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언니' 여성 스포츠 예능의 성공적 진화

이준목 2021. 8. 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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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1주년, 운동선수들의 진정성 바탕으로 시청자 공감 얻어

[이준목 기자]

 E채널 예능 <노는 언니> 중 한 장면.
ⓒ E채널
 
E채널 예능 <노는 언니>가 방송 1주년을 기념하여 특별 이벤트로 '노는 브로'와 함께하는 단합대회를 개최했다. 지난주 방송에서 역대 여성출연자들이 총출동했던 첫 단합대회에 이어, 10일 방송에서는 언니와 브로들이 펼치는 피구-버블슈트 씨름 색판뒤집기-지압판달리기 대결, 선수촌 식당 먹방에 이르기까지 유쾌한 시간들이 펼쳐졌다.

지난해 가을운동회 당시 브로들에게 패배했던 언니들은 복수를 위하여 어벤져스를 소집했다. 박세리가 부상으로 MC석에 합류한 가운데 씨름 양윤서, 컬링 김선영, 체조 신수지, 주짓수 성기라 등이 특별멤버로 언니팀에 가세했다.

<노는 브로>는 노는 언니의 인기를 바탕으로 남성 스포츠스타 버전으로 제작된 스핀오프 프로그램이었다. 야구 박용택-심수창, 유도 쌍둥이 형제 조준현-조준호, 축구 백지훈, 농구 전태풍 등이 멤버로 합류했다. 축하 케이크를 들고 등장한 브로들은 언니들과 함께 덕담을 주고받으며 훈훈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한유미가 맏형 박용택에게 "노는 브로와 방송 해설 중 뭐가 더 좋냐"고 짓궂은 질문을 던지자 박용택은 "노는 브로는 힐링, 해설은 먹고사는 일"이라고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친목을 위한 힐토 댄스를 함께 출 때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언니와 브로들은 본격적인 대결을 위하여 운동복으로 환복하마자 '본캐'로 돌아가 체육인다운 승부욕을 드러냈다. 피구 대결에서 한유미는 첫 공격부터 백지훈의 급소를 명중시키는 대형사고를 치며 폭소를 자아냈다.

전태풍은 농구선수 출신답게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언니를 정확히 명중시키는 '노 룩' 공격을 선보였지만, 룰을 이해 못하고 스스로 선을 넘어가서 아웃 당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심수창은 투수 출신이라는 기대와 달리 헛방을 날리며 브로들의 구박을 받았다. 양팀이 1승 1패로 맞선 상황에서 막판 한유미가 하드캐리한 언니팀이 맹공을 펼치며 최종 승리를 따냈다.
 
 E채널 예능 <노는 언니> 중 한 장면.
ⓒ E채널
 
2라운드 버블슈트 씨름이었다. 박용택과 성기라가 각각 왕으로 선정됐다. 언니팀은 '힘캐'로 믿었던 양윤서와 정유인이 조기탈락하며 시작부터 위기에 몰렸다. 왕인 성기라가 브로들에게 홀로 포위된 상황에서 엄청난 하체 근력으로 버티며 선전했지만 수적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아웃되며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언니팀은 3라운드 색판 뒤집기에서 설욕에 나섰다. 박세리가 일찌감치 기대주로 에상했던 신수지가 다리가 쥐가 나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속도와 투지를 선보이며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박용택은 "노는 언니가 왜 1년 동안 사랑받았는지 이유를 알겠다"며 언니들의 근성에 박수를 보냈다.

휴식시간에는 올림픽 기념 특별 이벤트로 선수촌 특식 메뉴를 그대로 재현한 식사가 차려졌다. 양념 장어구이, 메밀국수, 제육볶음, 부대찌개, 갈비찜, 찹쌀도넛 등이 준비됐다. 특히 선수촌을 경험할 일이 없던 야구-축구 멤버들은 처음 경험해보는 특식 메뉴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선수촌에만 34년 근속한 한정숙 영양사가 영상편지로 특별출연하여 <노는 언니> 1주년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조준호-조준현 형제는 선수촌에서 적응하기 어려워할 때 한 영양사가 각별히 챙겨줬다고 고백하며 "생일을 맞이했을 때 우리를 위해서 선수촌 식단을 미역국으로 특별히 바꿔주셨다"는 일화를 공개하여 감동을 자아냈다.

마지막 게임으로 지압판 달리기가 펼쳐졌다. 브로들은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도 룰을 이해하지 못하며 티격태격하는 환장의 팀워크를 선보였다. 시간 경쟁으로 치러진 경기에서 양팀 모두 줄넘기와 허들을 넘는 데 고전하며 페널티가 부과됐으나, 언니팀이 최종집계 1분 47초 44로 브로팀의 1분 54초 40보다 앞서며 최종 승리를 거머쥐었다. 번외 경기로 열린 개인전에서도 언니팀의 김선영이 브로팀의 전태풍을 압도적인 격차로 제치며 화려한 세리머니까지 선보였다.

어느덧 1주년을 맞이한 <노는 언니>와 시즌2 방송을 앞둔 <노는 브로>팀은 2주년에서의 재회를 기약하며 훈훈하게 막을 내렸다. 이어진 다음 주 예고편에서는 클라이머 김자인과 쇼트트랙 금메달리시트 조해인의 게스트 출연을 예고했다.

새로운 도전, 성공적인 결과 <노는 언니>
 
 E채널 예능 <노는 언니> 중 한 장면.
ⓒ E채널
 
2020년 8월 첫 방송을 시작한 <노는 언니>는 평생 운동만 하며 살아왔던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것들에 도전하며 놀아보는 세컨드 라이프 프로그램을 표방했다. 골프 박세리, 펜싱 남현희, 피겨 곽민정, 배구 한유미, 수영 정유인, 농구 김은혜 등 한국 스포츠 각 종목을 대표하는 전-현직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화려한 라인업으로 시작부터 눈길을 끌었다

최근 몇 년간 스포츠 스타들이 활발하게 방송에 출연하고 스포츠 예능의 인기도 높아졌지만 남성들에 비하면, 여성 스포츠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운 방송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는 언니>는 '여성 스포츠 스타들만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색다른 조합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실상 최초의 프로그램이었다.

<노는 언니>는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출연자들이 다양한 체험을 통하여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 어느 날은 호캉스나 캠핑을 즐기기도 하고, 맛집 기행을 다니거나 화보촬영을 하거나, 운동회를 펼치기도 한다. 꽃다운 청춘시절 운동에만 열정을 바치느라 못해본 것이 많았던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것들에 도전한다는 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의 취지다. 도전할 수 있는 소재에 제약이 없고 운동선수답게 멤버들의 성향도 적극적이다 보니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노는 언니>의 최대 강점이었다.

예능에 익숙한 연예인이나 전문적인 MC 역할 없이 프로그램이 제대로 진행될까라는 우려도 보기좋게 극복했다. 오히려 같은 운동선수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종목도 다르고 초면인 출연자들과도 빨리 친해지고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녹아들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각 종목 선수들의 개인사나 선수촌 경험담, 국제대회에서 겪게 되는 각종 해프닝 등 운동선수들만이 공감하는 여러 가지 솔직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또다른 매력이다.

큰 언니 박세리는 방송경험도 풍부한 데다 감독까지 맡아본 인물이다보니 종목도 다르고 세대차이가 나는 다양한 후배 스포츠인들을 리드하고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 자연스럽다.

프로그램의 2인자이자 '기린 언니' 한유미는 프로그램의 예능파트를 사실상 하드캐리한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유독 한유미가 코멘트를 하거나 제스처를 취할 때마다 고유의 '기린 시그니처'가 자막에 표시될 정도로 제작진의 한유미 사랑은 유독 각별하다. 여기에 털털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정유인, 허당끼가 넘치지만 밝은 매력이 돋보이는 곽민정, 마당발에 가까운 인맥과 섬세한 배려가 돋보이는 남현희 등은 각자의 매력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냈다. 상황에 따라 일부 멤버가 빠지더라도 게스트를 반고정처럼 활용하는 등 멤버 변경도 유연하다.

박세리는 4일 방송에서 출연을 처음 수락하게 된 계기에 대하여 "신선했다.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은퇴하고 나서도 방송에 나올 수 있는 선수들은 몇 안 된다. 여성 선수들의 입지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단발성 프로젝트에 가까웠던 <노는 언니>는 "이렇게까지 오래할 줄 몰랐다"는 박세리의 고백처럼 어느새 벌써 1년을 넘겼다.

물론 1년간의 행보가 마냥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첫 회에 등장했던 배구선수 이다영-이재영 쌍둥이 자매는 이후 학교폭력 논란에 휘말리면서 방송 다시보기가 중단되며 <노는 언니>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에피소드가 흑역사로 전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올해 4월에는 맏언니 박세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프로그램 촬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예능성 강화나 영화 홍보를 명분으로 연예인 출연자들이 간간히 등장한 에피소드들은 오히려 프로그램의 취지에서 벗어나며 대부분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7월에는 여성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 서보라미가 <노는 언니> 출연 이후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서보라미의 출연분은 일단 방송이 잠정적으로 연기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는 언니>는 일반인들은 잘 알기 어려운 여성 운동선수만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남모를 애환을 통하여 운동선수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 종목의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놀라운 섭외력과 경기장 밖에서 그녀들의 진솔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점은 <노는 언니>를 예능 이상의 가치를 지닌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원동력이다.

현 고정멤버들을 비롯하여 핸드볼 스타 김온아, 탁구 서효원, 야구 김라경, 축구 조소현, 주짓수 성기라 등 수많은 출연자들이 <노는 언니>에 등장하며 의외의 반전매력을 발산해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한 비인기종목 스타들이나 무명 선수들의 매력을 발굴해낸 것도 호평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노는 브로>같은 스핀오프 프로그램을 탄생시킬 만큼 하나의 독자적인 예능 유니버스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뜨거운 삶을 살아온 운동선수들의 '진정성'이야말로 방송과 예능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자아내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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