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도 스며드는 '빛나는 지하 노동' 속 불투명한 미래
사람들이 땅 위의 삶을 향해 지하철을 거쳐 갈 때, 지하에서 그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부산 지하철 속 노동을 섬세히 비추며 그들의 자부심과 부끄러움을 녹여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서히 그들의 불투명한 미래가 떠오른다.
19일 개봉하는 이 영화에선 하나의 교통수단인 지하철이 어떻게 노동의 공간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기관사, 청소노동자, 터널 관리공, 철도 정비공, 관제실 직원 등 지하철이 무사히 운행되기 위해 일하는 이들을 익명인 채 열거한다. 영화가 막을 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전까지 이들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 속 이야기가 특정 직군의 것이 아니라 일하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문제로 느끼길 바라는 김정근 감독의 연출 의도다.
영화는 지하 노동에 스며있는 노동자들의 자부심과 부끄러움을 드러낸다. 한 비정규직 열차 정비공은 지하철의 바퀴 부분을 수리하는 게 업이다. 그는 “열차가 달릴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서 자부심이 있다”고 말하지만, 해찰을 부리는 정규직을 볼 땐 “나도 공부를 더 해서 정규직이 될걸”이라고 한탄한다. 그가 작업 중 다친 몸을 사비로 치료했다며 “산재 처리를 하면 정말 그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는 거냐”고 물을 땐 그 한탄은 현실이 된다.
지하철 역사의 한 청소노동자는 자신이 맡은 구역이 깨끗하다는 칭찬을 받으면 뿌듯하다. 그는 “처음에는 청소한다는 말을 잘 못했지만 이제는 자부심을 느끼고 일한다”며 “누가 ‘형님 나도 좀 넣어줘’라고 했는데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며 웃는다. 다른 청소노동자는 자신이 청소하는 모습이 찍히자 “청소하는 게 어떻게 영화가 되누…얄궂은 신문에 올리려고 하지”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들은 부산교통공사로부터 직접 고용이 되는 게 소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릴 것 없는 미래는 불투명하게 펼쳐져 있다. 한 비정규직 철도 정비공 반장은 “3년 주기로 철도 정비공들이 일을 배울 만 하면 그만두기 일쑤다. 몇 년 전에는 정규직이 현장 반장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비정규직이 관리한다”며 “자부심을 줘야 사람들이 일한다. 철도는 계속 노후화가 되는데 10년 뒤에는 누가 고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한 정규직 기관사는 “기관사는 외주화 바람에도 끄떡없을 줄 알았는데, 무인화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두 명이 운행하던 지하철은 이제 한 명이 운행한다. 그 때문에 그는 종종 자신이 운행하는 지하철이 터널에 부딪히는 꿈을 꾼다. 그가 출퇴근을 위해서 타는 지하철은 종종 전면이 유리로 돼 앞이 트여있는 무인화 지하철이다. 그는 “바뀌어 가는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가혹하게 한 번에 바뀌는 것 같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모습들이 하나씩 나열되는 동안 감독은 사이사이에 한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취업 과정을 교차해 보여준다. 한 학생은 “취직하면 머스탱 같은 좋은 차를 몰고 다닐 것”이라고 꿈에 부풀어 이야기한다. 이 학생들에게 부산 지하철의 노동 현장을 보여주자 “딱 봐도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구분돼 있다. 터널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비정규직이고 무언가 타고 다니는 사람은 정규직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이 견학 간 지하철 관리 공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 노동자를 대체한 모습이 일부 비친다. 학생들은 “여긴 아닌 것 같다”며 손이 잘린 모습 손가락으로 만들어내며 희화화하듯 자조하듯 웃는다. 그들은 몇 달 사이 자신 또한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 간다.
김정근 감독은 “투쟁 현장이 아닌, 노동하는 모습을 통해 노동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익명의 노동을 가만히 바라보게끔 만들고 그 안에서 노동의 위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말했다.
‘언더그라운드’는 지난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돼 비프메세나상(다큐멘터리 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났다. 강소원 부산국제영화제 강소원 프로그래머는 “보다 적게 말하고 오래 관찰하는 이 영화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언더그라운드’ 아래에 또 다른 ‘언더그라운드’가 있다”고 평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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