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 냄새""비싼 식초냐"..와인같지 않아 더 뜬 와인
'지금까지 내가 마신 와인은 자연적이지 않다는 소리인가?'
직장인 임모(38)씨는 최근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메뉴판을 보고 의아했다. 와인을 레드·화이트 또는 국가별이 아니라, 컨벤셔널(conventional)과 내추럴(natural)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그가 주로 마시던 와인은 모두 컨벤셔널 항목에 들어있었다.
몇 년 전만해도 일부 ‘힙스터’(대중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좇는 비주류)의 전유물인 듯 했던 내추럴 와인이 어느새 주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 와인샵과 와인바가 골목 상권을 중심으로 생기더니 이제는 대형마트에서도 내추럴 와인을 팔고 있다. 단기간 유행을 넘어 와인 산업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전통 농법·생산 방식 고집하는 ‘이단아’
내추럴 와인은 1990년대 프랑스에서 업계의 ‘이단아’처럼 등장했다. 와인 생산자인 동시에 과학자였던 쥘 쇼베는 “식물에 악영향을 미치며 토양의 건강을 해치는 현대 농업기술에서 탈피해 자연을 살리는 과거의 농법으로 땅을 지켜야 한다”며 와인의 대량생산과 산업화를 거스르는 전통적인 양조 방식을 제안했다.
프랑스 와인 전문가이자『내추럴 와인』의 저자 이자벨 르쥬롱에 따르면, 내추럴 와인은 ‘최소한 유기농법을 사용하는 포도밭에서, 병입 과정에서 소량의 아황산염을 넣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첨가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생산한 와인’이다. 일부는 아황산염을 아예 넣지 않기도 한다. 아황산염은 와인 운송 과정에서 보존력을 높이기 위한 방부제 역할을 하는 물질로, 전혀 사용하지 않을 경우 대량 생산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비싼 식초’ vs. ‘세상에 한 병뿐인 맛’
소비자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꼬릿한 냄새와 시큼한 맛, 기존 와인과 다른 생소한 느낌에 “비싼 식초 아니냐” 혹은 “하수구 냄새가 난다”며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애호가들은 화학성분의 도움 없이 포도 자체의 효모균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병마다 다른 독특한 맛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같은 제품일지라도 보관 상태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는 “세상에 한 병밖에 없는 술”이라는 얘기다.
권위에 도전하는 MZ세대 닮은 술
내추럴 와인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모조리 깨뜨린다. 로버트 파커 주니어와 같은 유명 평론가의 평점에 신경 쓰기 보다는 편하게 즐기는 술을 지향한다. 라벨 역시 생산자의 개성과 와인의 감성을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된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젊은 세대는 시음을 위해 잔을 흔들고 코를 박고, 맛·향·바디감·질감 등을 따져 고상한 용어로 묘사하는 기존 문화를 고리타분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이름난 보르도 와인처럼 역사와 전통을 따지지 않아도 충분히 멋지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내추럴 와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배정원기자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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