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으로 공 뿌린 김명제, 왼손에 라켓 들고 도쿄로
교통사고로 장애 입은 뒤 휠체어테니스 입문
왼손으로 바꿔 도쿄 패럴림픽 출전
오른손으로 시속 150㎞ 강속구를 던졌던 그가 왼손으로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프로야구 두산 출신 휠체어 테니스 국가대표 김명제(34)의 이야기다.
2020 도쿄패럴림픽이 24일 개막해 9월 5일까지 15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한국은 척수 장애, 절단, 시각 등 장애인 선수들이 출전하는 패럴림픽에 14개 종목 총 158명의 선수단(선수 86명, 지도자 51명, 임원 21명)을 파견한다.
가장 극적으로 패럴림픽 티켓을 얻은 선수는 김명제다. 쿼드(남녀 구분 없이 사지 중 세 곳 이상 장애가 있는 종목) 세계랭킹 12위 안에 들지 못했지만 국제대회 성적을 인정받아 와일드카드로 도쿄에 가게 됐다. 나인철 대표팀 감독은 "남자 오픈의 오상호와 임호원, 쿼드의 김규성과 김명제가 출전권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김명제는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가게돼 기쁘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김명제는 2005년 두산 1차지명을 받은 기대주였다. 2009년까지 통산 22승을 거뒀고, 한국시리즈 선발투수로도 나섰다. 하지만 2009년 겨울 음주운전을 하다 추락사고를 당했다. 12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살아났지만 경추 골절로 인해 야구 선수로서의 인생이 끝났다.
힘겨운 시간을 이겨냈다. 재활치료를 통해 걸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밖에도 잘 나가지 않았다. 선수 시절보다 30㎏ 이상 체중이 늘어난 자신을 본 그는 어렵게 용기를 내 헬스장에 나섰다. 그 곳에서 동갑내기 휠체어 펜싱 선수를 만났고, 2013년 겨울 테니스를 시작했다.
실업팀 스포츠토토를 이끄는 유지곤 감독은 김명제의 재능을 알아봤다. 소속팀이 생긴 김명제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는 게 '첫 월급과 상금을 어머니께 드렸을 때'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은메달도 따냈다. 야구 선배 오승환이 그런 김명제를 위해 후원금을 건네기도 했다.
김명제는 동료 선수들과 연락을 하고 지낸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김현수에겐 현지 날씨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는 "음주운전을 한 선수를 보면 안타깝다. 나는 새로운 꿈이 생겼지만…. 저를 보면서 이런 일들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김명제가 패럴림픽 출전을 기대하지 않았던 건 왼손잡이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김명제는 "오른팔은 사고 여파로 제대로 손가락을 쓸 수 없어 손에 라켓을 묶고 쳤다. 선수 생활을 길게 보고, 5년 만에 왼손으로의 변신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갑자기 손을 바꾼다고 하니 감독, 코치, 선배들까지 모두 당혹해하셨다. 하지만 나를 이해해주셨다"고 고마워했다.
김명제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좌타자였고, 투수일 때도 밸런스 유지 차원에서 왼손으로 던졌는데 시속 120㎞ 정도 나왔다. 그래서 결심을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고 했다. 김명제는 "솔직히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왼손으로 바꾼 뒤 그 전보다 두 배 노력하고 있다"고 웃었다.
나인철 감독은 "바꾼지 2년 됐는데, 세밀함은 아무래도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다. 왼손의 기능이 오른손보다 좋다. 오른손은 악력이 떨어져 본인 손으로 쥐기가 힘들었다. 왼손으로는 바꾼 뒤엔 그 전에 넣지 못하던 서브나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
'왼손잡이 테니스 선수'로 완성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김명제는 "2~3년 뒤"라고 했다. 김명제는 "코로나19 때문에 지금 국제대회 출전이 어렵다. 메달까진 힘들겠지만 그래서 이번 패럴림픽이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무대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24년 파리 대회에선 메달까지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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