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바나나 사진'이 사라졌습니다

김주희 2021. 8. 1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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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수술 기사에 들어간 바나나 사진, 문제점을 지적하자 수정됐네요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주희 기자]

얼마 전 나는 어느 언론사의 남자아이 포경수술 관련 기사에 올라온 '바나나 사진'을 보고 기사를 썼다(관련 기사 : 나를 불편하게 만든 '바나나 사진'). 나의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나의 개인 블로그 정도에 실렸음에도 예상외의 큰 반응을 얻었다.

나의 개인 블로그에 올리자마자, 초스피드로 몇 분이 '공감'을 눌렀다. 게다가 이 기사의 조회수는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기사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편이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지 사뭇 궁금하고 신기할 뿐이다.

나는 이 기사를 쓰면서 내심 후련했다. 나의 글이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나 근거 없는 비난이 아니라,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문제에 대한 올바른 비판이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민기자로 계속 기사를 쓰는 건, 이런 쾌감(?)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다만 기사를 쓰면서 내가 쓴 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는 걱정과 두려움이 있기도 하지만 기사를 쓰는 이유가 개인적인 이익 추구가 아닌, 건전하고 순수한 목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움츠러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그래서 내 기사를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단지 기사의 내용과 무관하거나, 전혀 기사의 내용을 읽지 않고 오직 '비난을 위한 공격'을 하는 댓글을 보면 상처를 받거나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그런 반응에 좀 태연해지고 있는 것 같다.

사라진 '바나나 사진'으로 바라본 나비효과
   
 내가 봤던 기사에 부적절하다고 느꼈던 '바나나 사진'이 사라졌다. 독자들의 외침이 결국 현실이 되었고 그 비판을 수용한 기자님의 자세가 긍정적으로 보인다.
ⓒ pixabay
    
어릴 적부터 참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하고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라는 말이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자주 들은 듯 싶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백프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침묵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도 나에게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그냥 참고 넘기는 것이 괴로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매번 용기있게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내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나의 생각을 정제된 글로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것만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부끄럽지 않은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결국 나는 시민기자가 되었다.

나는 기사를 쓴 후, 그 '바나나 사진'의 기사를 다시 검색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앗! 바나나 사진이 사라졌다! 다른 사진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가, 혹시 기자님이 내 기사를 보신걸까? 물론 그 이유는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수정했을 것 같다.

여하튼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그 문제의 '바나나 사진'이 사라진 것이 나는 매우 반갑고도 신기했다. 결국 사람들의 '외침'이 현실의 '변화'로 나타났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 비판을 수용하여 행동으로 옮긴 기자님의 자세가 긍정적으로 보였다.

나는 기사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 이유에 '나비효과'를 언급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그 말이 언젠가부터 나에겐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이유는 '평범한 사람인 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나타내고자 할 때, 이 짧은 단어 하나가 그것을 다 하기 때문이다.

요즘 기사를 쓰면서 나의 이러한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 더 커지는 듯하다. 완전한 목적 달성은 아니어도 마음 속으로 품었던 외침을 세상 밖으로 꺼냈다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잘하고 있다고 내 자신을 위로한다.

한 줄 댓글 '기사 잘 쓰셨습니다'

기사를 쓰고 나면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무엇보다 독자들의 칭찬, 공감 등 긍정적인 평가는 글을 쓰는 원동력이다. 최근 내 기사에 남긴 단 한 줄의 댓글이 있다. 무심코 본 그 한 줄 '기사 잘 쓰셨습니다'라는 말이 계속 내 마음 속에서 메아리친다. 그 한마디 속에는 독자의 '공감'과 '응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외부로 드러내는 일을 불편해하거나, 여러 가지 반향이 두려워 쓰지 않거나 혼자 간직하기도 한다. 매우 공감하는 부분이다. 결국 나에게 보낸 독자의 한 줄 댓글은 '내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을 기사로 잘 쓰셨습니다'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독자들의 목소리를 잘 대변하는 기사를 잘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작가들은 창작의 고통을 넘어서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보는 독자들의 반응 속 감동과 힐링에 또다시 쾌감과 중독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그들의 원동력이다.
ⓒ pixabay
 
어쩌면 기자 외에도 책, 드라마, 영화 등을 만드는 모든 작가들이 창작의 고통을 넘어서서 파급력 있는 창조물,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완성된 작품을 보는 독자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중에서도 특히 독자들이 보여주는 공감과 감동, 치유가 결국 작가에게는 또 다른 쾌감과 중독성을 갖게 하여 다시 또 그 과정을 반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명성 있는 작가들이 작품을 쓰고 또 써서 계속적으로 명작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점점 기사 중독, 글 중독... 행복한 중독의 세계로 빠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행복이 나만의 것이 아닌,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감과 세상을 향한 변화이기에 나는 오늘도 기꺼이 나의 책상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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