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껍질에 난 혹에서 수액 흘리는 벚나무, 알고 보니 아프대요

성선해 2021. 8.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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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도 공원에서도 매일 보는 나무는 회색빛 삭막한 도시에 푸른 숨결을 불어넣는 귀중한 존재예요. 땡볕에서 길을 걷다 마주치는 나무 그늘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만큼이나 반갑죠. 그런데 나무도 사람처럼 다치거나 아플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한곳에 뿌리를 내린 채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무에도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김휘윤 학생모델과 전지윤 학생기자가 나무의 건강 상태를 살피는 법을 알아보기 위해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서울대공원을 찾았어요. 다양한 동물·식물이 사는 서울대공원에서는 청소년이 자연과 친해질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거든요. '나무 의사' 체험에 나선 소중 학생기자단을 숲 환경학교 소속 최은경 해설가가 울창한 숲으로 이끌었습니다.

김휘윤(맨 왼쪽) 학생모델과 전지윤(가운데) 학생기자가 최은경 숲 해설가를 만나 나무의 생태와 건강 상태를 살피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무는 주로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나요?" 참나무·소나무·자작나무·벚나무·은행나무 등 곳곳에 울창하게 뻗어 자라는 나무들을 보며 지윤 학생기자가 물었어요. "나무마다 선호하는 환경이 달라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보고 있는 나무들은 자연 상태에서는 한곳에서 볼 수 없어요. 사는 환경이 다르거든요. 자작나무는 깊은 산 양지바른 곳에서 울창하게 숲을 이루죠. 소나무는 햇볕이 많은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주변에 다른 나무가 없는 환경을 선호해요. 반면 단풍나무는 여럿이 모여 자라는 걸 좋아해요. 혼자 햇볕에서 나오는 직사광선을 쬐면 오히려 힘들어하죠. 그래서 무리 지어 그늘을 만듭니다. 이렇게 나무마다 다른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해요."(최)

나무가 걸리는 질병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자신에게 맞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서 생기는 비기생성병이다. 나무마다 적합한 환경을 알고 심어야 한다.

"나무도 병에 걸린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휘윤 학생모델이 말했어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자신에게 맞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서 병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죠. 이걸 비기생성병(非寄生性病)이라고 해요. 병이나 해충에 의해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부적절한 환경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하는 상태를 뜻해요. 스트레스를 받아 시름시름 앓게 되는 거죠. 나무가 앓는 질병의 70~80%가 비기생성병이라고 보면 돼요." 사람을 비롯한 동물도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온·습도에 장기간 노출되면 아프기 마련이죠. 나무도 자신에게 혹독한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면 체력이 쇠약해져요. 그러면 면역력이 떨어져서 각종 해충과 균에 의해 병에 걸리기 더 쉬워요.

서울대공원 동물원 근처 숲에서 자라는 쥐똥나무의 잎. 나무의 잎은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직접적인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럼 이제 나무 하나하나의 특성을 알아볼까요. 제일 먼저 만난 건 소나무예요. 좁은 땅에 비가 자주 오지 않아도 잘 자라 평지보다 산의 면적이 더 넓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 중 하나죠. 소나무는 솔잎혹파리와 소나무 재선충 등에 의한 피해가 막심합니다. 이들에 감염되면 잎과 줄기가 시들어 말라 죽게 돼요. 소나무의 건강 상태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건 잎의 색깔이죠. 벌레 등에 감염되면 잎이 갈색으로 변해 축 쳐져요. 솔잎혹파리나 소나무 재선충을 예방하려면 각종 곤충·새 등 이들의 천적을 나무 서식지에 방사하거나 예방주사를 나무에 놓아야 하죠.

우리나라에서 본래 자생하던 소나무와 6.25 전쟁 이후 북아메리카에서 들여온 리기다소나무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잎의 갯수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2개, 리기다소나무는 3개씩 잎이 난다.

자세히 살펴보니 소나무마다 잎의 숫자가 달랐어요. 어떤 소나무는 바늘 모양의 잎이 2개씩 모여 있었고, 또 어떤 소나무는 3개씩 모여 있었죠. "이 두 소나무는 종류가 서로 달라요. 잎이 2개씩 있는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본래 자생하던 종류이지만, 3개씩 있는 건 북아메리카가 고향인 리기다소나무예요. 6·25 전쟁 이후 파괴된 우리나라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빨리 자랄 수 있으며 적응력이 강한 나무를 외국에서 들여와 심었죠. 그중 하나가 리기다소나무인데, 솔잎혹파리는 리기다소나무에는 알을 낳지 않아요."(최)

나무에서 나온 수액, 어치(산까치)가 나무 틈에 숨겨둔 열매, 나무가 살기 적합한 환경인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이끼.(맨 왼쪽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면 여러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액과 껍질 표면의 흉터도 나무의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어요. 소나무숲을 지나고 나니 굵은 기둥을 가진 나무가 눈에 들어왔어요. 봄에 전국을 물들이는 벚꽃이 피는 나무, 바로 벚나무였죠. 가까이 가서 나무 몸통을 자세히 살펴보니 혹처럼 울퉁불퉁한 부분들이 곳곳에 솟아 있었고, 여기서 끈적한 액체가 흐르고 있었어요. 나무가 분비하는 점도가 높은 액체인 수액(樹液)입니다. 수액은 나무마다 성분과 이름이 달라요. 소나무의 수액은 송진, 옻나무는 옻진, 고무나무 수액은 고무라고 하죠.

"이 벚나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한 번 맞춰보세요." 최 선생님이 퀴즈를 냈어요. "조금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김) "맞아요. 복숭아유리나방에게 공격당해서 상처가 났죠. 그래서 껍질에 혹처럼 흔적이 남았어요."(최) 복숭아유리나방을 예방하려면 나방이 유충인 시기에 살충제를 뿌리거나, 철사나 칼로 유충을 잡아줘야 해요. 사람은 피부에 상처가 나면 몸 안에 병균이 들어가서 고름이 생기죠. 나무도 마찬가지예요. 껍질에 난 상처를 그대로 두면 내부에 곤충이나 균이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끈적끈적한 수액으로 환부를 덮어버린 겁니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려는 벚나무의 노력이 수포가 되는 경우도 많아요. 벚나무의 수액은 다른 나무에 비해 달콤해서 딱정벌레와 같은 곤충들이 선호하는 간식이죠. 그러면 벚나무는 많은 체력을 소모해서 또다시 수액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부근 숲에서 여러 나무의 종류별 특징을 알아본 전지윤(맨 위) 학생기자와 김휘윤 학생모델.

멀쩡하게 보이던 나무가 알고 보니 다쳐서 힘들어하는 중이네요.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나니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달리 보여요. 벚나무 위에는 초록색 나무 이끼도 자라고 있었어요. "취재 전 관련 자료를 찾아봤는데, 이끼가 자라면 좋은 환경이라는 이야기를 읽었어요."(전) "그렇죠. 이끼의 상태만 잘 살펴도 나무가 살기 좋은 환경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어요. 깊은 숲속일수록 이끼가 많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죠."(최)

지지대에 의지해 서 있는 단풍나무를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과 최은경 숲 해설가. 지지대는 뿌리가 약한 나무가 똑바로 설 수 있도록 돕는다.

다리를 다쳤거나 걸음이 불편한 사람은 목발에 의지하거나 휠체어를 타죠. 나무도 뿌리를 땅속에 튼튼히 내리기 전까지 지지대의 도움을 받기도 해요. 숲속 한쪽에는 여러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었는데요. 이들 중 일부는 엑스(X)자 형태의 지지대에 의지해 서 있었어요. "이 단풍나무들은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옮겨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뿌리가 아직 땅에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죠. 이 상태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오면 쓰러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지대로 고정해둔 거예요." 지지대는 나무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지만, 제때 철거하지 않으면 오히려 나무의 적응과 성장을 방해해요. 나무가 지지대가 받치는 힘을 뿌리의 힘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죠.

숲에 있는 개미굴을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숲은 여러 종류의 동물과 곤충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사람은 아프면 약을 먹는데, 나무도 그런 게 있나요?" 지윤 학생기자가 물었어요. "예전에는 나무에 벌레가 생기면 살충제를 뿌려서 싹 죽였어요. 요즘은 부작용 때문에 살충제 사용을 최소화하는 분위기예요." 곤충에게 영향을 끼치는 약은 나무와 그 주변에 사는 동물은 물론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나무의 생태를 잘 아는 전문 인력의 진단을 받아 천연 살충제를 사용하거나, 해당 해충의 천적을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나무를 비롯한 식물은 산업화·도시화로 생기는 부작용을 보완하고 막아주는 역할을 해요.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등 각종 대기오염 물질의 정화 작용이 대표적이죠. 나무와의 공존은 인간에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나무의 생태를 잘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동안 부족했어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나무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는 환경이 필요하고, 컨디션에 이상이 있으면 사람처럼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받아야 해요.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쑥쑥 자라는 나무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인간은 물론 우리가 사는 지구도 더욱 행복해질 테니까요. 앞으로는 길가에서 매일 보는 나무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어떤 상태인지, 아픈 곳은 없는지 잘 살펴보세요.

■ 나무도 의사가 있어요

「 인간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고, 아픈 동물은 수의사에게 데려가죠. 나무도 전담 의사가 있답니다. 바로 나무의 건강 상태를 진단·처방하고, 피해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나무 의사'예요.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부터 국가공인 자격 인증이 시행된 직업입니다. 나무 의사가 되려면 관련 기관에서 약 150시간의 교육을 이수한 뒤,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해야 해요. 시험 과목은 수목해충학·산림토양학·수목관리학을 비롯해 외과수술까지 다양해요.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지금까지 서울대공원에 가면 항상 동물만 보고 집으로 돌아갔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동물이 아닌 나무들을 관찰했죠. 평상시에 그냥 지나쳤던 나무들이 은행나무·소나무·참나무·자작나무 등 각각 이름과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나무가 새롭게 보입니다. 또한, 나무도 사람처럼 생명이 있고 병이 있어서 이들의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해 주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됐어요. 이제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잘 관찰하려고 합니다.

전지윤(경기도 낙생초 4) 학생기자

처음에는 서울대공원 동물원 부근에서 나무를 취재한다고 하니 당황스러웠어요. 그간 동물원에는 동물만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동물원에도 다양한 나무들이 산다는 걸 알게 됐죠. 또 나무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나무의 모습에도 하나하나 다 숨은 뜻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벚나무가 복숭아유리나방에게 받은 공격 때문에 생긴 상처를 메우려고 수액을 분비했는데 딱정벌레가 와서 그걸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과정을 반복하는 벚나무는 참 힘들겠다 싶었어요. 앞으로 나무를 더 잘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휘윤(서울 신도초 4) 학생모델

글=성선해 기자(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지다영(오픈스튜디오), 동행취재=김휘윤(서울 신도초 4) 학생모델·전지윤(경기도 낙생초 4)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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