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놓인 야쿠르트 2개, 폭염속 80대 독거노인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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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2개, 최소 사흘간 나오지 않은 것
집 앞에 덩그러니 놓인 야쿠르트 2개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신고한 이웃들의 작은 관심이 무더위와 굶주림에 생사를 넘나들던 80대 독거노인의 생명을 구했다.
지난 8일 오후 2시쯤 강원도소방본부 119종합상황실에 한 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춘천시 후평동 D아파트에 혼자 사는 A씨(80) 집 앞에 야쿠르트가 며칠째 그대로 있으니 집안을 확인해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신고자인 통장 나영숙(64·여)씨는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하자 “제가 다 책임질 테니 문부터 빨리 열어달라”고 했다.
나씨가 119에 신고한 후 다급하게 문 개방을 요청한 건 야쿠르트 때문이다. 해당 아파트가 있는 후평1동 행정복지센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경로당에 나오지 못하는 독거노인에게 매주 화·목요일, 일주일에 두 차례씩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담당공무원 등이 매번 각 가정을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야쿠르트 배달원과 이웃들이 야쿠르트가 쌓이는 것만으로도 이상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는 점도 반영됐다. 야쿠르트가 2개 쌓였다는 건 독거노인이 최소 사흘째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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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자 80대 노인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어
이번 경우도 A씨의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이 야쿠르트 2개가 쌓인 것을 확인하고 나씨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당시 타지역에 있어 곧바로 현장에 갈 수 없었던 나씨는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출동한 소방대원이 문을 개방하자 A씨는 집안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누워만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A씨는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에 옆집 이웃이 죽을 끓여 먹이며 A씨를 보살폈고, 이웃과 관리사무소 관계자들이 번갈아가며 A씨의 상태를 살폈다.
이후 나씨의 설득 끝에 마음을 돌린 A씨는 이날 인근 대학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어 지난 10일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나씨는 “과거에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독거노인이 있어 집에 찾아가 봤더니 이미 돌아가신 상태여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며 “함께 사는 이웃들의 빠른 대처로 또 다른 이웃의 생명을 살릴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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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 안타까운 소식에 대청소 나서
A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웃들에게 전해지면서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새마을문고중앙회 춘천시지부가 결성한 춘천시새마을작은도서관봉사단은 지난 11일 A씨의 집을 찾아 대청소를 했다. 정리수납 자격증이 있는 10명의 단원은 화장실과 주방 등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불필요한 집기를 모두 자루에 담아 폐기했다.
새마을문고중앙회 춘천시지부 이희순(59·여) 회장은 “청소하는 과정에서 악취도 심하고 발 디딜 틈이 없어 힘들었는데 청소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지고 보람도 된다”며 “이런 뿌듯한 마음 덕분에 매달 1회씩 청소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춘천시 후평1동 행정복지센터에서도 A씨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집수리 및 냉장고와 밥솥, 냄비, 이불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할 계획이다. 후평1동 행정복지센터는 2019년부터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야쿠르트’ 사업을 시작해 현재 20명의 독거노인이 혜택을 받고 있다. 사랑의 야쿠르트 사업은 지역주민이 십시일반 기부하는 ‘천원 나눔’ 사업에 모금된 돈으로 사업비가 지원되고 있다.
이승희 춘천시 후평1동 맞춤형복지담당은 “천원 나눔 사업에 참여한 주민들과 통장, 관리사무소 경비원, 옆집 이웃 등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독거노인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며 “독거노인이 이런 위험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맞춤형 대책을 지속해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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