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 블랙리스트 피해자 반발에 특위 재구성
[성하훈 기자]
▲ 11일 오후 온라인으로 개최된 블랙리스트 피해자 온라인 공청회 |
ⓒ 영진위 |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에 대한 피해자들의 불만에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 김영진 위원장)가 11일 새로운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블랙리스트 핫라인을 개설하고 피해 사실을 공개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입장을 청취하고 구술해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여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 영진위가 보이고 있는 태도가 말 따로 행동 따로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조사 없는 보고서 폐기해야"
11일 오후 열린 블랙리스트 피해자 온라인 공청회에서는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입은 영화인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사전에 신청한 사람에 한하여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한 온라인 공청회에서 영화인들은 지난 과거사 특위 활동에 대한 불만을 잇달아 제기했다. 신은실 평론가는 검증 문제와 피해자에 대한 조사가 없었던 점을 비판하면서 과거사 특위 조사결과 보고서를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온한 당신>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이영 감독도 "정권에 비판적인 이유로 영진위 2016 상하반기 지원사업에 배제 당했다"며 "피해자들 확인도 거치지 않은 것은 심각한 오류"라고 비판했다.
또한 "영진위가 기존 과거사 특위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면서도 보고서를 보전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잘못된 내용 바로잡을 게 아니라면 잘못된 내용을 공식화하는 것이기에 조사보고서를 폐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역시 "일반 피해자 조사가 한 건도 없었다"면서 "이번 공청회도 직접적인 연락을 받은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고 영진위의 태도를 질타했다.
이어 "피해자 조사 한 번 없이도 공청회를 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과거사 특위에서 피해자 조사에 대한 위원장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 자체가 없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결국 영진위 측은 "과거사 특위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 조사 없이 진행했다는 것이고, 공청회 연락을 못 드린 것은 실무 행정적인 문제"라면서 "과거사 특위가 피해자들에 대해 추가로 조사하지 못한 것과 공청회 관련해 연락을 못 드린 것에 대해서는 사과드린다"고 답변했다.
영진위는 또한 과거사 특위 조사보고서 폐기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최종 보고서로 남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피해기록을 남기는 것이고, 역사적 기록물로 남겨 보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를 통한 재발 방지와 제도개선을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원승환 인디스페이스 관장은 "지난 3월에 과거사 특위 조사 발표에서 조사하겠고 한 15건 중 9건만 발표, 6건은 발표가 없었다"면서 "나머지 사건은 조사를 못할 것 같다고 답변하는데, 피해자 조사도 하지 않는 보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고, 9인 위원회에서 의결됐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라 폐기 여부를 9인 위원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9인 위원회 내부에서 조사결과 폐기를 할 수 없다고 하면 과거사 특위 조사 내용의 적절성에 대해 밖에서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 영진위가 11일 공개한 블랙리스 문제해결과 피해회복을 위한 신규 특별위원회 구성(안) |
ⓒ 영진위 |
영진위는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요구에 대해 특별위원회 재구성을 통해 수렴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김정석 사무국장은 "실질적으로 조사 사건에서 빠진 것을 시간이 지나서 더 조사하겠다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라며 "피해자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사과하겠다는 것이 영진위 입장"이라고 밝혔다.
영진위는 특별위원회에 대해 블랙리스트 문제해결과 피해 회복을 위한 약속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감시하며, 블랙리스트 피해 회복 방안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방안 등을 심의의결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블랙리스트 핫라인을 개설해 의견 수렴 및 블랙리스트 후속 조치 진척상황을 안내하고 피해회복과 제도개선 근거 마련을 위해 피해자 구술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피해자들의 의견을 들어 최종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진 영진위원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제도개선이 되도록 열심히 하겠고, 빨리 절차를 밟겠다"면서 "올해 안에 후속 조치까지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영진위의 최근 행태를 보면 진정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영진위는 지난 4월 블랙리스트 관련해 징계를 받았던 일부 직원을 본부장과 팀장에 임명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복권 조치했다. 남아 있는 징계자들의 복권도 시간 문제가 된 것이다.
특히 지난 8월 1일 자로 복권조치된 직원들 중 일부는 2급에서 1급에서 상향시키는 등의 직급승진까지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 업무 담당 팀장을 지휘하는 본부장은 블랙리스트 징계자다.
인사권한이야 위원장에게 있어 위원장이 필요한 사람을 적재적소에 임명한 것이라고는 해도 지난 2019년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징계자들을 인사발령냈다가 블랙리스트 단체들의 강한 반발에 밀려 이를 철회한 것에 비춰보면, 비교되는 부분이다.
▲ 11일 영진위가 밝힌 블랙리스트 문제해결과 피해회복을 위한 계획(안) |
ⓒ 영진위 |
한 독립영화 관계자도 "공금으로 룸살롱과 안마시술소 등을 다녀 논란이 됐던 김정석 사무국장의 리스크가 현실화 된 것으로 보인다"며 "물러나야 할 사람이 영화단체들의 요구에도 계속 그 자리를 지키며 불통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하겠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어 "영진위가 블랙리스트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을 블랙리스트 징계자 밑으로 배치했다"면서 "다들 블랙리스트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블랙리스트 징계자들을 복권시키는 행태에 대해서는 왜 말이 없는지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정윤희 블랙리스트 위원장은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이 언제까지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동의가 뒷받침돼야 하고 피해자들과 마주치는 업무에서는 배제돼야 한다"며, "오늘 공청회는 보니 여전히 기관은 미온적이며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데, 참여한 피해 예술인들의 발언이 제대로 반영된다면 블랙리스트와 같은 국가폭력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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