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2' 걱정 많은 세상에 익준이 보여준 깊은 공감
[양선영 기자]
소아외과 안정원(유연석 분)의 어린이 환자 한준의 엄마는 마치 아들의 대변인처럼 모든 대답을 대신한다. 한준이 얼마든지 의사 표현이 가능한 13세임에도 불구하고 한마디의 틈도 주려 하지 않는다. 한준이도 대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원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 한준은 자신의 상태와 앞으로의 계획을 재치있게 이야기한다.
여기가 어디냐는 신경외과 채송화(전미도 분)의 질문에 황두나 환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황두나 환자는 뇌의 브로카 영역이 손상되어 듣는 말은 이해할 수 있지만 대답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재활 치료를 꾸준히 하면 괜찮아질 테니 걱정말라는 송화의 당부에 황두나 환자의 엄마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밝게 대답한다. 그러나 황두나 환자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간이식 수술을 앞둔 안성주 환자는 간담췌외과의 이익준(조정석 분)을 믿는다며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처럼 수술을 앞둔, 이식을 해줄 아빠보다 더 걱정이 많은 것은 환자의 엄마와 오빠이다.
▲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포스터 |
ⓒ tvN |
병원의 보호자들은 환자를 보살피며 환자를 대신해 많은 일들을 처리한다. 병원의 의료진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보호자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기도 한다. 환자가 어리거나 고령 혹은 중병일수록 보호자의 역할은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7화는 환자의 곁을 지키는 보호자들을 통해 '공감'과 '역지사지'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오프닝의 에피소드들이 드러내듯 환자의 마음이 꼭 보호자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환자든 보호자든 쾌유를 바라는 마음은 같겠지만, 상황에 대한 부담감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보호자는 환자를 대리한다는 인식을 가질 것이며 환자의 치료에 의사 못지 않은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보호자는 환자와 구별되는 보호자 나름의 특별한 사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아픈 환자를 보살피는 보호자들은 걱정이 많다. 환자가 어찌될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치 강박증 환자처럼 소위 '진상'으로 그려지는 안성주 환자의 오빠(홍우진 분)가 그러하다. 그는 간호사들을 찾아 불만 사항을 강하게 토로하며 경력이 많은 의료진이 동생과 아버지를 담당할 것을 요구한다. 익준에게는 수술 전날 금주를 하고 일찍 자라는 등 도를 지나친 조언을 하며 무례하게 군다.
수술이 끝난 후 안성주 환자의 오빠는 병동 의료진에게 떡과 음료를 돌리며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한다. B형 간염으로 인해 동생에게 이식 수술을 해주지 못한 그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더해져 좀더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그에 대해 불편했던 마음을 표현하는 인턴 장윤복(조이현 분)을 향해 익준은 "우리에게는 매일 있는 일이지만, 환자에게는 큰 일"일 것이니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엄마가 입원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윤복은 눈물을 떨군다.
▲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7화 한 장면 |
ⓒ tvN |
이러한 상황은, 자신에게 몸을 부딪힌 산부인과 레지던트 추민하(안은진 분)에게 반말로 화를 내는 같은 과 양석형(김대명 분)의 엄마 조영혜(문희경 분)의 무례함과는 성질이 조금 다르다. 다른 이의 실수와 사과에는 무척 까다롭게 굴면서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는 영혜에게 타인에 대한 배려심은 찾기가 힘들다. 영혜는 "쟤만 빼고"라는 말로 민하를 확실하게 밀어내며 여지를 두지 않는다.
익준은 병원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인사한다. 의아하게 바라보는 송화에게 "내가 귀엽나봐"라며 익살을 떨지만, 익준의 친화력에는 경계가 없다. 익준은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상대방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보인다. 익준은 아무런 편견없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받아들인다. 익준이 보이는 깊은 공감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익준은 섣불리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비난하려 하지 않는다. 수술을 꼭 성공시켜야 한다는 안성주 환자 오빠의 무례한 언사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시큐리티 직원 용현(김범수 분)씨의 사연을 조용히 경청한다. 상대에 대한 관심은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조언을 하며 간섭하지 않는다. 그저 수긍할 뿐이다. 이 따뜻한 공감이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병원 시큐리티 용현씨는 30년 만에 만난 엄마의 장기 기증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생존 시에 장기 기증 희망을 등록했다 하더라도 사후 기증에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용현씨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착잡한 순간을 익준은 말없이 함께하며, 용현씨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는다.
▲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7화 한 장면 |
ⓒ tvN |
냉정한 조언이 발휘하는 공감의 위력
알고 보면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나'의 일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수만 가지 이유를 찾고, 다른 사람의 일은 간단하게 생각하며 쉽게 단정해버린다. 물론, 모든 일을 제 일처럼 생각하며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비난이나 섣부른 단정에 앞서 한 번쯤은 상대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그럴 거야"라는 익준의 말처럼 삶은 늘 예기치 않은 장면을 연출한다.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을 찾은 다른 병원의 소아과 의사처럼 처지가 뒤바뀌는 건 순간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는 것은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다. 상처 입은 사람을 고요히 수용해주는 공감이 뜻밖의 어느 날, '나'에게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감이 언제나 능사인 것만은 아니다. 드라마는 공감보다 대책이 필요한 순간을 주종수(김갑수 분)와 정로사(김해숙 분)를 통해 보여준다. 로사가 조카 결혼식을 잊고 심하게 자책하자, 아들 정원은 자신도 그렇다며 괜찮다고 달래준다. 종수 역시 저녁을 두 번 먹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도 그렇다'라는 말로 로사의 걱정을 덜어주려 애쓴다.
하지만, 충분히 공감을 해주더라도 확인이 필요한 일도 있다. 현관문 비밀번호가 도통 떠오르지 않는 로사의 건망증은 노화에 따른 경도 인지장애일 수 있지만, 치매 전조 증상일 수도 있다. 발생 가능성이 높은 일은 걱정을 덜고 마음을 위로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공감이 필요한 일과 대책이 필요한 일을 구분하는 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
▲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7화 한 장면 |
ⓒ tvN |
하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아이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가 먼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과 위로가 아니다. 상황을 냉정하게 확인해줄 전문가의 조언이었을 것이다.
준완의 말은 이제 그만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평소와 달리 그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은 지금은 그저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상처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일말의 가능성이 없는 일을 붙잡는 것은 더 큰 상처를 만들 뿐이다.
아기의 엄마 역시 이를 잘 알면서도 차마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때론 냉정한 조언이 공감의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녀는 슬프겠지만, 한편 결정을 대신 해준 준완에게 고마울 것이다. 준완과 그녀가 결정한 것은 아기의 생사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어렵고도 힘들게,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인 것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7화는 율제종합병원의 아침을 꼼꼼하게 비추며 시작되었다. 민하는 인턴 장홍도(배현성 분)의 감지 않은 머리를 언급한다. 간담췌외과 펠로우 장겨울(신현분 분)의 머리 역시 잔뜩 기름이 진 상태이다. 간호사 이영하(이노아 분)가 건네준 커피 한 잔에 보내는 이들의 환호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도 채 가시지 않은 피로를 엿보게 한다.
▲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7화 한 장면 |
ⓒ tvN |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진 풍경이다. 모습은 조금 다르더라도,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의 아침도 저러했을 것이다. 병원을 움직이는 것이 의료진만이 아니다. 환자와 보호자 역시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며 병원의 여러 곳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속속 돌아와 제 할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일이 다르더라도 각자 주어진 몫을 해내며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 안에서 일어난 무수한 일들을 다 알 수도 없고 다 알 필요도 없다. 가장 가까운 보호자조차도 환자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쪽잠과 몇 잔의 커피로 긴 수술을 견뎌내는 익준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병원 건물 한편에 자리잡은 미용실과 안경원을 생각해내기도 쉽지 않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무지를 섣부른 판단으로 채우지 않는 것이다. 마음을 제대로 나눌 수 없는 세상에서 막연한 공감보다는 불안과 불신이 더 편리하게 느껴진다. 목소리를 키워 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누구도 돌아보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자리를 지키는 있는 '나'처럼 누군가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가 가진 그 불안을 숨긴 채 말이다. 평온한 얼굴 뒤에는 말해지지 않은 상처와 아픔이 존재한다. 아프고 두려운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작은 위안이,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공감일지도 모른다. 안스러워, 더욱 아름다운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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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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