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15세에 결혼, 한성외국어학교 입학
[김삼웅 기자]
▲ 최익현의 병오창의(무성서원) 최익현은 을사늑약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의병봉기를 하였다. |
ⓒ 태산선비문화관 |
갑오년 풍운이 거센 해에 태어났으나 아직은 무풍지대에서 성장하고 있던 신익희가 10대를 넘기면서 주변과 가정에 비바람이 들이닥쳤다. 1896년 2월 인근 고을 이천의 의병들이 일본군이 점거한 남한산성을 점령했다가 한 달여 만에 빼앗기면서 많은 의병이 희생되었다.
12세 때에는 끔찍이도 막내 아들을 사랑하고 가르쳐주신 아버지가 76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조숙한 편이지만 아버지를 떠나보내기에는 아직 철부지 소년으로 상심이 컸다. 형제들과 3년상을 치렀다.
▲ 1904년 한일의정서 강제 체결 후 촬영한 기념 사진 |
ⓒ 사진가 권태균 제공 |
그 사이 나라의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었다. 1904년 한일의정서가 체결되어 일본군이 한국에 전략 요충지를 수용할 수 있게되고, 이용구ㆍ송병준 등 매국노들이 일진회를 조직하여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하고, 1905년 외교권이 강탈되는 을사늑약이 강제되는 등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운명이 되었다.
신익희는 조혼의 관례에 따라 15세 되는 1908년 초 연안이씨 영재참판의 3녀 이승희(李承姬)와 결혼하였다. 부인이 한 살 연상이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신문명을 배워야 한다는 큰형님의 뜻에 따라 이해 봄에 2년 연상인 조카 정균이와 함께 서울로 왔다. 처음에는 정균이의 처가에서 지내다 호조판서를 지낸 분의 가정교사 자리를 구해서 숙식을 해결하고 학비에 보태었다.
▲ 1905년 11월 17일 일본과 체결한 을사늑약문서. 이 조약에서는 외교권박탈과 통감부 설치 등을 규정했고, 대한제국은 사실상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가 된다. |
ⓒ 한겨레출판 |
서울에 올라온 나는 두 가지로 공부할 길을 생각하였다. 하나는 법률 양성소에 다녀 법률을 배워 무지한 민중이 법망에 걸려서 고생하는 것을 구제하여 보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영어 학교에 들어가서 영어를 배워 서구의 진보한 문화를 흡수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필경 당시 우리 나라의 유일한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에 입학하였고, 조카는 같은 학교 한어과(漢語科)에 입학하였다. (주석 6)
한성외국어학교는 관립이었으나 학비가 유료이고 숙식까지 각자 해결해야 했다. 과거제가 사라지면서 조정의 내노라하는 실력자들의 자제가 많이 들어왔다. 그만큼 경쟁률이 높았다. 신익희는 여기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
그때의 영어학교에는 독본과 문법을 영어로 배우는 것은 물론 역사ㆍ지리ㆍ대수ㆍ기하 같은 것을 모두 영어로 배웠었는데 소학교 과정도 완전하게 마치지 못한 그 때의 학생으로는 큰 부담이었다. 교관은 한국사람이 대부분이었으나 영국 사람들도 있었다.
그 당시 현대적으로 낙후된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하는 영국인 교사들은 대단히 오만하여 학생들을 멸시하고,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에게는 우리 말로 '지게꾼놈'ㆍ'상놈'하고 욕하면서 가르치는 데 쓰는 분필(白墨) 토막으로 면상이나 머리를 함부로 내갈기는 것이 상례였다.
나는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은 때로는 평균 98점을 받아서 그런 멸시는 당하지 않았다. 이 무렵 이 외국어 학교 영어과의 나와 한어과의 조카 정균이 두각을 드러냈다. 나는 융희 황제비 윤 황후의 오라버니 윤홍섭(尹弘燮)과 정구영(鄭求瑛)과 세 사람이 일등을 다투었고, 한어과에서는 조카 정균이 조 대왕대비의 조카 조남준(趙南俊)과 일등을 다투어 숙질이 함께 두각을 드러냈다. (주석 7)
주석
6> 앞의 책, 51쪽.
7> 앞의 책,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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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공 신익희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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