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도 노무현도 밀어붙였던 '언론제약법'..그 법 운명은?

하준호 2021. 8.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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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8월 국회 내 처리를 선언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추진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4대 입법’ 중 언론관계법(신문법·언론중재법)과 유사하다. 그 탄생 배경과 내용, 전개 양상이 각각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반감(反感)에서 비롯했고 ▶추정 조항 등 권력이 법을 악용해 비판 언론에 불이익을 주기 쉽게 설계된 내용이 담겼으며 ▶국회 의석수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기한을 정해 밀어붙이고 있단 점에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 의원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2005년 1월 1일 새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당시 언론관계법의 운명은 결국 독소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2006년 6월 29일)으로 이어졌다. 1개 신문사의 시장점유율이 30% 이상이거나, 3개 이상 신문사의 시장점유율이 각각 10%를 넘으면서 합계가 60% 이상인 경우 신문발전기금을 지원하지 못하게 한 신문법 17조, 34조 2항 2호에 대해 위헌이라 결정한 것이다. 정식 재판 없이 가처분 절차만으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이 가능하게 한 언론중재법 26조 6항에 대해서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신문법과 관련, 재판관 7대 2로 위헌 결정을 하면서 “신문의 시장지배적 지위는 결국 독자의 개별적·정신적 선택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인 만큼 그것이 불공정행위의 산물이라고 보거나 불공정행위를 초래할 위험성이 특별히 크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는데도 신문사업자를 일반사업자에 비하여 더 쉽게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되도록 하고 있는 점 등이 불합리하다”며 “신문사업자의 평등권과 신문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독자의 선호도가 높아서 발행 부수가 많다는 점을 이유로 신문사업자를 규제하려면 그 지배력의 남용 유무를 따져야 한다”며 “합리적 이유 없이 발행 부수가 많은 신문사업자를 차별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 정청래, 이경숙 의원과 천정배 원내대표가 2004년 10월 15일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신문법 전부개정안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해 말 통과된 신문법 중 핵심 조항은 2006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했다. 중앙포토

헌재는 또 언론중재법과 관련, 재판관 6대 3으로 위헌 결정을 하면서 “정정보도 청구의 소를 민사집행법상 가처분 절차로 재판하게 되면 ‘사실적 주장에 관한 언론보도가 진실하지 아니함’이라는 사실의 입증에 대해 통상의 본안 절차에서 반드시 요구하는 증명을 배제하고 간이한 소명으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는 소송을 당한 언론사의 방어권을 심각하게 제약하므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진실에 부합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는 소명만으로 정정보도 책임을 지게 하면 언론사는 사후 분쟁에 대비해 진실임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를 수집·확보하지 못하는 한 사실주장에 관한 보도를 주저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헌재는 이어 “이러한 언론의 위축효과는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신속한 보도를 자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그에 따른 피해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자유언론의 공적 기능이 저하된다는 것”이라며 “피해자의 보호만을 우선해 언론의 자유를 합리적인 이유 없이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가처분 절차에 따라 단순 소명만으로 정정보도 청구를 인용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든 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09, 2010년 각각 언론중재법, 신문법 개정을 통해 위헌 조항을 바꾸거나 삭제했다.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에 대한 일부 위헌 결정이 내려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2006년 6월 29일 방청인들이 결정문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헌재는 5개 조항에 대해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중앙포토

언론을 권력의 입맛대로 통제할 수 있는 근거를 둔 언론법은 서슬 퍼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폐지 수순을 피하지 못했다. 5·16 쿠데타에 이은 2년여의 군정(軍政)을 거쳐 1963년 대통령 선거로 출범한 박정희 정부의 언론윤리위원회법이 그랬다.

당시 박 대통령은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을 ‘굴욕외교’라고 반대하는 6·3 시위가 벌어지자 “우리나라 신문은 지난 18년간 선의건 악의건 너무나 많이 자극적·선동적 언사를 써 왔다. 이렇게 해서 경영상 수지는 맞춰 왔는진 몰라도 국가사회에 유익한 일만 해 왔다고 단언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며 언론 탓을 했다. 그래서 마련돼 64년 8월 2일 일요일 밤 국회를 통과시킨 게 언론에 대한 타율적 규제가 가능토록 한 언론윤리위법이었다.

법 제정 후 언론윤리위 소집에 반대한 언론사에 대해선 신문 용지 배정과 금융기관 융자를 금지하는 보복 조처가 이어졌다. 이에 언론 5개 단체(신문발행인협회, 통신협회, 신문편집인협회, 신문윤리위원회, 국제언론인협회 한국위원회)로 구성된 언론윤리위법철폐투쟁위가 발족했고, 그해 8월 17일엔 한국기자협회가 창립했다.

당시 언론인들은 공개 투쟁과 함께 언론인 출신 여권 인사를 통한 박 대통령과의 막후교섭 등을 통해 보복 조처 철회와 ‘법 시행보류’에 합의했다. 이후 보류 상태가 이어지다 80년 전두환 정부의 언론기본법 제정으로 폐지됐다.

1988년 11월 제5공화국의 '언론대학살'을 규명하기 위한 언론통폐합 국회 청문회장에 1980년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이던 허문도씨가 증언대에 나와 있다. 중앙포토

전두환 정부는 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언론 통폐합을 추진했다. 언론사 사주를 불러 모아 유·무형의 압박을 가한 결과였다. 같은 해 12월엔 언론기본법을 제정해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악명 높았던 ‘보도지침’도 언론기본법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 법은 87년 6·29 선언에 따른 민주화 이전까지 존속했지만, 그해 11월 국회에서 새로 마련한 신문법·방송법으로 대체하면서 폐지됐다. 이른바 ‘언론 악(惡)법’의 최후는 모두 법 자체 또는 독소조항의 소멸로 이어진 셈이다.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상정된 언론중재법 개정안도 이미 악법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관련 손해배상액의 기준을 언론사의 매출액으로 삼고, 이에 대한 하한선을 정해놓기도 했다. 정정보도 청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기사에 대한 인용보도를 고의·중과실로 추정토록 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한 현직 언론중재위원은 “구제 신청만으로 기사가 허위란 잠정적 지위를 부여해 해당 언론사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의 취재·보도의 자유를 일정 기간 정지하는 효과가 있어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언론중재법' 주요 내용 및 전문가·야당 의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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