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과 화합이 함께 쌓은 바빌론의 탑, 그 역사적 현장
[박순영 기자]
▲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2막 장면. 가운데 나부코 역 바리톤 고성현과 아비가일레역 소프라노 문수진, 이즈마엘레 역 정의근 등 모든 주요 출연진이 적과 백의 대립을 이루며 새로운 이데아를 향한 탑을 쌓는다. |
ⓒ 문성식 |
공연 하루 전인 11일 오후 6시 반, 기자들을 위한 프레스콜이 진행되었다. 코로나 객석 거리두기로 객석 오픈을 반밖에 못하는 데다, 리모델링한 해오름극장의 객석수가 종전에 비해 줄어든 것에 대한 국립오페라단 측의 배려로 보였다. 덕분에 기자들은 해오름극장이 앞으로 충실한 오페라극장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이번에 연출과 무대, 의상, 조명디자인, 안무를 모두 다 한 스테파노 포다의 작품으로 일반 관객들보다 하루 먼저 파악할 수 있었다.
결론은 역시 한국 성악가들은 너무나도 훌륭하다는 점, 이번 작품을 백과 적의 대비와 화합으로 연출한 스테파노 포다의 현대적 <나부코>로 해오름극장 리모델링이 잘 되었다고 가늠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는 점을 말할 수 있겠다.
프레스콜이 시작되자, 해오름극장에 원래는 없던 오케스트라 피트 공간을 깊숙이 만들어 넣은 것이기 때문에 서곡의 현악기 소리가 객석으로 잘 퍼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f의 다이내믹 구간이 아니기도 했지만, 공연 초반은 오케스트라도 관객도 이 때까지는 공연장에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흰색 무대에 흰색 의상을 입은 자카리아 역 베이스 박준혁의 충실하고 든든한 노래 기운이 울려펴지니 이날 공연을 비롯해 이 곳이 앞으로 수많은 오페라가 올려질 공연장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이어 이즈마엘레 역 테너 정의근의 중후 팽팽한 노래로 '아, 여기 오페라 공연장이구나, 지금 오페라하고 있구나'라고 딱 정신이 차려졌으며, 페네나 역 메조 소프라노 양송미의 심성을 다한 연기와 풍성한 음색, 아비가일레 역 소프라노 문수진의 매서운 카리스마까지 성서 시대 오페라가 현대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 나부코 역 바리톤 고성현의 대포알 같은, 뚜렷하게 객석에 확 던져지는 노래부터는 홍석원 지휘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음량도 함께 잘 울려퍼지면서, 공연 초반에는 내가 착각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오페라단이 <나부코>를 위해 섭외한 스테파노 연출의 시공을 뛰어넘는 무대미학과 철학에 빠져들고 있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높은 천장을 활용해 천장 크게 드리워진 시계추와 거대 지구모형이 상하로 움직인다. 무대 벽 또한 1막은 흰 색과 2막은 붉은 색이 되며 상하 이동해 현대적 유대성전을 보여준다. 수직 수평 넓은 무대를 국립합창단과 연기자인 더 굿과 무용수 아트컴퍼니가 꽉 채워 달리고, 쓰러지고, 서로 엉겨 탑을 쌓으며 입체적으로 만든다. 아군과 적군의 경계를 원통형의 투명천으로 해 감옥이자 바빌론탑이 되며, 여기에 2막 불이 활활 타오르는 영상이 쏘여지니 정말 지옥의 한복판 같다. 3막 '히브리노예들의 합창'은 은은하게 시작해 압도적으로 펼쳐지는데, 무대벽이 이동하니 중앙에 커다랗게 '한'이라는 글자가 보여지며, 우리네 정서 '恨'과 광복적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韓'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한다.
2015년 국립오페라단의 <안드레아 셰니에>를 스테파노 포다 연출의 작품으로 봤을 때와는 또 다르게, 지금 코로나로 분투하는 2021년까지 지난 6년간 국내 오페라계의 작품수준은 엄청 발전했다. 이는 국립오페라단과 각 시도, 민간 오페라단의 문화예술에 대한 혜안과 염원, 각고의 노력으로 이룩한 결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가 8월 여름 광복절을 맞는 대한민국에 화합을 가져오는 좋은 불씨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리톤 고성현, 정승기, 소프라노 문수진, 박현주,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최승현, 테너 정의근과 박성규, 베이스 박준혁, 최웅조, 소프라노 최세정, 임은송, 테너 김지민, 박경태 등 정상급 성악가들이 총출동한다. 공연은 8월 12일부터 15일까지. 14일 오후3시 공연을 라이브생중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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