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수백수천 년 전 과거의 삶 온몸으로 전하는 메신저 '미라'

한은정 2021. 8. 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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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할수록 선명해진다, 미라가 보여주는 과거

미라는 썩지 않고 건조돼 원래 상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인간이나 동물의 사체를 말합니다. 미라라고 하면 흔히 아마포(린넨)로 감싸고, 금빛 찬란한 가면을 쓴 이집트 미라를 떠올리는데요. 한국에서도 미라가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있었나요. 이집트의 미라와는 다른 과정을 거쳐 형성된 미라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미라는 왜 중요하고, 우리는 미라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신비한 사후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이집트 미라 문화를 경험해보고, 한국에서 발굴되는 미라 얘기도 알아봤습니다.

강준희(서울 서래초 6·왼쪽)·황승민(서울 대치중 2) 학생기자가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 전시를 찾아 이집트의 신비한 사후세계와 미라 문화를 경험하고, 한국에서 발굴되는 미라 얘기도 알아봤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은 뒤에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영혼불멸 사상을 가지고 있어 죽은 이의 몸을 미라로 보존하면 떠났던 영혼이 다시 돌아와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어요. 사람이 죽으면 미라로 만든 뒤 무덤에 묻는데, 생전 모습과 똑같이 생긴 마스크를 만들어 얼굴에 씌워 죽은 영혼이 부활할 때 알아볼 수 있도록 했죠. 무덤 안에는 죽은 이가 저승을 여행할 때 도움되는 주문이 적힌 사자(死者)의 서(書), 다음 세상에서 하인으로 쓰기 위한 인형인 우샤브티, 다양한 일상용품 등을 넣어 다음 생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했어요. 19~20세기 이집트의 파라오(왕) 무덤이 발굴되고, 전 세계에 알려지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알려진 문화가 됐죠.


파라오의 무덤을 탐험하다

순금 11㎏으로 제작된 황금 마스크는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보물 중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집트 파라오 하면 누가 먼저 생각나나요? 많은 사람들이 투탕카멘을 떠올릴 텐데요.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기원전 1333~1323 재위) 파라오로 9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19세 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죠.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1922년 11월 나일강 서쪽 ‘왕가의 계곡’에서 황금 가면을 쓴 그의 미라와 수많은 부장품이 도굴되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된 무덤을 발견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됐어요. 하워드 카터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한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무덤은 3300년 전의 모습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유물의 보존과 안전상의 이유로 실제 발굴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도 일부 특권 계층뿐이었고, 현재는 모든 유물들이 반출돼 따로따로 전시되고 있기 때문에 이집트 현지를 가더라도 발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만나 볼 수는 없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김한겸 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맨 오른쪽)와 함께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 전시를 찾아 이집트의 신비한 사후세계와 미라 문화를 경험하고, 한국에서 발굴되는 미라 얘기도 알아봤다.

그런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 100주년을 맞아 무덤과 부장품을 완벽하게 복원, 한자리에 총망라한 전시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이죠. 윤태연 디커뮤니케이션 과장은 “발굴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서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다시 한번 대중에게 선보이려고 했습니다”라고 전시 기획 의도를 밝혔죠. “직접 고고학자가 되어 발굴 현장을 탐험하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으며, 수만 가지의 부장품들이 어떤 이유에서 이러한 모습으로 안치되었는지 자세하게 알아 갈 수 있을 거예요”라고 관람 포인트도 알려줬습니다.

무덤의 각 방을 재현한 공간에 부장품들을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배치해 전시하고 있어 발굴 현장을 탐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디커뮤니케이션

강준희‧황승민 학생기자가 하워드 카터처럼 파라오의 왕묘를 탐험하러 나섰습니다. 병리학자이자 국내 미라 연구의 권위자인 김한겸 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하나로 의료재단 하이랩 원장)가 이들의 탐험에 동참했어요.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는 길 양쪽 벽은 벽화로 꾸며져 마치 파라오의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죠. 첫 번째 섹션에서는 5000년의 이집트 역사를 한눈에 정리하고 투탕카멘 무덤 발견에 도움을 준 역사적 흔적들도 집중 조명합니다.

보물의 방에서는 자칼 형상을 한 고대 이집트의 죽은 자들의 신, 아누비스를 만나볼 수 있다.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한다고 알려져 있다. 디커뮤니케이션

두 번째 섹션은 무덤의 각 방을 재현한 공간에 부장품들을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배치해 전시하고, 무덤 발굴 현장의 숨은 에피소드를 알려주죠. 동선도 전실→현실→보물의 방 등 실제 발굴 순서대로 연결돼있죠. 침대가 안치된 전실과 관이 모셔졌던 현실을 거쳐, 보물의 방에서 ‘망자의 신’ 아누비스를 만나게 됩니다. 이번 전시는 모든 관람객에게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는데, 상세한 설명 덕에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죠. 특히 이 공간에서는 깜깜하게 불이 꺼져 있다가 설명이 끝나면 조명이 들어오는데요. 황금빛으로 빛나는 부장품들을 볼 때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오죠.

투탕카멘의 관은 사당 안에 모셔져 있는데, 네 개의 사당을 거쳐야 그 안에 있는 석관을 만날 수 있다. 디커뮤니케이션

김 교수가 “멋있다! 처음 발견하고 들어가서 얼마나 짜릿했을까요”라며 감상을 말했죠. 강준희 학생기자가 “저기 보이는 게 지팡이 맞나요?”라고 질문했어요. “지팡이가 많이 발굴됐대요. 투탕카멘은 발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내반족 질환을 앓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지팡이를 짚고 다녔을 것이라고 얘기하죠. 투탕카멘의 사인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시대가 바뀔수록 해석이 달라져요. 의학이 발달하고, 엑스레이를 찍던 시대에서 CT를 찍고 유전자 검사를 시도하는 시대로 넘어오면서 얘기가 달라지는 거죠. 한국은 미라를 한 번 연구하면 끝났다고 그래요. 한국의 비극이기도 하죠. 연구할 때마다 무궁무진한 얘기들이 계속 밝혀지거든요.”

투탕카멘의 미라가 담긴 관의 모습. 바깥 관과 중간 관, 110㎏ 순금으로 제작된 황금 속관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디커뮤니케이션

투탕카멘의 관을 감싸고 있던 사당과 벽화의 길을 지나면 마지막 섹션이 나타납니다. 미라와 황금 관, 황금 마스크 등 투탕카멘의 영생을 위해 무덤을 가득 채웠던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물건부터 그가 직접 사용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장품이 호화롭게 펼쳐집니다. 두 번째 섹션이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면 이제 하나씩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거죠. 투탕카멘은 3중 관에 누워 있었다고 해요. 바깥 관과 중간 관, 110㎏ 순금으로 제작된 황금 속관이 모두 전시되어 있었어요. 그 옆엔 파라오의 미라가 있었죠.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들고 다니는 지팡이, 왕홀(王笏)을 쥔 채 누워 있었고 머리에는 황금 마스크가 덮여 있었죠. 아마포 붕대 위에는 색유리와 문구로 장식된 황금 장식띠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투탕카멘 미라. 디커뮤니케이션

멀리서 바라봐도 황금 마스크는 한눈에 보일 정도로 번쩍였어요. 11㎏의 순금으로 제작된 황금 마스크는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아이콘인데요.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보물 중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많죠. 살아 있는 듯한 눈에는 석영을, 눈동자에는 흑요석을 각각 상감해 넣었어요. 왕이 쓰는 줄무늬 두건 앞이마 부분에는 남부 이집트의 독수리 머리와 북부 이집트의 코브라 몸통이 부착되어 있는데 각각 남부와 북부 이집트, 그리고 왕을 수호하는 여신들입니다. “이 황금 마스크가 본인 것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어요. 다른 사람 걸 준비해 놨는데 갑자기 왕이 죽으니까 어쩔 수 없이 준비된 걸로 해놨다는 거죠. 이집트 국립박물관 직원이 유물을 청소하다 황금 마스크를 떨어뜨려 턱수염이 부러진 적도 있어요. 근데 들통날까 봐 본드로 붙였대요. 황당한 일이죠.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하고 보전하는 것도 중요해요.”

황승민(앞 왼쪽)·강준희 학생기자가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 전시장에서 투탕카멘의 황금 속관을 관람하고 있다. 이들의 탐험에 동참한 김한겸(맨 뒤) 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가 깜짝 포즈를 취했다.
카노푸스 상자를 바라보고 있는 소중 학생기자단. 내부에는 투탕카멘의 장기가 담긴 소형 황금 관이 들어갈 수 있도록 4개의 수납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황승민 학생기자가 “미라는 어떻게 제작되나요?”라고 궁금해했죠. 전시장에는 미라 제작 과정을 담은 동영상도 볼 수 있었습니다. “갈고리를 코에 넣어 뇌를 제거해요.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장기도 적출합니다. 절개한 부분을 깨끗하게 닦은 뒤 천연 탄산소다 분말을 온몸에 골고루 쌓아 수분을 제거해주죠. 40일 후 시신 내부에 여러 가지 향기로운 재료를 채운 후 방부 처리를 하고 아마포로 시신을 감아요.” 미라를 제작하는 데는 70일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발 받침대가 있는 투탕카멘의 왕좌. 등받이 그림 속 투탕카멘은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쉬고 있고 그의 아내 안케센아문 왕비는 옆에서 남편의 어깨에 향유를 발라주고 있다. 디커뮤니케이션
소중 학생기자단이 전차를 관람하고 있다. 투탕카멘의 왕묘에는 바큇살이 6개인 후기형 전차 6대의 부품이 다른 부장품과 함께 매장됐다.

발굴 100주년 특별전 ‘투탕카멘: 파라오의 비밀’

기간 2022년 4월 24일(일)까지
장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9 전쟁기념관
관람 시간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전시 종료 1시간 전 입장 마감)
관람료 성인 1만9000원, 청소년 1만6000원, 어린이 1만3000원

김한겸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이집트 문화와 미라에 대해 궁금한 점을 해결한 소중 학생기자단.


한국의 미라
미라는 이집트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 곳곳, 한국에서도 미라가 발견되고 있죠. 인공적으로 만든 미라가 아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미라도 많습니다. 미라가 만들어지는 원인과 종류도 다양한데요. 대부분 미생물에 의해 부패가 되지 않기 위해 건조하고 차가우며 공기가 차단된 환경이 갖춰져야 합니다. 가장 흔한 것은 건조 미라예요. 시신이 바싹 말라 세균 활동이 정지돼 잘 썩지 않기 때문이죠. 세계에서 제일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이 있는 남아메리카는 미라의 보고라 할 수 있어요. 또 차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안데스 산맥 서편 사막지대, 몽골 남부 고비사막 인근, 중국 장강 북쪽 사막지대에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추운 나라에서는 냉동 미라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가장 유명한 냉동 미라는 1991년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된 ‘외치’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라로 5300년 전 석기시대에 살다 왼쪽 어깨에 화살을 맞고 죽은 모습 그대로 발견됐죠. 이렇게 긴 시간 썩지 않고 보관된 이유는 추운 기후 때문이에요. 연구 결과, 외치는 160㎝ 정도의 키에 사망 당시 45세 정도로 추정됐죠. 유전자 정보 등을 분석해 생전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하기도 했어요. 이런 연구가 가능한 것은 미라의 보존이 우수했기 때문이죠. 냉동 미라의 특징은 시신이 가장 온전히 보관된다는 점이에요.

김한겸 교수에게 한국 미라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있는 소중 학생기자단.

황승민 학생기자가 김 교수에게 우리나라 미라의 특징은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연 미라예요. 시신이 관 속에서 자연스럽게 미라로 만들어져 소화기관 등 내부 장기도 온전히 갖추고 있죠.” 강준희 학생기자가 “어떻게 잘 보존될 수 있었나요?”라고 질문했죠. “한국의 장례문화 때문이에요. 조선 전기에는 관 주변에 석회를 넣어 굳힌 회곽묘(灰槨墓)를 사용했는데, 덕분에 관 전체를 시멘트로 밀봉해놓은 것처럼 되는 거죠. 두께가 워낙 두꺼워 공기가 차단되고, 무균 상태가 되어 보존됩니다.” 우리나라 미라 대부분이 회곽묘에서 발견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물론 회곽묘에 묻혔다고 다 미라가 되는 건 아니에요. “제가 본 미라들은 방부 처리한 흔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겨울에 매장한 시신이 미라가 될 확률이 높겠죠.”

발굴 당시 부모의 옷에 감싸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해평 윤씨 소년 미라.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미라의 수는 많지 않습니다. 발견되더라도 조상의 시신을 소중히 여기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대부분 화장하거나 재매장되었기 때문이죠. 2000년 이후 미라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진행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미라를 연구하는 것은 수백수천 년 전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첨단 방사선 검사나 의료장비를 이용한다면 사망 원인부터 과거의 생활상이나 풍습 등도 알아낼 수 있고, 보존기술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죠. 우리나라 미라 연구의 효시는 2001년 경기도 양주군 해평 윤씨 묘역에서 발견된 미라 ‘단웅이’입니다. 단국대 의대에서 분석했는데 400여 년 전 6세가 되던 해 간염 바이러스와 결핵으로 사망한 것이 밝혀져 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돼요.

파평 윤씨 모자 미라는 세계 최초의 임산부 미라로 주목받았다. 김한겸 교수

황승민 학생기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 미라가 무엇이냐 묻자 김 교수는 ‘파평 윤씨 모자’ 미라를 꼽았는데요. 2002년 발견된 세계 최초의 임신부 미라로 주목을 받았죠. 분만 도중 자궁벽 파열로 피를 많이 흘려 저혈성 쇼크로 태아와 함께 죽은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장에서는 플랑크톤‧꽃가루와 함께 기생충(선충)이 발견됐는데, 당시 그가 음식을 날것으로 먹었다는 증거인 셈이죠. 국내 미라 연구 사상 가장 다양하고 많은 연구가 이뤄진 미라 중 하나로 꼽힙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2003년 ‘파평 윤씨 모자 미라 및 출토 유물전’을 열고 다양한 연구‧발굴 성과를 전시했죠.

파평 윤씨 모자 미라 3D 복원도. 태아를 배 속에 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김한겸 교수

2004년 대전 계룡산 인근에서 발견된 ‘학봉 장군’ 미라는 사망한 지 600년 이상 지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미라입니다. 가족묘를 쓴 두 쌍의 부부 합장묘에서 발견됐는데, 할아버지와 증손자 등 네 구의 미라가 한꺼번에 발굴됐죠. 미라 전체를 정밀 내시경 검사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에요. 연구진은 사망 원인으로 호흡기‧폐 질환을 꼽았고, 대장내시경을 실시한 결과 간디스토마와 두 개의 편충알이 관찰됐죠. 위내시경 결과 음식물 흔적도 발견돼 사망 전까지 식사를 한 것으로 조사됐어요.

학봉 장군 미라는 사망한 지 600년 이상 지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미라다. 한국자연사박물관

미라는 지금은 알 수 없는 먼 과거 시대의 다양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미라 주변 토양이나 내부 기생충의 흔적을 찾아 당시 식생활이나 위생상태, 보건 환경 등의 생활상도 알아낼 수 있어 다양한 인류사를 복원할 수 있죠. 김 교수는 후손들이 조상의 미라를 발견해도 연구용으로 기증하는 걸 꺼리는 게 아쉽다고 얘기했어요. “한국 미라는 현재까지 언론에서 나온 거, 이것저것 다 조사해도 70구가 안 돼요. 발견된 후에도 대부분 재화장하거나 매장되어 사라졌죠.” 키가 190cm인 ‘남오성 장군’ 미라도 확보하려고 했지만 문중에서 반대해 매장해 버렸고, 2006년 전남 장성군에서 발견된 ‘장성’ 미라도 연구에 잠깐 쓰이다 다시 매장됐다고 해요. “한번 연구하면 끝났다고 생각해서 후속 연구를 할 수가 없어요. 연구가 끝났는데 왜 갖고 있어, 이렇게 얘기하죠. 끝난 게 아니거든요. 다른 방면으로 접근하고 끊임없이 연구해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학봉 장군 미라 발굴 당시 모습. 할아버지와 증손자 등 네 구의 미라가 한꺼번에 발굴됐다. 한국자연사박물관

파평 윤씨 모자 미라를 비롯해 김 교수가 입수한 미라 8구는 고려대 의과대학과 고려대 구로병원에 보관되어 있는데요. 현행법으로 미라는 문화재가 아니라 오래된 시신에 불과합니다. 발굴한 미라는 조사를 끝내면 발견자나 연구자에게 그 처리를 맡기는데, 대체로 보존할 수가 없어 화장해버리죠. 김 교수는 미라 거취의 불확실함 때문에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2월에 퇴직하면서 학교를 떠났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죠. 어떤 사람은 내가 보존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미라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에요. 미라 연구소 박물관이 있으면 나중에 학생들이 커서 미라 학자가 될 수도 있어요. 지금 미라를 보존하지 않으면 다 끝나는 거죠. 오히려 무덤에서 나온 옷이나 부장품은 중요하게 여기고, 다 가져가서 복원해요. 옷은 벗겨가고 그 주인공은 왜 홀대하나 싶어요.”

병리학자이자 국내 미라 연구의 권위자인 김한겸 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하나로 의료재단 하이랩 원장)

김 교수는 수년 전부터 정부가 나서 미라를 보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해왔지만 아직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미라에는 다들 열광하지 않나요?” 김 교수의 질문에 소중 학생기자단이 “맞아요. 전시장에도 사람 엄청 많았어요”라고 답했죠. “왜 한국 미라는 푸대접하나요. 미라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에 이분들을 모셨으면 좋겠어요. 미라는 수백 년, 수천 년 전 사람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세월을 건너 나타나신 분들입니다. 우리와 대화를 하기 위해 온 거죠. 그 얘기를 제대로 듣고 싶습니다. 그 방법은 우리가 앞으로 찾아내야 하죠.”

■ 미라를 볼 수 있는 국내 박물관

「 한국자연사박물관(충남 공주시 반포면 임금봉길 49-25)

한국자연사박물관

2004년 대전에서 발굴된 학봉 장군과 증손자 미라가 모셔져 있죠. 학봉 장군 사망 당시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호흡기‧폐 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해요. 한국자연사박물관은 중요한 사료가 될 거라고 판단, 후손의 허락을 받고 미라를 모셨습니다. 앞으로 미라 보관‧연구 계획에 대해 조한희 관장은 “‘학봉 장군’ 미라를 여러 교수님께서 연구하며 현대과학 중 세균배양, 중금속 함량, 유전자 검사 등에 큰 도움이 됐고, ‘파평 윤씨 모자’ 미라 등 다른 미라 또한 현대과학 및 학술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 봅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더 많은 미라가 발견된다면 더욱 세밀하게 보관‧연구를 하는 ‘미라 연구소’를 만들어 관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다만, 미라의 보존 처리나 보관 환경 등 어려운 점이 있기에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 152)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1년 해평 윤씨 집안에서 경기도 양주군 조상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기던 중 발견된 소년 미라 단웅이가 쉬고 있는 곳이죠. 발굴 당시 무덤에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애절한 사랑이 그대로 남아있었어요. 차디찬 무덤 속에 어린 자식을 그대로 묻을 수 없었는지 남녀 어른의 중치막과 장옷을 여러 갈래로 잘라서 시신을 덮어주고 감싸준 상태의 모습이었죠. 이명은 학예연구사는 소년 미라에 대해 “어린 자식이 죽으면 대부분 화장을 하는데, 전통 장례 풍습을 그대로 따르면서 염습을 부모의 옷으로 해 그 애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고, 출토된 옷 역시 조선시대 어린이옷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토티르데스의 관. 관은 미라를 보호할 뿐 아니라 여기에 망자와 오시리스를 연결하는 그림을 그려 죽은 이가 사후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줬다. 토티르데스가 사후세계에서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그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토티르데스의 관에서 나온 미라. 국립중앙박물관

국내 최초의 이집트 상설전시실인 세계문화관 이집트실에서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이집트의 장구한 역사와 독특한 세계관을 소개하는 전시가 2022년 3월 1일까지 열리고 있어요. 미국 브루클린박물관이 소장한 이집트 문화재 94건을 전시하죠. 그중 ‘토티르데스의 관에서 나온 미라’라고 부르는 미라가 있어요. 토티르데스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적힌 관에서 나왔지만 관과 미라의 주인이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강준희 학생기자

이집트의 왕이나 무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이번 취재로 잘 알게 됐습니다. 미라에는 자연 미라와 인공 미라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인공 미라를 만드는 방법도 알게 됐죠. 특히 투탕카멘의 마스크와 관은 정말 멋졌습니다. 또 한국에는 미라가 없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도 자연 미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런데 한국 미라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게 아쉬웠어요. 김한겸 교수님의 말씀처럼 한국에서도 미라 연구가 지속될 수 있게 보존하고 연구할 수 있는 대책이 꼭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강준희(서울 서래초 6) 학생기자

황승민 학생기자

이집트 하면 미라가 생각나고, 미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투탕카멘이었어요. 한국에서 투탕카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개인적으로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이번 전시와 미라에 대해 취재할 기회가 생겨서 너무 행복했죠. 특히 미라 연구의 대가이신 김한겸 교수님과 함께 전시관을 다니면서 미라 설명을 듣고 궁금한 것들을 취재하면서 미라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었어요. 오래전에 죽은 미라를 보고 이들이 어떤 병에 걸려 있었는지 밝혀내신 이야기를 듣고 놀랐죠. 미라를 연구하는 사람은 고고학자나 문화재 관련 연구자인 줄 알았는데, 의학과 미라 연구의 관련성도 알 수 있었어요.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훌륭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죠. 황승민(서울 대치중 2) 학생기자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지다영(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강준희(서울 서래초 6)·황승민(서울 대치중 2) 학생기자, 자료=『500년 신비를 과학으로 풀다 한국 미라』(휴먼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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