이 싫다. 인간 성숙함의 첫 번째 지표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수용력이다. ‘피해자’는 피해 그 자체로서 역할을 다한 이들이다. 나머지는 모두 사회의 몫이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은 이 책의 추천 서문에 이렇게 썼다. 사회 구성원이 공범이 되지 않는 첫 번째 방법은 현실을 직시하고 이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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