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신선 복원 쇼'에 놀아난 2주.."남북정상회담 좇다가 꼬였다"
연합훈련 흔들며 美 심기 자극
김여정 '배신' 발언 내용 확인해야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실시에 반발하며 11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을 통한 정기통화에 응답하지 않았다. 전날 오후에 이어 이틀째 남북 통신선이 불통 상황을 맞았다.
북한이 남북 통신선을 복원한 지 2주 만에 일방적으로 통신선을 끊자 우리 정부가 북한의 ‘통신선 복원 쇼’에 놀아났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문재인정부가 임기 내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것에만 관심에 쏠려 한·미 연합훈련을 둘러싼 북한의 노림수에 빠져들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통신선 복원→남남 내부 갈등→한·미 연합훈련 축소 결정→북한의 반발’로 이어지는 북한의 시나리오가 착착 현실화되는 동안 한국은 둘로 쪼개져 내분을 겪었다.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 북한의 협박 메시지는 계속됐다.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내고 “남조선 당국은 반전의 기회를 외면하고 10일부터 전쟁 연습을 또다시 벌여놓는 광기를 부리기 시작했다”면서 “잘못된 선택으로 하여 스스로가 얼마나 엄청난 안보 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위협했다.
청와대는 13개월 넘게 끊겼던 남북 통신선이 지난 7월 27일 전격 복원됐다고 깜짝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해 4월부터 여러 차례 친서를 교환하며 소통해온 결과라는 설명까지 달았다. 이날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8년이 되는 날이라 의미가 컸다.
그러나 북한은 주민들이 접하는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 등의 대내매체로는 통신선 복원을 공개하지 않고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으로만 보도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당시 통일부는 “북한의 입장표명 방식은 다양하다”고만 언급했다.
통신선 복원 이후 3일 만에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연기론을 띄웠다. 국정원은 지난 3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한·미가 연합훈련을 중단할 경우 남북관계 상응 조치 의향이 있다”고 연기 주장에 가세했다.
그러나 미국을 상대하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너무 앞서나가면 안 된다. 상황관리가 먼저”라는 우려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74명의 범여권 의원들은 지난 5일 남북 통신선 복원으로 모처럼 남북 대화의 물꼬가 트인 만큼 대화 재개를 전제로 한·미 연합훈련을 미루자는 내용의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훈련과 관련해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히 협의하라”는 모호한 발언으로 혼란을 부추겼다.
문재인정부는 공약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검증까지 미루면서 한·미 훈련 축소 실시라는 절충안을 선택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북한의 협박성 메시지와 통신선 불통이었다.
남북 통신선은 이날까지 이틀째 통화가 불발됐다. 정부는 2009년 3월 한·미 합동 ‘키리졸브’ 훈련을 문제 삼은 북한이 군 통신선을 일시 단절했다가 훈련이 끝난 다음 날 정상화한 전례에 희망을 걸고 있다. 현재로선 통화 단절이 장기화할 것이란 관측이 더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통신선 복원이 한·미 훈련 중단 압박을 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진정으로 남북 대화 재개를 원했다면 통신선 복원 시기를 한·미 훈련 뒤로 미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북 정상 간 친서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화선’이라는 북한의 잔꾀에 우리 정부가 넘어갔다는 비판과 탄식이 나온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문재인정부가 임기 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 하려다가 무리한 것 같다”며 “남북 관계는 원칙과 전략을 갖고 움직여야 하는데, 정상회담이란 목표에 모든 대외행위가 맞춰지니 스텝이 꼬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통신선 노림수가 한·미를 멀어지게 만드는 이간책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 이번 한·미 훈련도 축소 실시키로 결정하면서 한·미 군사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0일 담화에서 이례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주장까지 들고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오는 21~24일 방한해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과 만나 대북문제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선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연합훈련과 관련해 남북 간의 이면합의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김여정이 ‘배신’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연합훈련을 유연하게 가져갈 가능성을 (북측에) 시사했다면 오히려 남북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이 ‘배신’을 언급한 것은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의 6·15 기념사를 비난한 이후 1년 2개월여만이다.
북한이 통신선 불통에 더해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계속된다. 김 부부장이 지난 3월 담화에서 언급했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나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남북 교류 기구들의 폐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등 저강도 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
통일부는 “한·미 연합훈련이 방어적 성격으로 적대적 의도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혔고, 이런 입장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상황, 전작권 환수 등 군사적 수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 여건 조성 등을 충분히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당사자 간 대화가 조속히 재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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