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시계와 시간

이현우 2021. 8. 1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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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들에겐 시간이 있소."

2011년 당시 괴멸 직전 상태에 몰렸던 아프가니스탄 무장정파 탈레반 간부들이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늘 하던 말이다.

탈레반이란 이름은 아프간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질 것이란 게 미국의 관측이었다.

탈레반의 말처럼 미국은 점차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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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주의 미군 엔터닉 기지에서 주둔 미군이 철군하면서 국기하강식을 갖고 있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당신들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들에겐 시간이 있소."

2011년 당시 괴멸 직전 상태에 몰렸던 아프가니스탄 무장정파 탈레반 간부들이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늘 하던 말이다. 세계 최강의 무기와 막강한 전투력을 갖춘 미군이라 해도 주둔비용을 고려해 시계를 쳐다보며 철군 날만 기다리겠지만, 자신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조직을 재건해 강해진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러한 발언은 패망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헛된 희망 정도로만 치부됐다.

당시 아프간 주둔 미군은 12만명에 달해 아프간 전역을 속속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탈레반과 함께 미군과 교전하던 알카에다마저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체포, 처형돼 조직이 무너지고 있었다. 탈레반이란 이름은 아프간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질 것이란 게 미국의 관측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탈레반의 말처럼 미국은 점차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연 1조달러(약 1170조원) 이상을 잡아먹던 아프간은 미국 경제에 큰 짐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탈레반은 20년 동안 재건해 다시 아프간 전역을 석권하게 됐다.

미군의 시계침을 더 빨리 돌아가게 만든 것은 아프간 정부의 무능과 부패였다. 주로 북부 군벌들로 구성된 연립정권이던 아프간의 친미 정권은 미군이 주둔한 20년 동안 거의 모든 치안상황을 미군에 떠맡긴 채 내부 정쟁에만 빠져들었다. 미군 장병이 3000명 이상 사망하는 동안에도 이들이 개선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3년 결국 아프간 정부를 배제한 채 탈레반과 포로교환 등 평화협상 테이블에 앉아 철군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

아프간 전쟁으로 경제가 무너져내린 바 있던 러시아도 뼈아픈 조언을 하며 미군에게 철수를 권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2010년 당시 오바마 행정부가 아프간에 추가 파병을 논의 중이란 소식을 듣고 직접 인터뷰에서 "미국이 아프간에 50만명을 더 파병해도 스스로 재건할 의지가 없는 나라에 추가 파병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후 미국의 철군 작업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져 오늘에 이르렀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만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제2의 남베트남’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군에 전혀 후회가 없다고 공식 표명했다. 아프간 정부가 좀 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면, 미군의 시계침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느리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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